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영은의 야野·생生·화話] 자성 없는 한국 야구, 길을 잃었다
음주운전·대마초 파문 논란 지속
야구계 원로들은 비난만 쏟아내
KBO리그는 올 시즌 전반기를 예정보다 일주일 앞당겨 종료했다. 일부 선수들이 외부인과 원정 숙소에서 술자리를 벌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그 여파가 일파만파 커져 리그 중단 사태까지 번졌다.
뒤이어 열린 도쿄올림픽은 그 실망감에 불을 붙였다. 2008 베이징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한국 야구대표팀은 이번 대회에서 일본, 미국, 도미니카공화국에 잇따라 패해 빈손으로 돌아왔다. 이변의 희생양이 된 게 아니다. 실력이 부족해서 졌다. 지난 13년간 선수들의 몸값은 많이 올랐지만, 야구 수준은 뒷걸음질쳤다. 그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고 왔다.
충격을 추스르고 새 출발하려 했던 정규시즌 후반기도 순탄치 않게 시작했다. 지난 9일 오전 키움 송우현의 음주운전 적발 소식이 전해졌다. 같은 날 오후에는 KIA 외국인 투수 애런 브룩스가 대마 성분이 든 전자담배를 반입하려다 적발돼 퇴출됐다. ‘송진우 아들’ 송우현의 대기만성 스토리에 감동하고, 지난해 브룩스 가족의 교통사고 소식에 제 일처럼 걱정하고 응원했던 야구팬들은 뒤통수를 세게 맞은 느낌일 터다.
프로스포츠는 팬을 기반으로 운영된다. 이른바 ‘국민 정서법’이 더 강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KBO와 각 구단이 수년 전부터 여러 사건·사고에 대한 징계 수위를 강화한 이유다. KBO 야구 규약은 사회적 법 규범과 별개로 ‘프로야구 선수의 품위를 손상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이 조항의 적용 범위는 해가 갈수록 더 넓어지는 추세다.
그러나 이쯤되면 ‘백약이 무효’다. 그간의 중징계 릴레이가 학습 효과로 이어지지 않은 모양새다. 잘못된 판단으로 공든 탑을 무너뜨린 동료들을 숱하게 보면서도 여전히 ‘남의 일’이라고 여기는 것 같다. 사상 초유의 ‘술자리 파문’으로 3개 구단 선수들이 출장 정지 징계를 받고, 연일 "프로야구가 위기에 빠졌다”는 걱정이 쏟아지는데도 그렇다. 이들의 태도와 마음가짐은 달라진 게 없다.
선수들만 문제가 아니다. 한국 야구가 올림픽에서 참패하고 각종 사건·사고의 중심에 서자 야구계의 ‘어른’들은 앞다퉈 후배들을 손가락질했다. 최근 수년간 적발된 선수들의 일탈 행위는 대부분 과거 대선배들의 ‘악습’을 대물림한 거다. 그런데도 이들의 비난과 한탄 속에 ‘자기 반성’은 없다.
구단의 현실 인식도 문제가 많다. 소속 선수의 음주운전을 ‘자진 신고’라는 단어로 포장했다. "선수가 음주운전 적발 사실을 구단에 알리고, 구단이 그 사실을 KBO 클린베이스볼센터에 즉시 신고”한 건, 지극히 당연한 절차다. 보도자료 제목에 명시해가면서 생색낼 일이 아니다.
한국 야구는 길을 잃었고, 내비게이션도 작동하지 않는 것 같다. 물론 사태의 1차적 책임은 성인으로서 사회적 책무를 다하지 못한 선수에게 있다. 그러나 야구계에 몸담고 있는 모두가 크고 작은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선수 출신인 한 야구계 관계자는 "이 상황에서 ‘나는 잘못 없다’고 한 발 물러날 수 있는 야구인이 누가 있겠나. 선배와 후배, 구단과 KBO 모두가 함께 반성하고, 야구계를 위해 뭘 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하는 시기”라고 안타까워했다.
배영은 스포츠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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