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최북단 도시 연천. 이곳에는 27억년 전의 자연 유산부터 조선 초기의 유물에 이르기까지 시간을 나눠주는 역사적 여행지들이 한탄강 유역을 중심으로 이어져 있다. 막상 가 보니, 여행을 너머 살고 싶은 곳 리스트에 올라버리고 만 그곳 연천의 시간들을 둘러보았다.
▶빛나는 은둔 ‘재인폭포’
27만 년 전의 일이었다. 연천 일대에서 용암이 분출되었고 세상은 시뻘겋게 녹아 내렸다. 부글부글 끓던 대지는 더 이상 용암이 나오지 않자 조용해지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부터는 서서히 식으며 새로운 세상을 빚어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게 땅 속으로 쑥 꺼져 보이는 한탄강과 협곡을 이루는 주상절리들이다. 연천은 온통 한탄강과 주상절리, 그리고 강을 흐르는 깊은 물과 숲으로 이뤄졌다. 한탄강을 여행할 때 이곳의 특별한 지질을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눈에 보이는 게 현무암이고 주상절리이며 시간의 흐름이 느껴지는 장면들이니 그럴 수 밖에 없다. 파편화되어 보석처럼 빛나는 웅장한 절벽 아래를 걷노라면 잠깐이나마 자신이 공룡 시대의 인류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재인폭포는 물줄기가 아름다웠다. 약 18m 높이의 계곡에서 낙하하는 폭포는 희한하게도 흔들림 없는 1자 모습을 유지한다. 안정적인 물줄기의 힘은 물 자체에 있지만 지형의 도움이 더해진 것으로 보인다. 폭포를 중심으로 말발굽처럼 둥글고 길게 이어져 있는 능선이 외부의 바람을 막아주고 있는 것이다. 이런 지형은 제주도 서귀포의 천지연 폭포에서도 보았던 모습이다. 물론 이것은 날씨도 평화로워야 가능한 일이다. 폭풍이 몰아칠 경우 도도한 물줄기가 가당키나 하겠는가.
재인폭포의 재인은 재능이 있는 사람을 말한다. 옛날 옛적 이 폭포에는 재인 즉, 예인이 살고 있었다. 옛날에는 음악과 미술, 그리고 자신의 신체를 자유롭게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을 재인이라 불렀다. 이곳에 살던 재인은 폭포 앞에 긴 줄을 매달고 외줄타기 신공을 보이기도 했다. 마을 사람들은 그의 재능을 즐기고 사랑했다. 그러나 마을의 원님은 재인의 예쁜 아내를 탐냈고, 끝내 계략을 세워 재인이 외줄타기를 하다 떨어져 죽게 했다. 원님은 재인 아내의 마음을 얻어내는 데는 실패했다. 오히려 사랑하는 남편의 원수를 갚기로 한 아내가 원님의 수청을 들어주는 척 기회를 잡아 원님을 코를 물어버린 후 스스로 죽음의 길을 선택했기 때문이었다. 원님의 코를 문 이 사건은 마을의 큰 사건으로 기록되며 마을의 이름도 ‘코문리’라 불리게 되었고, 현대에 이르러 ‘고문리’가 되었다.
현재 재인폭포의 행정구역 이름은 연천읍 부곡리이다. 평화롭고 아름다운 재인폭포 관련 설화는 이렇게 시시하고 치졸한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이런 옛날 이야기가 재인폭포 앞에 선 여행자들의 마음까지 거칠게 만들지는 못한다. 곱게 떨어지는 폭포수와 그 아래 옥빛으로 물들어 있는 소의 모습을 보노라면 마음이 깨끗하게 정화되기 때문이다. 설화의 내용이 인간의 폭력과 비겁함을 담고 있는 것도 바로 그 폭포 앞에서 마음을 가다듬고 올바른 삶에 대한 생각을 정돈하라는 자연의 뜻이 아니었을까?
