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범의 행복심리학] '내 손에 달렸다'는 행복한 착각

최동현 2021. 8. 11.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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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삶을 통제한다는 믿음
이용범 소설가

누구나 슈퍼 히어로가 되는 꿈을 꾼다. 빨간 망토 자락을 휘날리며 악당들을 혼내주고, 위기에 처한 인류를 구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슈퍼 히어로는 영화나 만화에만 존재한다. 평범한 사람들은 초월적 힘은 고사하고 일상을 꾸려가는 것조차 버겁다. 그런데도 우리가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이유 중 하나는 자신의 영향력을 과대평가하는 ‘통제력 착각(Illusion of Control)’ 때문이다.

세상일이 뜻대로만 된다면

칸트에 따르면, 행복은 ‘자기 존재에 있어서 모든 것을 자기 뜻대로 할 수 있는 상태’다. 물론 우리는 그 상태를 경험할 수 없다. 좋아하는 야구팀을 경기에서 이기게 만들 수 없고, 주식시장을 원하는 대로 조정할 수도 없다.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존재는 신뿐이다. 아무것도 통제할 수 없는 존재는 무력하다. 이 무력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람들은 운으로 결정되는 것조차 자신이 바꿀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진다. 카드게임을 할 때 직접 패를 돌리면 더 좋은 패를 잡을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자신이 주사위를 던져야 더 높은 숫자가 나오리라 믿는다. 또 당첨번호가 인쇄된 복권보다 번호를 직접 적어 넣은 복권을 선호한다.

통제력 착각은 우리에게 위안을 준다. 미국인들은 총을 소지하고 있을 때 더 안전하다고 믿지만, 범죄자와 총격전으로 죽는 경찰관보다 자신의 총으로 자살하는 경찰관이 더 많다고 한다. 또 자동차 사고로 사망할 확률이 훨씬 큰 데도 항공기 추락 사고를 더 두려워 한다. 운전대를 잡고 있어야 사고 위험을 줄일 수 있다는 착각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된다.

통제력을 느낄 때 쾌감이 밀려온다. 사람들은 게임 속 아바타를 통제하면서 쾌감을 느끼기 때문에 아바타의 전투력을 높이는 데 아낌없이 투자한다. 반면 통제력을 잃으면 쾌감이 사라진다. 녹화된 축구 경기가 재미없는 것은 열심히 응원해도 결과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통제감은 갓 태어난 아이들도 경험한다. 컬럼비아대학의 쉬나 아이엔가 교수는 태어난 지 4개월쯤 된 아이의 손에 줄을 연결한 후, 아이가 손을 움직일 때마다 음악이 나오도록 했다. 그런 다음 아이의 손에 묶인 줄을 풀고 일정한 간격으로 음악을 들려주었다. 그러자 아이는 음악을 통제할 수 없음을 알아채고 울음을 터뜨렸다. 즐거운 음악도 듣고 싶을 때 들을 수 없으면 소음에 지나지 않는다.

통제력과 무기력 사이

마틴 셀리그먼의 개 실험.

동물은 통제력을 상실했을 때 극도의 불안감을 느낀다.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동물을 상상해보라. 이는 곧 위험에 처해 있다는 신호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어떤 것도 할 수 없다고 믿는 사람은 불행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통제력을 과대평가함으로써 불행으로부터 벗어나려 한다. 1979년 노스웨스턴대학의 로렌 알로이와 린 에이브람슨 연구팀은 사전 검사를 통해 학생들을 우울한 사람과 행복한 사람으로 나눈 후 녹색 신호등을 켤 수 있는 버튼을 주었다. 한 그룹에는 진짜 버튼을 주었고, 다른 그룹에는 신호등이 자동 점멸하는 가짜 버튼을 주었다. 실험 결과 행복한 학생의 약 35%가 자기가 통제하지 않은 상황을 통제한 것처럼 착각했다.

외부 세계를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은 행복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심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통제력이 있다고 믿는 사람은 성취 의지가 강하고 동기부여가 잘되며, 불안감이 적고 곤경에 잘 대처한다. 반면 외부 세계를 통제할 수 없다는 믿음은 무기력으로 이어진다. 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먼은 이를 ‘학습된 무기력(learned helplessness)’이라 이름 붙였다. 그는 일련의 동물실험을 통해 무기력이 어떻게 습관화되는지 보여주었다.

