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등만 기억하는 세상은 끝났다! 2020 도쿄 올림픽의 빛나는 '4등'들 ②
( 1등만 기억하는 세상의 종언, 2020 도쿄 올림픽의 빛나는 '4등'들 ①) 2020 도쿄 올림픽에서 한국이 4위를 기록한 건 무려 12종목입니다. 여자 배구팀, 높이뛰기 우상혁, 다이빙 우하람, 배드민턴 여자 복식 이소희-신승찬, 근대 5종 정진화, 사격 남자 25m 속사권총 한대윤, 사격 10m 공기소총 혼성 단체전 남태윤-권은지, 역도 여자 87kg급 이선미, 남자 기계체조 마루 류성현, 역도 남자 한명목, 탁구 남자 단체전 이상수-정영식-장우진, 그리고 야구 대표팀까지.
한국 선수들 간의 메달 결정전처럼 흥미로운 광경이 펼쳐진 한편, 분패와 석패도 있었습니다. 또 예상보다 더 좋은 성적을 얻어 만족스러운 '4등'도 있었죠. 메달 만큼 값진 투지와 극기, 미래에 대한 기대감을 선사한 '졌지만 잘 싸운' 선수들을 기억합니다.
이번 올림픽 막판, 국민들을 깜짝 놀라게 한 또 하나의 종목이 있었습니다. 전웅태가 한국 최초의 메달을 안긴 근대5종 경기였는데요. 전웅태가 따낸 감동의 승리 뒤에는 4위를 한 근대5종 대표팀 정진화가 있었습니다.
우리에겐 생소한 근대5종, 대체 어떤 종목일까요? 한 명의 선수가 펜싱, 수영, 승마에 육상과 사격을 합한 '레이저 런'을 치르고 합산 점수로 순위를 매깁니다. 정진화는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11위를 기록했고, 이는 한국 선수 역대 최고 성적이었습니다. 도쿄 올림픽에서 메달을 딴 건 전웅태였지만, 정진화의 성적이 놀랄 만큼 향상된 것도 사실이죠.
그는 경기를 마치고 "4등만 하지 말자는 마음으로 출전했는데, 그 4등이 나였다"라면서도 "그래도 다른 선수가 아닌 웅태의 등을 보고 뛰어 마음이 편했다"라고 털어놨습니다. 이 말을 전해 들은 전웅태는 눈을 질끈 감고는 "진화형은 정말 ‘맘따남’이다. 마음이 따뜻한 남자"라면서 "후배들을 항상 앞에서 끌어주고, 힘들어하면 먼저 챙겨주는 진화형을 보면서 정말 배울 게 많다고 생각했다"라고 존경심을 표현하기도 했죠.
정진화는 이번 올림픽에 앞서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따낸 '4등'이라는 결과, 그에겐 아쉬운 마음도 있을 듯합니다. 하지만 아쉬움과 동시에 정진화는 스스로 대견했다고 말했습니다. "잘 버텨줘서 정말 고맙다고 나 자신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지난 세 번의 올림픽이 스쳐간 듯, 정진화가 울먹이며 한 말입니다.
배드민턴 여자 복식에 콤비로 출전한 이소희와 신승찬은 현실 단짝입니다. 중학교 1학년 때 주니어 대표팀에서 만난 동갑내기 친구가 벌써 27살이 됐습니다. 2011년, 2012년 세계주니어배드민턴 선수권에서 함께 여자 복식 금메달을 연달아 따낸 두 선수는 지금 배드민턴 국가대표로 성장했죠.
이소희와 신승찬은 도쿄 올림픽 8강전까지 집중력을 발휘해 잘 싸웠습니다. 하지만 4강전에서 인도네시아 팀에 패해 동메달 결정전을 치르게 됐죠. 운명의 장난처럼, 이 경기는 4강전에서 중국에 진 김소영-공희용과 맞붙게 됐습니다. 한국 대 한국 경기가 성사된 거죠. 같은 국가 대표끼리 나선 메달 결정전은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남자 복식 이후 처음입니다. 당시 하태권-김동문과 이동수-유용성 조가 맞붙은 끝에 금메달과 은메달을 사이좋게 나눠 가졌어요.
이번엔 한 조는 동메달을 얻고, 한 조는 4위에 머무르는 싸움이었는데요. 1세트부터 11점 차이를 내며 기선을 제압한 승리는 김소영-공희용에게 돌아갔어요. 경기에선 졌지만, 신승찬은 인스타그램에 후일을 기약하며 "내 파트너 소희. 네가 여기 오기까지의 과정들이 너무 힘들고 마음 고생도 심했는데 내가 좀 더 좋은 파트너가 돼 주지 못해 미안하고 고마운 감정 뿐이야"라는 진심을 전했습니다.
그는 "나에게 있어 너는 배드민턴 최고의 선수이자 네가 금메달보다 더없이 빛나는 선수라고 생각해. 우리 여기에 안주해있지말고 좀 더 멋지게 성장해 보자"라고 다짐하기도 했죠. 두 14년 절친의 아름다운 성장을 다음 올림픽에서 기대해 봐도 좋을 듯합니다.
국민체육진흥공단 소속 우하람의 다이빙 남자 3m 스프링보드 4위 등극은 한국에도 다이빙 인재가 있었음을 알렸습니다. 2016년 리우 올림픽 본선 진출에 이어, 한국 다이빙 역사상 가장 높은 성적인 481.85점을 기록한 23세 '다이빙 간판'의 성장담은 충분히 놀라웠습니다. 10m 플랫폼에서도 준결승 진출에 성공했지만, 결승까지 가지는 못했습니다.
그의 올림픽 데뷔는 리우였습니다. 당시 우하람은 한국 선수단 최연소 선수였는데요. 10m 플랫폼 결승 진출이라는 한국 다이빙 최초 기록을 세우고도 크게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5년 사이 국민들이 국제 체전을 즐기는 방식은 달라졌고, 우하람의 4등도 빛을 봤어요.
'하람'이라는 이름에서 착안한 '하늘에서 내려온 사람', 다이빙 선수에게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수식을 달고 있는 우하람은 9일 중앙일보에 "이름을 보면 다이빙 선수가 천직"이라며 뿌듯해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매체에 "반드시 올림픽 메달을 따겠다. 내가 메달을 따면 '우하람 키즈'가 나올 수도 있다. 그럼 정말 영광"이라는 포부를 전했는데요. 우선 국민들에게 다이빙의 멋짐을 알리는 데는 성공했어요. 다만 메달 획득까지 가는 길에는 중국 선수들이 버티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우하람은 "중국 선수들과 구사하는 기술은 똑같다. 그런데 디테일에서 차이가 났다. 중국 선수들은 절도가 있다. 입수시 물 튀는 것도 적고 완벽 그 자체"라면서도 "사소한 습관을 고쳐야 한다. 이미 몸에 배어 있어서 빨리 나아지지는 않겠지만 충분히 할 수 있다"라며 2024년 파리를 기약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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