재인폭포 폭포수 앞에 서는 방법은 이렇다. 첫째, 재인폭포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스카이워크 전망대에 서서 폭포를 바라보는 방법이다. 거리감이 있지만 떨어지는 폭포수를 위에서 내려다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재인폭포 바로 앞을 향하는 출렁다리를 건널 수 없는 사람들에게도 적당한 뷰 포인트라 할 수 있다. 두 번째 방법은 출렁다리를 건너면서 다리 위에서 폭포를 내려다 보는 것이다. 출렁다리는 길이 80m, 폭 2m 정도의 다리인데, 이름대로 조금씩 출렁이는 구조로 되어 있다. 다리 중간에는 폭포 계곡 아래를 내려다 볼 수 있는 투명 아크릴 장치도 있는데, 막상 그 위에 서 보니 사람들 발자국과 자연이 덮은 먼지 등이 엉켜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출렁다리 중간 지점은 재인폭포를 멋지게 사진 찍을 수 있는 최적의 포토존. 누구나 그곳에서 사진 찍기를 원하기 때문에 사람이 많을 때는 가급적 한두 컷 정도까지만 찍는 게 에티켓이다.
다리를 건너면 오른쪽에 폭포 앞으로 걸어 내려갈 수 있는 데크 입구가 나온다. 이곳에서 안전모를 빌려 쓰고 계단을 내려가 폭포 앞 옥빛 잔잔한 연못 앞에 서서 떨어지는 폭포수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지금은 이 길로 들어갈 수가 없다. 비가 많이 오는 여름철에는 현무암 주상절리에서 낙석 사고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취한 조치이다. 9월 초순까지는 재인폭포 바로 앞까지 접근하는 것은 안된다. 하지만 출렁다리, 스카이워크전망대에서 보는 폭포의 모습 또한 감동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9월 이후 통행이 가능해지면, 폭포 앞까지 갔다 되돌아 갈 때는 입구에서 안전모를 반납해야 한다. 반납된 안전모는 소독 과정을 거쳐 다른 여행자들에게 빌려주게 된다.
재인폭포는 폭포 하나만 있는 곳이 아니다. 스카이워크전망대, 출렁다리를 지나 왼쪽 둘레길로 들어서면 용암이 만든 신비로운 자연의 오묘함을 맛 볼 수 있는 선녀탕을 만날 수 있다. 관광지이기도 하지만 한탄강 국가지질공원으로 흙과 바위의 형태를 보며 지구의 시간과 생태를 확인하는 현장이다. 선녀탕에 가면 작은 소를 이루고 있는 ‘탕’ 위의 낮은 폭포를 눈여겨보아야 한다. 이것을 폭포라고 말하면 누구나 피식 하고 웃는다. 하지만 조금 전 보았던 재인폭포의 출발도 이랬다는 것을 생각하면 선녀탕을 보는 마음의 시간이 훨씬 길어진다. 흐르는 개울 아래층을 이루고 있는 주상절리 가운데 재인폭포 지점을 받치는 힘이 약해서 침식이 일어났고(땅이 꺼져갔고), 거기에 풍화 현상이 더해지면서 그 지점이 무너져 폭포가 만들어졌다. 선녀탕 역시 힘이 약한 지점에 침식과 풍화가 일어나 지표면이 꺼지고 미래의 폭포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재인폭포가 점점 깊어지고 침식의 속도가 빨라질 경우 다음에는 이곳 선녀탕이 선녀폭포가 되어 미래의 인류들을 맞을 것이다. 그리고 나면 또 선녀폭포 윗부분 어디에선가 작은 소가 생길 것이고, 다음 세상의 폭포를 준비하게 될 것이다. 그 시점이 언제일지 가늠할 수는 없다. 분명한 것은, 지구의 근육도 그렇게 끝없이 변화하고 생성하고 소멸하며 윤회한다는 사실이다.
선녀탕을 지나 둘레길을 조금 더 걸으면 재인폭포 여행 안내소가 있다. 이곳은 재인폭포 여행을 끝내거나, 또는 등산의 출발점이 되는 지점이다. 해발 411m의 토토봉은 두 개의 봉우리가 낙타 쌍봉처럼 톡톡 튀어 올라와 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재인폭포에서 토토봉까지는 2.11km로 가까운 편이지만 이 일대의 산이 돌산이라 능선을 오르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게 등산 경험자들의 이야기다. 등산로는 해발 520m의 성산까지 이어진다. 야생화, 숲길, 시방댐, 전망바위 등을 만날 수 있다. 등산은 다음번 여행 때 기회를 만들어 보기로 하고 길을 주차장 쪽으로 돌린다.
