알쏭달쏭 양자역학..'내 손 안의 슈퍼컴퓨터' 시대 연다[과학을읽다]

김봉수 2021. 8. 11.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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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 양자정보과학(QIS)은 미래의 과학ㆍ산업의 지형을 파괴적으로 변화시킬 대표적 분야로 첫 손에 꼽힌다. 현재까지는 '이론'이나 '개념'만 나와 있는 여러가지 과학ㆍ산업 기술들을 현실화시켜줄 핵심 키워드이기 때문이다. 뉴턴의 고전역학의 빈틈을 메우면서 학문적으로 정립되기 시작한 양자역학(Quantum mechanics)이 1980년대 이후 정보통신기술 분야에 본격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면서 과학자들은 제2의 양자혁명'이 시작됐다고 말하고 있다. 양자컴퓨팅을 중심으로 양자정보통신기술의 개념과 원리, 현황, 활용 분야와 파급 효과ㆍ전망 등을 살펴 본다.

◇양자컴퓨팅이란?

1981년 미국 보스턴 소재 매사추세츠공과대(MIT)에 일군의 물리학자·컴퓨터 공학자들이 몰려들었다. MIT와 IBM이 개최한 ‘컴퓨팅 물리학 콘퍼런스’ 행사였다. 훗날 이 자리는 양자컴퓨팅 기술의 ‘발원지’로 평가받고 있다. 교류가 없던 물리학자들과 컴퓨터 공학자들이 두 분야의 핵심 문제들을 서로 토론하면서 양자컴퓨팅 기술이 논의되기 시작했다. 특히 이 자리에서 천재 양자물리학자로 꼽히는 리처드 파인만은 컴퓨터를 활용한 물리학 시뮬레이션 기법을 제안해 양자컴퓨팅의 개념을 사실상 창시했다.

양자역학은 물질의 최소 단위 즉 전자·핵으로 이뤄진 ‘원자’의 움직임을 다루는 학문이다. 원자와 이온 등 ‘양자’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수학적으로 계산·예측할 수 있다. TV나 컴퓨터, 반도체 등 현대 전자제품이나 우주공학, 화학제품 등은 대부분 양자역학 덕에 만들어질 수 있었다. 양자컴퓨팅 기술은 양자 중첩과 양자얽힘이라는 원리에서 고안됐다. 현재까지 인류가 발명한 컴퓨터는 0과 1이라는 디지털 비트(bit) 체계로 작동한다. 정보의 입력과 계산, 출력을 할 때 수많은 예·아니요 체계를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현존 최고 슈퍼컴퓨터도 마찬가지여서 아무리 CPU나 메모리의 속도가 빨라도 입력되는 정보·변수의 양이 많을수록 한계가 노출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양자컴퓨팅은 0과 1이 겹쳐져 있으며 결과가 확률에 따라 정해진다는 큐비트의 개념을 사용한다. 모든 변수를 한꺼번에 놓고 계산하는, 즉 데이터를 동시다발적으로 처리하는 것이 가능하다. 슈퍼컴퓨터로 100만년이 걸릴 계산을 양자컴퓨터로는 2초 안에 끝낼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양자얽힘도 양자정보기술의 주요 원리다. 양자 세계에서는 원자나 이온 등 양자 두 개가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마치 서로 연결된 것처럼 행동해 하나의 상태가 바뀌면 나머지 하나도 바뀐다. 통신 암호화에 적합한 원리다.

문제는 이 같은 원리를 현실적으로 구현해 내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양자는 관측, 즉 빛이나 중력 등 어떤 종류의 외부의 개입이 없을 때만 중첩의 원리에 따라 움직인다. 현실적으로 양자컴퓨터를 만들려면 빛·중력·공기·온도 등 일체의 외부의 변수를 차단해야 하는데 이 경우 엄청난 비용과 독립된 공간, 고난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아직까지 양자컴퓨팅을 제대로 구현하고 결과를 얻어낼 수 있는 알고리즘 기술도 개발 단계에 그친다. 최근 공개된 양자컴퓨터들이 1946년 개발된 최초의 컴퓨터 ‘에니악’ 수준의 크기와 외형을 지닌 이유다.