그는 개를 세 그룹으로 나눈 후 첫 번째 그룹은 전기충격을 피하는 법을 훈련시켰고, 두 번째 그룹은 무방비 상태에서 전기충격을 가했다. 그리고 세 번째 그룹에는 어떤 조건도 부여하지 않았다. 얼마 후 세 그룹을 실험 상자에 넣고 전기충격을 가했다. 개들은 칸막이만 건너뛰면 전기충격을 피할 수 있었다. 첫 번째 그룹은 배운 대로 전기충격을 피했고, 세 번째 그룹은 스스로 탈출 방법을 터득했다. 하지만 두 번째 그룹은 탈출 시도조차 하지 않았고 해결 방법을 찾으려 하지도 않았다. 자비를 베풀 때까지 온몸으로 고통을 받아들인 것이다. 사람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왔다. 소음을 끌 수 있는 스위치가 없는 상황에 적응해버린 사람들은 스위치가 있음에도 누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체념이 습관화된 것이다.

통제감은 건강에도 영향을 미친다. 심리학자 엘렌 랭어와 주디 로딘은 노인요양원에 거주하는 노인 26명을 두 그룹으로 나누었다. 그런 다음 한 그룹에는 직원들의 통제하에 모든 서비스를 제공했고, 다른 그룹에는 선택권을 주었다. 선택권을 가진 노인들은 식사 메뉴, 가꾸고 싶은 화초, 보고 싶은 영화 등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었다. 결과는 놀라웠다. 3주가 지난 후 선택권을 행사했던 노인들은 그렇지 못한 노인들보다 더 행복하다고 느꼈고, 보다 활동적으로 사람들과 교류했다. 반면 선택권이 없는 노인들은 건강이 나빠졌다. 18개월이 지나자 선택권이 없던 노인들의 사망률이 크게 높아졌다.

'나'를 통제하라

사진출처=픽사베이

통제감이 낮으면 스트레스가 심해진다. 직장은 통제력을 둘러싼 전쟁터다. 기업 임원들이 스트레스를 이겨내는 힘은 타인을 통제하고 있다는 느낌에서 나온다. 여성은 대인관계가 만족감을 좌우하지만 남성은 통제력의 크기가 만족감을 좌우한다. 통제력의 가치는 최악의 상황에 처했을 경우 그 상황을 중지시킬 수 있을 때 발휘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그럴 만한 힘을 가지고 있지 않다.

행복은 얼마만큼 통제권을 가지고 있느냐보다는 얼마만큼 통제권을 가지고 있다고 느끼느냐에 달려 있다. 막강한 힘을 가졌더라도 타인에게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느끼면 행복하지 않다. 반면 지위가 낮더라도 스스로 삶을 통제한다고 믿으면 행복하다. 통제력 착각에 빠진 사람은 자신감도 강하다. 이들은 과거의 사소한 성공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으며, 미래에 더 많은 성공을 거둘 것으로 기대한다. 물론 이들의 기대가 늘 옳은 것은 아니다. 2003년 주식 중개인 107명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통제력 착각이 심할수록 내부에서의 평가와 연봉 수준이 낮았다. 통제력 착각이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은 것이다.

통제력을 행사하는 두 가지 길이 있다. 하나는 외부 세계를 통제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나를 통제하는 것이다. 외부 세계를 통제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나마 나의 내면을 통제하는 것이 훨씬 쉽다. 일상을 더듬어보면 통제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일들이 주변에 널려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고자 하는 일에 열정을 다하는 것, 지식과 경험을 확장시키는 것, 더 나은 상태가 되려고 노력하는 것, 되고 싶은 사람이 되는 것은 자신을 통제함으로써 가능하다. 왜 세상 일이 내 맘대로 되지 않느냐고 불평할 필요 없다. 사람들이 세상을 원망하는 것은 통제할 수 없는 것들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행복해지려면 통제할 수 없는 것 대신 내 마음을 바꾸는 일에 눈을 돌려야 한다.

세상과 불화하지 않으려면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 시도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작은 것,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것들부터 통제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물론 우리에게는 세상을 통제할 수 있다는 긍정적 착각이 필요하다. 그 착각이 가져다주는 행복은 진짜 통제력이 주는 만족감과 별 차이가 없다. 행복한 사람은 자신이 더 많은 것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 믿음은 나를 통제하는 데서 온다.

이용범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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