▶이해할 수 없는 지질 ‘백의리층’
백의리는 마을 이름이다. 이곳에는 옛날 한탄강 물줄기의 흔적이 남아 있다. 용암 활동으로 한탄강에 새로운 물줄기가 생기면서 이곳은 졸지에 구 한탄강이 되어 버렸다. 그런데 백의리 협곡의 지질은 매우 특이한 형태를 이루고 있다. 협곡의 벽이 화강암 주상절리로 형성되어 있는데, 그 바닥 부분이 아직 바위가 되지 못한 미고결 퇴적층으로 남아있는 것이다. 저 어마어마한 주상절리의 무게를 어떻게 감당하는 것일까? 생각해 보니 주상절리는 건축물이 아닌 지구라는 행성의 일부이다. 바닥이 아닌, 뒤, 옆의 지질이 서로 잡아주고 당겨주고 있는 것이다. 백의리층의 지질을 관찰한 사람들의 의견에 따르면 지금 백의리층을 흐르고 있는 샛강의 협곡은 원래 하나의 몸체였으나 화산 활동으로 갈라져 버렸을 수도 있다고 한다. 그것은 양쪽 협곡의 바위 성질, 식물 등 생태계가 일치하는 부분이 많다는 것을 근거로 한다. 이 어마어마한 지구의 운동 결과가 눈 앞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상절리의 바닥만 보고 불안해 한다는 것은 지구를 너무 가볍게 본 결과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상절리의 표면에서는 간헐적 낙석 현상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따라서 백의리층을 포함한 한탄강 국가지질공원을 여행할 때는 가급적 해설사 프로그램에 참여할 것을 권한다.
이렇게 바위로 형성되지 못한 퇴적층의 이름이 특정 지역 이름을 포함한 백의리층이 된 것은, 이런 형태의 지질이 처음 발견된 곳이 연천군 백의리이기 때문이다. 연천이 아닌 다른 지역에서 미고결 퇴적층이 발견된다면 그곳의 이름도 그 지역의 이름을 딴 백의리층이 된다는 말이다. 경기도에서 재배한 청양고추의 이름도 원산지이자 등록된 상표인 충남 청양의 청양고추로 붙여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백의리층에는 미고결 퇴적층 외에도 폭포를 닮은 수직 물길 몇 곳과 단단한 바위를 뚫고 자란 백의리층 식물들, 옛 한탄강을 흐르던 강물의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자갈들의 형태 등도 관찰할 수 있다. 강물이 주는 압력을 최소화하기 위해 스스로의 모양을 만들어 낸 신생대 시대의 바위들의 모습을 보면, 광물의 움직임 또한 살아있는 자연의 일부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국가지질공원이란?
지구과학이라는 과목이 있다. 지구의 속살을 들여다 보는 흥미로운 과목이었다. 그러나 (필자의 학창 시절엔)책 속에 있는 그림과 사진, 텍스트만으로는 지구의 제대로 된 모습을 가늠하기가 어려웠던 것도 사실이다. 교과서와 논문, 출판물 안에 있던 지구과학이 본질의 현장으로 이동한 것은 지질공원이라는 개념이 생기면서였다. 지질공원의 개념은1990년대 중반 유럽에서 시작되었다. 지구를 공부하는데 있어서 지질학이 차지하는 비중에 힘을 실어주는 움직임이었다. 이런 새로운 개념은 유럽 내에서 공감을 얻기 시작했고 그 중간 결과로 2000년 유럽지질공원 네트워크가 결성되기에 이르렀다. 또한 2004년에는 유네스코가 지원하는 세계지질공원 네트워크가 출범하면서 전 세계 국가들의 지질 공원에 대한 스터디도 시작되었다. 당시 유네스코에서 밝힌 지질공원의 정의를 들여다 보면, ‘지질공원은 특별한 과학적 중요성, 희귀성 또는 아름다움을 지닌 지질 현장으로 지질학적 중요성뿐만 아니라 생태학적, 고고학적, 역사적, 문화적 가치도 함께 지니고 있는 지역으로 보전, 교육 및 관광을 통하여 지역경제 발전을 도모한다’고 되어 있다. 우리나라도 지질 연구와 함께 세계지질공원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고, 지질 연구의 보고인 제주도가 2010년 그리스의 레스보스섬에서 진행된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네트워크 총회에서 세계 지질공원으로 인정받았다. 또한 2020년에는 한탄강 국가지질공원이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에 등재되어 세계 표준의 매뉴얼에 입각한 관리 공원이 되었다. 우리나라에는 제주도, 한탄강 외에도 울릉도 독도, 부산, 청송, 강원 평화지역, 무등산권, 강원고생대, 경북동해안, 전북 서해안, 백령 대청, 진안 무주, 단양 등의 지역을 국가지질공원으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 국가지질공원은 지정과 동시에 많은 세금이 투입되는 공간들이다. 보다 많은 시민들이 지질공원을 찾아와 우리의 지구, 우리의 자연을 제대로 알고, 자연의 일부로서의 인간의 삶을 영위하길 바라는 정책과 마음 때문이다.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찾아가야 할 이유는 협곡의 파편 바위만큼 많고 또 많다.
