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 우려되는 재판 불복

최석진 2021. 8. 11. 12:01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지금은 대부분 운동 경기에 비디오 보조 심판(Video Assistant Referee·VAR) 제도가 도입돼 심판의 잘못된 판단이 바로 잡히는 경우가 많아졌지만 수 년 전만 해도 오판으로 인해 전체 경기의 흐름이 바뀌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2002년 이탈리아와의 16강전 주심을 맡았던 모레노 심판은 경기 내내 주최국인 우리나라에 유리한 판정을 이어가다 이탈리아의 주장 토티 선수를 퇴장시켜 한국의 8강 진출에 한 몫을 했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아시아경제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지금은 대부분 운동 경기에 비디오 보조 심판(Video Assistant Referee·VAR) 제도가 도입돼 심판의 잘못된 판단이 바로 잡히는 경우가 많아졌지만 수 년 전만 해도 오판으로 인해 전체 경기의 흐름이 바뀌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누구나 한 번쯤은 자기가 응원하는 팀 선수가 억울한 판정을 당하는 걸 지켜보며 흥분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탤런트 임채무가 검은색 축구 심판복을 입고 레드카드 대신 아이스크림을 치켜든 패러디 광고가 기억난다. 2002년 이탈리아와의 16강전 주심을 맡았던 모레노 심판은 경기 내내 주최국인 우리나라에 유리한 판정을 이어가다 이탈리아의 주장 토티 선수를 퇴장시켜 한국의 8강 진출에 한 몫을 했다. 경기 종료 후 그는 오판 논란에 휩싸이며 살해 위협까지 받았지만 판정은 번복되지 않았다. 심판의 판정에 과하게 반발하는 것은 그 자체로 퇴장 사유다.

심판도 인간이기 때문에 실수를 할 수 있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실수를 피할 수 없다. 하지만 그 같은 오판의 가능성까지 감수하고 심판의 판정에 따르기로 한 상호간의 약속, 그 약속이 바로 경기가 난장판으로 흘러가지 않고 무사히 끝날 수 있는 이유다.

스포츠에 심판이 있다면 우리 사회에서 심판 역할을 하는 사람은 법관이다. 그렇기 때문에 헌법은 법관이 헌법과 법률 그리고 양심에 따라 독립해 심판할 수 있도록 직접 신분을 보장하고 있다.

최근 법원의 판결에 대한 불복이 도를 넘고 있다.

대선을 앞두고 여론을 조작한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에 연루된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는 지난달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된 뒤에도 “진실을 밝히지 못했다고 진실이 바뀔 수 없다”며 판결을 정면 반박했다. 여당 대선 후보인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김 지사의 진정성을 믿는다”고 했고,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법원이 항상 정확한 판결만 한 것은 아니다”고 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부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와 동생 조권씨가 실형을 선고받아 법정 구속되고, 아들에게 허위 인턴증명서를 발급해 준 혐의로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가 의원직 상실형을 선고받고, 조카 조범동씨가 대법원에서 유죄 확정 판결을 받은 이후에도 결백을 주장하고 있다. 그는 수사 당시 “법정에서 진실을 밝히겠다”고 했지만 정작 재판이 시작되자 자신의 재판에서는 진술거부권을, 부인의 재판에서는 증언거부권을 행사했다. 대신 그는 자신이 결백하고 억울하다는 내용을 잔뜩 담은 책을 출간하며 검찰에 대한 비난을 이어갔다. 진술거부권이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이고, 대법원 확정 판결 전까진 무죄가 추정된다고 해도 너무 지나치다는 생각이다.

추미애·박범계 두 전·현직 법무부 장관은 건설업자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수수한 혐의로 수년 전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된 한명숙 전 국무총리 사건과 관련해 감찰과 수사를 지시했다. 잘못된 수사 관행을 바로잡는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한 전 총리 유죄 판결에 흠집을 내려는 의도가 있었다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단순히 판결에 불만을 갖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결론과 다른 판결을 내린 담당 재판부의 신상을 털고, 청와대 게시판에 판사의 해임이나 탄핵을 요청하는 청원을 올리는 등 현상은 이 같은 정치인이나 고위 공직자들의 판결 무시 풍토와 무관하지 않다.

법치국가에서 판결에 대한 불복은 법이 규정한 상소 제도와 재심 등 적법한 절차를 통해 이뤄져야 한다. 그리고 확정된 판결은 존중돼야 한다. 그것이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근간이기 때문이다.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

Copyright ©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