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섬情談] 훈련된 움직임
우연한 기회에 한 무용치료사가 만드는 웹진을 구독하게 됐다. 탄즈위드(TanzWith)라는 이 웹진의 최근호에서 편집자인 무용치료사 김미영씨는 ‘움직임을 통해 자발적으로, 창의적으로 자신을 표현하면서 심리적인 어려움들을 개선하는 것’이라고 무용치료를 알기 쉽게 설명한다. 자신의 억눌린 감정을 몸으로 표현해냄으로써 마음의 문제에서 벗어나게 한다는 것이다. 이는 몸과 마음이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는 생각을 전제로 한다. 몸과 마음은 상호적이다. 마음이 몸을 일으키기도 하고 주저앉히기도 한다. 마음이 몸에게 하는 일을 몸 역시 마음에게 한다. 감기만 걸려도 만사가 귀찮아지지 않던가.
그런데 무용치료사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내담자가 무용가라고 한다. 무용가는 몸으로 표현하는 것을 가장 잘하는 사람이다. 슬픔이나 분노나 부끄러움이나 기쁨 같은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자기 몸의 어떤 부분을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그들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은 없다. 그들에게는 몸이 표현의 도구이기 때문이다. 그런 무용가들 가운데 무용치료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의아해할 일이 아니다. 의사라고 해서 병이 걸리지 않는 건 아니니까. 그렇지만 무용치료사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대상이 그들이라는 건 가볍게 들어 넘길 이야기가 아닌 것 같다.
그들이 몸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선수들이라는 것이 바로 그 이유다. 몸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데 숙달돼 있기 때문에 자신의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하지 못한다. 숙달된 테크닉이 자유로운 자기표현을 방해한다. 어떤 사람은 체면 혹은 과도한 방어기제 때문에 몸을 잘 움직이지 못하지만, 이들은 훈련에 의해 만들어진 테크닉 때문에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한다. 훈련받은 선수인 이 사람은 테크닉에 따라 능숙하게 움직임으로써 자기감정을 그대로 표현하는 일에 실패한다. 잘 훈련된 동작에 따라 슬픔이나 외로움이 표현될 것이다. 그 움직임은 아름답고 우아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훈련된 움직임일 뿐, 그 순간의 마음이 솔직하게 표현된 것이라고 할 수 없다. 그는 능숙하지만 자유롭지 않다. 자유롭지 않다는 것과 솔직하지 않다는 것은 자기를 표현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뜻이 같다.
소설 습작생들의 작품을 보면서 내가 가끔 느끼는 것과 아주 비슷하다. 꽤 잘 쓴다는 평가를 하지 않을 수 없는데 마음이 가지 않는 소설을 쓰는 학생이 있다. 일찍부터 방법을 터득해 능숙하지만 기술로, 그러니까 영혼 없이 손가락으로만 쓴 것 같고, 솔직하지 않은 것 같고, 그야말로 ‘만든’ 것 같다고 느껴진다. 안타깝게도 그런 습작생들은 이미 자기 나름의 테크닉이 몸에 붙었기 때문에 다르게 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너의 목소리로 말해라고 나는 자주 말한다. 무용치료사 김미영은, 네 몸의 말에 귀를 기울이라고 말한다. 같은 말이다.
한 번 형성되면 고치기 어려운 것이 있다. 틀이 견고할수록 그렇다. 테크닉이 자기를 표현하지 못하게 막는다. 기교가 진실을 막는다.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그 숙달된 동작이 자신의 자유롭고 솔직한 표현이 아니라는 것을 대부분 인식하지 못한다. 그것은 나의 반응이 아니다. 주입된 것이고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의식하지 못한다.
무용치료를 받으러 온 무용가와 우리는 얼마나 닮았는가. 반복적 훈련으로 만들어진 테크닉을 자기 것인 양 착각하는 무용가처럼 우리는 반복적 접촉과 참여를 통해 주입된 생각을 자기 것인 양 착각하고, 속고, 그래서 자유롭지도 솔직하지도 않은 기만의 말을 하고 기계적 행동을 하지 않는가. 자유롭지도 솔직하지도 않으면서 그 사실조차 모르고 살지 않는가.
훈련을 통해 능숙해지는 것을 나쁘다고 할 수 없다. 참여를 통해 어떤 집단의 일원이 되는 것을 나무랄 수 없다. 그러나 바둑의 세계에는 이런 격언이 있다. “정석을 익혀라. 그리고 잊어버려라.” 능숙해지되 틀에 갇히지는 말라는 뜻일 것이다. 참여하되 함몰되지는 말라는 뜻일 것이다. 어울리되 자기를 잃지는 말라는 뜻일 것이다.
이승우 조선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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