▶시간이 빚은 우뚝한 바위산 ‘좌상바위’
연천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은 망향국수 본점에 가서 매운 비빔국수와 만두를 먹는 것이었다. 국수를 먹고 재인폭포를 향해 달리고 있는데, 한탄강 궁신교를 건널 무렵 왼쪽으로 우람한 바위산 하나가 보였다. 눈길이 저절로 가는 위용을 지니고 있었다. 당장 들려보고 싶었지만 일단 재인폭포 방문이 먼저라 돌아오는 길에 들르기로 하고 그냥 지나치면서 입구에 붙어 있는 안내판만 보았다. 좌상바위. 강은 바닥으로 움푹 꺼져 있고, 평지는 그야말로 평야와도 같은데, 커다란 바위산이 강물 바로 옆에 올라와 있으니, 평지에서 보면 우람한 운동 선수 같고, 바로 앞에서 보면 우뚝하고 살찐 산신령 같은 모습이다. 돌아오는 길에 궁신교 아래에 차를 세우고 강변 오솔길을 따라 좌상바위 앞으로 갔다. 멀리서 본 것보다 더 컸고, 주변 백사장도 넓고 거칠었다. 장탄리 현무암, 궁평마을 수호신으로 불리기도 하는 좌상바위는 화산 주변의 마그마가 분출하며 생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제주도의 오름과 비슷한 개념이라고나 할까?
좌상바위는 지질공원*의 중요한 목적 가운데 하나인 다양한 암석을 관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지질 교육의 보고로 인정받는 지점이기도 하다. 현무암은 기본이고, 미산층의 퇴적기원 변성암, 화강암, 응회암, 각력암, 편마암 등이 좌상바위에 모여 있는 것이다. 또한 오래 전에도 이곳으로 하천이 흘렸다는 흔적을 보여주는 하안단구층이 좌상바위 초입부에 있어 지형학적 특징도 관찰할 수 있다.
높이 60m의 좌상바위는 중생대 백악기 말에 솟은 것으로 추측되는데, 그렇다면 경남 고성과 전남 보성, 경기도 화성 등지에서 공룡 코리아노사우루스 보성엔시스(Koreanosaurus boseongensis), 코리아케라톱스 화성엔시스(Koreaceratops hwaseongensis) 등이 무리를 이루고 알을 낳아가며 뛰어 놀 때 오늘의 한반도 곳곳에서는 화산 활동이 펑펑 일어나며 꿈틀대고 있었다는 말이다. 최고 2억5000만 년 전, 최소 6500만 년 전에 벌어진 일들이 오늘의 한반도와 생명으로, 흙으로, 바위로, 강으로, 바다로, 그리고 인류로 연결되어 있다니, 역시 지구에 태어나서 살아간다는 것은 어쩌다 벌어진 기적일지도 모른다. 좌상바위 주변 궁평리 마을에는 한탄강을 따라 전망 높은 펜션들이 즐비하다. 좌상바위의 그림자를 바라보며 잠들고, 아침에 일어나 한탄강 산책하는 꿈을 꾸며 오래 전 시간의 공간을 떠났다.
