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인은 정말 '투르크어'를 썼을까?

송호림 2021. 8. 10.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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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한민족이 투르크였다고? ②]

[송호림 기자]

지난 기사 <'신라 투르크설'은 중국 동북공정의 대항마?>에서는 한국 재야사학계를 중심으로 제기되는 신라왕족 투르크설에 대해 간략히 소개하며 투르크와 신라의 시조설화를 대조하며 그 진위를 가려 봤다. 이번 기사에선 투르크어와 한국어의 고유 어휘를 비교분석해 두 민족 사이의 종족적 뿌리가 동일한지 확인해 보고자 한다.

한국어와 투르크어의 뿌리는 동일한가?

화제를 돌려, 투르크와 신라 사이의 언어적 유사성을 통해 두 민족의 연관성을 따져보면 어떨까 싶다. 민족의 뿌리 찾기에 언어만큼 요긴한 수단도 없기 때문이다. 즉 투르크어와 신라어 사이에 공통점을 발견한다면 분명 두 집단은 하나의 조상에서 기원했을 확률이 높다.
 
▲ 세계의 Y 염색체 하플로그룹 분포도  최근 고고인류학에서만 주로 사용되던 하플로그룹 연구를 역사학 및 민족학에 차용하려는 움직임이 늘고 있다. 하지만 필자는 하플로그룹은 민족정체성을 규명하는 목적으로 사용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표본집단의 한계가 분명한 하플로그룹 연구로는 고대와 현대 사이 중앙아의 복잡다변한 인구이동과 교류를 일일이 추적할 수 없기 때문이다.
ⓒ 위키미디아
  
하지만 오르혼 비문을 통해 그 형태를 구체적으로 밝혀낸 고대 투르크어와는 달리, 현대 한국어의 기원으로 일컬어지는 신라어는 향가와 목간에서 추출한 소수의 인명·지명을 제외하곤 그 실체가 전혀 드러나지 않았다.

이는 신라만의 고유문자도 없었던 데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거치며 다수의 고대사료들이 소실됐기 때문이다. 아쉽게나마 현대 한국어와 현대 투르크어 사이의 고유어를 비교해 두 집단의 유사성을 가늠할 수밖에 없다. 만일 두 민족의 근원이 동일하다면 분명 단 하나의 실마리라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여기서 고대 인도유럽어에서 파생된 다양한 현대 유럽어를 거울삼아 한민족과 투르크 사이의 종족적 연결고리를 확인하려 한다. 2013년부터 2017년까지 약 5년간 매년 중국령 파미르 고원에 방문하면서 현지어인 사리콜어를 습득한 필자의 독특한 경험에 의해서다. 사리콜어는 세계 최동단(最東端)에 위치한 가장 오래된 인도유럽어의 일종이며 사리콜족은 고대 토하라인의 현존으로 추정되는 중국 유일의 토착 백인종이다. 
 
▲ 필자가 촬영한 사리콜 아이들의 모습  인구 약 5만에 불과한 사리콜족은 고유의 민족어를 지켜온 중국의 토착 백인종이다. 필자는 타쉬쿠르간을 중심으로 주변의 세 마을(티즈납, 타가르마, 다프타르)을 탐방하며 다수의 사람들을 촬영했는데, 위구르나 카자흐, 키르기즈 거주지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금발과 홍발, 푸른 눈의 백인을 일상처럼 대면할 수 있었다. 하지만 2017년부터 공안의 제지 탓에 필자는 더 이상 파미르에 방문하지 못하게 되었다. 한국에는 사리콜어 전문가가 단 한 명 존재하는데, 안타깝게도 미국으로 귀화하여 국내학계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 송호림
  
'금발이 너무해' 미국인을 빼닮은 파미르 토착민족
파미르에 머물 당시 필자는 사리콜어를 배우며 화들짝 놀란 적이 있다. 사리콜족은 그 생김새뿐 아니라 어휘에서도 미주유럽인과 큰 차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예컨대 사리콜어로 형제를 부를 때는 '웨루드(veerud)'라 하는데 이는 페르시아어로는 '바라다르(barādar)'이며 영어로는 '브라더(brother)'로 부른다. 또한 이러한 친족명만 아니라 일상의 주변환경을 부르는 단어들 역시 서로 유사함을 발견할 수 있었다. 
 
