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같은 고비라면서, 北 '백신 도움' 꺼리는 기이한 이유
“전쟁 못지않은 시련의 고비” “일찍이 겪어보지 못한 난관”
9일 북한 기관지 노동신문이 1면 사설에 쓴 표현이다. 코로나19 사태, 경제 제재, 자연재해라는 ‘삼중고’를 겪는 상황이 전시에 비견할 정도로 어렵다는 의미다. 미국의 외교 전문지 포린폴리시(FP)는 9일(현지시간) BBC의 동아시아 전문 위원 패트릭 재커의 의견문을 싣고 “북한처럼 내부 문제를 인정하기 싫어하는 국가가 최근 어려움을 인정하는 빈도가 (잦아져) 놀랍다”고 평가했다. 앞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코로나19로 인한 어려움을 1950년 발발한 한국전쟁에 비유한 일과 북한 주민들에게 “최악의 결과에 대비하라”고 했던 일 등을 언급하면서다. FP는 “북한 정권이 ‘나라가 곤경에 처했다’고 인정했다면 북한의 상황이 정말 나쁜 것으로 보는 것이 안전하다”고 해석했다.
이런 상황에도 북한은 내부적으로 ‘자력갱생’을 요구하고 있다. 미국과 한국이 백신 등 인도적 지원 신호를 보내고 있지만 ‘묵묵부답’을 유지하고 있기도 하다. 재커 위원은 이런 북한의 코로나19 전략을 ‘기이하다’(curious)고 표현하면서 북한이 백신 지원을 꺼리는 이유는 “주민들이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갈 희망을 품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분석했다. 당분간 감염을 막을 충분한 양의 백신을 확보할 수 없으리란 사실을 알고 있고, 주민들이 일상으로 돌아가리라는 희망을 품고 각종 제한의 해제를 요구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특히 체제의 우월성을 강조해온 북한이 외국산 백신 지원 소식을 주민들에게 알리면 체제의 우월성에 금이 갈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도 추정된다고 했다. 망명 탈북 외교관인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이 북한으로선 공개적인 백신 지원 제스처를 굴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말한 지난해 NK뉴스와의 인터뷰를 인용하면서다.
재커 위원은 또 북한이 최근 보인 한국과의 관계 개선 신호는 개성공단 시설에서의 백신 공동생산을 염두에 둔 포석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렇게 될 경우 북한은 백신을 김정은의 지도하에 내부적으로 이뤄낸 의료 기적으로 선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자국 내의 코로나19의 확산은 없다는 주장을 반복하고 있다. 국제보건기구(WHO)가 최근 발표한 ‘코로나19 주간 상황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 보건성은 지난달 29일까지 총 3만5254명의 주민을 대상으로 코로나19 진단검사를 했지만 양성 반응은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다만 북한은 수해와 식량난, 의약품 부족에 시달리는 것으로 전해졌다. 10일 북한 노동신문은 최근 함경남도 지역에서 발생한 홍수로 인한 피해 상황을 보도하며 수해복구 지휘조직을 신설하고 복구 대책 마련에 나섰다고 보도했다. 북한은 이달 초 폭우로 1170여 세대 주택이 물에 잠기고 주민 5000여명이 긴급 대피했다. 식량과 의약품 부족으로 취약 계층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베랑제르 뵐-유스피 유엔인구기금(UNFPA) 임시 북한 사무소장은 9일 자유아시아방송(RFA)과의 인터뷰에서 “2020년 하반기부터 북한의 국경 봉쇄로 필수 의약품과 아동 면역 증진을 위한 물품 등이 전혀 (북한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며 “UNFPA가 북한에 지원하는 식량과 물품은 주로 임신부와 수유 여성, 아동 등 취약한 북한 주민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정은혜 기자 jeong.eunhye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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