▶새로 짓기보다 어려운 이건 작업 ‘조선왕가’
조선왕가는 개인이 운영하는 한옥 호텔이다. 이곳을 굳이 소개하는 이유는 ‘조선왕가’가 고종의 손자 이근의 고택 염근당을 서울 명륜동에서 옮겨온 건물이라는 점 때문이다. 고택을 그 모습 그대로 옮겨 새로 건축하는 것을 ‘이건’이라고 하는데, 이건을 하려면 본택을 하나하나 상처 없이 해체하여, 그 모습 그대로 다시 조립해야 하는 시술 과정을 필요로 한다. 고증에도 충실해야 하고, 원래의 집이 갖고 있던 문화와 정신도 승계해야 함은 물론이다. 일이 이렇게 까다로우니, 이건을 하느니 차라리 신축을 하는 게 백배 낫다는 말도 나오는 것이다. 역으로 생각해 보면 특정 가옥을 이건한다는 것은 그만큼 그 일에 인생의 가치를 두고 있는 사람이 아니면 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물론 돈도 많아야 한다. 조선왕가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염근당은 1807년에 지은 뒤 1935년에 중수한 한옥으로 조선왕조가 무너지고 식민지가 되면서 수차례 소유자가 변경되는 굴곡을 겪었다. 현재의 조선왕가는 2008년 지금의 소유주가 구입, 5개월에 걸친 해체 작업을 통해 기와, 대들보, 서까래, 기둥, 주춧돌, 기단석, 토방돌 등 트럭 약 300대 분량을 보존했다. 그리고 그것들을 연천평야 앞 지금의 위치로 옮겨와 27개월에 걸친 조립과 건축 작업 끝에 2011년 6월20일 이건을 완료했다.
염근당은 회덕당, 사반정, 전각문 등 세 채의 조선 스타일의 한옥들과, 카바나라는 이름의 글램핑 장소로 일반인에게 공개되고 있다. 조선시대의 왕족이나 사대부들이나 살 수 있었던 그 공간이 이제는 평범한 시민들이 조금 큰 맘을 먹으면 그곳에서 하루 이틀 생활할 수 있는 곳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물론 호텔 숙박 수준의 예산이 필요하다. 예약은 조선왕가 홈페이지에서 실시간으로 가능하다. 조선왕가 앞의 연천평야, 한탄강 국가지질공원, 재인폭포, 좌상바위 등 오래된 시간과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어서 주변 여행하기에도 그만이다.
위치 경기도 연천군 연천읍 고문리 420-1(이건 전 위치 서울시 종로구 명룬동 3가 51번지)
▶드디어 가봤다 ‘망향비빔국수’ 본점
‘면식범’, 즉 국수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커뮤니티에 가 보면 빠지지 않고 달리는 리뷰 가운데 망향비빔국수가 있다. 1968년, 5사단 신병교육대 바로 앞에 문을 연 망향비빔국수는 경쾌한 매운맛과 깔끔한 뒷맛으로 당시 5사단 장병들에게 무한 사랑을 받았던 국수집이었다. 그 맛이 너무 좋아 이 멀고 먼 전방까지, 그것도 5사단에서 군대 생활을 마친 사람이 가족을 모시고 다시 찾아올 정도였고, 결국 프랜차이즈가 되고 말았다. 그 덕에 망향비빔국수의 맛을 보기는 쉬워졌지만, 연천군 궁평리마을에 있는 본점은 매운 비빔국수의 성지로 발전, 평일 휴일 가릴 것 없이 수많은 인파가 몰리는 비빔국수 성소가 되고 말았다. 주문은 들어가서 해도 되지만 건물 입구와 현관에 설치된 키오스크를 이용하면 편리하다. 국수도 직접 생산하고, 야채수, 양념, 김치 등 손님에게 제공되는 대부분의 재료들 역시 직접 만들어 낸다. 망향비빔국수의 방문은 식당 건물 바로 옆에 있는 정원 산책과 반려동물과 함께 먹을 수 있는 별도 공간 앞에서의 감탄과 함께 끝난다. 평일에 갔고, 코로나19 영향으로 손님이 줄어든 덕도 보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인파가 몰리는 곳이니, 이번 한 번으로 망향 비빔국수에 대한 애정 행각의 일단은 마무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