▲ 한국어, 투르크어, 영어, 독일어, 스페인어, 페르시아어 고유어휘 비교표 비교언어학에서 어휘비교는 일종의 보조수단에 가깝다. 하지만 가족이란 울타리 내에서 아이가 처음 학습하는 기초어휘의 비교는 민족정체성을 가늠하는 중요 바로미터로 쓰일 수 있다.
ⓒ 송호림
 
마찬가지로 위 표의 어휘비교를 참고하면, 미주유럽어는 중앙아시아에서 광범위하게 쓰이는 페르시아어와 대조해도 그 발음과 형태상 큰 차이가 없다. 그래서 우리는 이들을 하나로 묶어 '인도유럽인'이라 부르기도 한다. 인도유럽인의 기원에 대해서는 설이 분분하지만 확실한 것은 그들이 선사시대부터 세계 각지로 분화됐음에도 특정 어휘에선 일관성을 보인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인도유럽어족에 속한 다양한 미주유럽어들과 중앙아의 페르시아어 그리고 파미르 토착어는 모두 종족의 최소단위인 '친족'의 호칭에서 깊은 유사성을 드러낸다. 친족명은 그 자체로는 외래어의 영향을 받는 내용어에 해당되지만 혈족 사이에 대를 이어 전승되는 일상어인 만큼, 실제로는 형태소처럼 수백수천 년이 흘러도 좀처럼 변하지 않는 특성을 갖는다.
    
▲ 고중세 중국어에서 새롭게 출현한 투르크어 친족명 비교표 고대 동아시아어 연구의 권위자인 알렉산더 보빈 교수의 논문 ‘고중세 한어 속 고대 투르크어 친족명칭들(OLD TURKIC KINSHIP TERMS IN EARLY MIDDLE CHINESE)’도 같은 맥락을 전하고 있다. 탁발선비가 당나라를 세우면서 사용되기 시작한 고중세 한어에서 기존의 고대 한어에는 없었던 새로운 친족명이 등장했고, 이는 투르크어의 친족명과 유사하다는 주장이다. 즉 탁발선비가 당나라를 세우며 언어문화가 한화(漢化)되는 과정에서도 그들의 친족명 만큼은 지키고자 노력했다는 것이다. 다만 보빈은 투르크와 적대했던 탁발선비가 어째서 투르크어 친족명을 차용했는지에 관해서는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사실 선비어는 그 실체가 분명히 드러난 고대어는 아니지만 학계에서는 이를 투르크어의 일파로 보기도 한다.
ⓒ Alexander Vovin
   
'가족'이란 울타리는 천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다

반면 오늘날 현대 한국어와 현대 투르크어의 친족명은 비슷한 점이라곤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이러한 사실은 과거 국어학자 이기문의 연구에 의해서도 밝혀진 바 있다. 지난날 한국어와 투르크어의 뿌리를 동일하게 보는 알타이어족설이 크게 유행하기는 했으나 오늘날 언어학자들은 한국어를 알타이어와는 분리된 '고립어'로 간주한다. 7차 교육과정부터는 한국어를 더는 알타이어족에 포함시키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다만 비교언어학자 강길운은 <삼국사기> 지리지의 지명연구를 토대로 후기 신라 지배층은 투르크어 사용자라고 주장했다. 그 근거로는 춘하추동의 체계와 방위어, 기본수사 등이 투르크어와 유사하다는 점을 들었다. 하지만 이슬람화된 중세 투르크 지배층도 그들의 계절체계와 기본수사, 방위명을 아랍-페르시아어에서 차용했다. 그렇다고 그들이 아랍인이고 페르시아인이었을까?
 