현재 전 세계 과학계에선 이 같은 양자역학의 원리를 응용해 양자컴퓨터, 양자암호통신, 양자센서 등에서 활발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2019년 9월 구글이 50큐비트급 양자컴퓨터 칩인 ‘시커모어’를 만들었는데 슈퍼컴퓨터보다 뛰어난 연산 속도로 ‘양자우월성’을 세계 최초로 달성했다. IBM도 현재 65큐비트급 양자컴퓨터 ‘허밍버드’를 개발해 운용 중이다. 올해 127큐비트급 양자컴퓨터 ‘이글’을, 내년엔 433큐비트급 ‘오스프리’를, 후년엔 1121큐비트급 ‘콘도르’를 개발할 예정이다. 지난 7월엔 하버드대·MIT가 공동으로 ‘광학집게’라는 신규 기술로 256큐비트급 양자컴퓨터를 개발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한국의 경우 양자암호통신 상용화에선 다소 앞선 편이지만 전체적으로 후발 주자에 불과하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 4월 50큐비트급 양자컴퓨터를 2024년까지 개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미래 기술’의 키워드

양자컴퓨팅을 비롯한 양자정보기술은 단순히 ‘연산 속도’만 빠른 컴퓨터나 해킹 불가능 암호 기술 정도가 아니다. 엄청난 연산 속도는 웨어러블 컴퓨터, 인공지능(AI), 선박·자동차·비행기 등의 자율주행, 메타버스(확장가상세계) 등 이른바 미래 사회를 송두리째 바꿔 놓을 수 있는 인프라로 볼 수 있다. 현재 상용화 단계인 5G 통신 기술 및 위성 통신으로 더 업그레이드될 6G 초고속 통신 기술과 결합될 경우 4G가 유튜브 등 인터넷 동영상 서비스의 전성시대를 열었던 것 이상의 파괴적 혁신 효과가 기대된다.

특히 전 세계 과학자들이 연구하고 있는 상온·상압에서 작동 가능한 양자컴퓨터들이 등장하면 변화의 속도는 더욱 빨라진다. 엄청난 속도의 정보 처리와 전달이 가능해지니 ‘클라우딩’ 서비스는 이제 필수가 된다. 개인용 PC·노트북은 물론 스마트폰, 태블릿 등 모든 정보 통신 단말기들이 발열·에너지 소모·무게·크기 등의 귀찮은 장애물을 없앨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지역마다 슈퍼컴퓨터를 대체할 양자컴퓨팅·데이터 센터가 설치돼 순식간에 처리한 정보를 6G 통신의 초고속망에 실어 단말기에 전달하는 시대가 열린다. 구글이 지난해 11월부터 서비스하고 있는 게임 스트리밍 플랫폼 ‘스태디아’의 경우 이 같은 양자컴퓨팅 시대를 대비한 ‘시범 서비스’로 보는 시각도 있다. 값비싼 콘솔 게임기 없이도 대부분 가지고 있는 스마트폰으로도 얼마든지 고품질 게임을 즐기는 클라우드 게임은 양자컴퓨팅 시대가 열릴 경우 ‘기본’이 될 수 있다. 즉 누구나 손 안에 ‘슈퍼컴퓨터’를 들고 다니는 세계가 온다는 얘기다.

바이오·우주공학 등 과학기술 분야에의 파급 효과도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최근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해결하기 위해 각국이 고군분투 중인 바이러스 백신·치료제 개발에 양자컴퓨팅 기술이 도입될 경우 다양한 변수를 순식간에 계산할 수 있어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화성·달 개발과 심우주 탐사를 향하고 있는 우주공학도 컴퓨팅 능력의 대폭 향상으로 복잡한 변수가 있는 비행 시뮬레이션이나 소재 개발 등이 훨씬 빨라지고 손 쉬워진다.

박제근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는 지난달 열린 양자과학기술 포럼에서 "현재 한국은 투자와 전문 인력에서 주요 경쟁국들에 비해 시기적으로 5년 정도를 놓친 것으로 보인다"면서 "앞으로 5년이 양자과학기술의 미래를 좌우할 것으로 보이는 만큼 차세대를 주도할 인력 양성과 국가 규모의 결정적 투자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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