▲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어떤 언어를 사용했을까?  사람들은 알렉산드로스 대왕을 당연히 '그리스인'이라 생각하지만 실제로 그는 사석에서 마케도니아어를 사용했으며 그리스인이 마케도니아인을 야만인으로 경멸하는 것에 종종 불만을 표출하곤 했다. "그러나 알렉산드로스는 들은 척도 않고 벌떡 일어나더니, 마케도니아 말로 호위병을 부르고...(중략)...알렉산드로스가 마케도니아 말을 하는 것은 몹시 흥분했다는 증거였다." 플루타르코스 저, 이성규 역,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현대지성사(2000)>, 33. 알렉산드로스 편, 1275~1276쪽.
ⓒ 위키미디아
  
실제로 아미르 티무르나 바부르처럼 페르시아 문화를 숭상하던 투르크 귀족들은 궁정에서는 페르시아어를, 사석에서는 투르크어를 사용했다. 따라서 <삼국사기>처럼 국가에서 공식편찬한 사료에 기술된 지명과 수사(數詞)적 표현들 만으론 실제 신라인의 진짜 '민족어'를 찾아낼 단서를 제공하지 못한다. 

현재 필자가 거주하는 사마르칸드 역시 거주민 대다수가 페르시아계 타직인들이다. 하지만 그들은 관공서에서 모든 공문서를 우즈벡어로 작성하며 학교에서도 타직어가 아닌 우즈벡어를 사용한다. 그러면서도 같은 타직인끼리는 타직어로 대화하고 귀가해서는 가족들끼리 타직어만 쓴다. 1000년 후에 사마르칸드를 발굴한 후대 학자들이 우즈벡어로 쓰인 공문서를 보면서 사마르칸드 타직인들을 '우즈벡인'으로 규정한다면 얼마나 우스운 일일까?    

"가까운 이웃은 가능하나 친형제로 보기는... 글쎄"

여기까지 '신라왕족 투르크설'에 대해 신화와 언어를 비교하며 그 진위를 가려 봤다. 투르크어와 한국어 사이의 기초문법 유사성에 관해선 이미 상당한 연구가 진행된 바 있다. 하지만 '한민족과 투르크계 민족들 사이의 뿌리가 동일하다'는 주장은 좀 더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앞으로도 한국과 우즈베키스탄의 외교적 수사(修辭)는 아프라시얍의 고구려 사신도에서 더 발전할 일은 없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신라 김씨 흉노설'이 사실일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다만 그들이 정녕 흉노의 후예라 해도 세월이 흐름에 따라 토착민에 흡수돼 흉노적 정체성을 완전히 상실했다면 우리에게 어떤 의미라도 있는 것일까. 과연 우리 한민족을 흉노의 자손이자 투르크의 형제라 부르는 게 가능한 것일까.
 
▲ "카쉬가르는 중국과 분리될 수 없는 땅이다"  필자가 2019년 카쉬가르지구박물관에서 촬영한 안내문이다. 보통 박물관에서 유물을 전시하는 공간에 이렇듯 '결론(conclusion)'을 내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 있는 박물관들은 이렇듯 결론을 내려놓고 내국인만이 아닌 외국인 관람자에게도 '학습'을 요구한다. 즉 중국의 역사공정을 그대로 따르라는 것이다.
ⓒ 송호림
 
중국의 역사공정엔 논리가 없다. 영토주의를 위한 우격다짐만 존재할 뿐이다. 필자는 지난 10년 동안 중국 공산당이 저지른 위구르족 정체성 파괴와 중화민족으로의 흡수과정을 고스란히 지켜봐 왔다. 그들에게 역사는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했다. 중국 공산당이 1949년 신장에 진주하면서부터 이미 답은 내려져 있던 것이다. 

'신라 투르크설'을 주장하는 이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에게 신라가 투르크였다는 주장은 이미 결론이 내려진 사안이다. 따라서 어떤 티끌만한 흔적이라도 끌어모아 답에 맞추려 한다. 그러면서 "중국에 맞서기 위해", 또 "국익을 위해"라고 말한다. 이렇게 우리도 중국과 똑같은 방식으로 대응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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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알림잔(송호림)은 東西 투르키스탄의 근현대사와 고전 차가타이어를 연구하는 독립적인 아마추어 사학자다. 지금까지 한국에서 중앙아시아 문제를 단편적으로 바라보며 실제와 다르게 소개하는 경향이 있어 이를 바로잡고자 오마이뉴스의 시민기자로 활동하게 되었다. 현재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드에 거주하며 페이스북에 '중앙아시아 연구회(Central Asia Research Group of Korea)' 모임을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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