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재난은 돈을 피해간다.. 빈국과 빈자에 더 치명타

임송수 2021. 8. 10.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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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일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한 남성이 거리의 선풍기로 더위를 식히고 있다. 이라크 정부는 폭염으로 인해 이날을 공식 휴일로 선포했다. AP뉴시스

재난은 사회의 가장 약한 고리를 무너뜨린다. 유엔 산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는 9일 IPCC 제6차 평가보고서 제1 실무 그룹 보고서를 통해 중앙아시아, 아프리카 사하라사막 이남 지역이 폭염에 취약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대표적인 저소득국 밀집 지역이다.

해가 갈수록 부유한 국가과 가난한 국가의 폭염으로 인한 피해 격차가 커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국가 내에서도 고소득층에 비해 저소득층이 폭염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블룸버그통신은 지난해 8월 기온, 소득, 사망률 간의 관계를 연구하는 기후영향연구소의 보고서를 인용해 폭염으로 인한 사망 위험성과 경제적 불평등의 관계를 9일(현지시간) 조명했다. 기후영향연구소는 세계를 2만4378개 지역으로 구분해 2015~2099년 기후 변화에 따른 예상 평균 기온과 사망률의 관계를 분석했다.

이에 따르면 2099년까지 전 세계의 4분의 3에 해당하는 지역에서 폭염으로 인한 사망 위험이 증가해 연간 사망률이 10만명당 73명에 이를 것으로 예측됐다. 이는 9일 기준 이스라엘의 코로나19 사망률인 10만명당 72.26명에 필적한 수준이다. 마이클 그린스톤 시카고대 경제학과 교수는 “기후 변화로 인한 사망 위험은 이전에 이해했던 것보다 약 10배 더 크다”고 말했다.

폭염 피해 저소득국에 집중
폭염의 피해가 지구 대부분을 덮칠 것으로 예상되지만 피해 수준은 국가마다 그리고 도시마다 다르다. 평균 기온이 비슷할 경우 그들의 운명을 나눈 건 소득이었다.

보고서에 따르면 1인당 예상 소득이 2만 달러도 되지 않는 가나 아크라에서 2099년 폭염 사망률이 10만명당 156명 증가할 것으로 나타난 반면 오히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선 10명, 1인당 예상 소득이 10만 달러 이상인 싱가포르에선 38명이 감소할 것으로 예상됐다. 또 1인당 예상 소득이 2만 달러를 조금 넘는 이라크 모술에선 216명의 사망자가 늘지만 미국 하와이주 호놀룰루에선 48명이 줄어들 것으로 나타났다.

마찬가지로 파키스탄 라호르에선 무려 10만명당 354명이 더 사망할 것으로 예측됐지만 거의 같은 평균 기온이 예상되는 미국 텍사스주 맥알렌에선 11명의 사망자가 줄어들 것으로 예측됐다. 저소득국은 폭염 피해가 급등하지만 부유한 곳에서는 도리어 피해가 줄어드는 역설이 발생한 것이다.
적응의 불평등
이러한 격차는 기후변화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폭염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냉방 시설, 보호 기반 시설 설치, 노인 돌봄 서비스 등 인프라 투자가 필요하다. 만약 적응을 위한 인프라가 확충되면 적응의 편익도 동시에 발생한다. 여기서 차이가 발생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소득이 높은 지역은 건강과 안전 대책에 투자할 가능성이 높지만 가난한 국가는 온전히 피해를 겪게 된다. 이 때문에 빈국에서 사망자가 증가하지만 선진국에선 폭염 사망자가 오히려 줄어드는 예측 결과가 나타난 것이다. 그린스톤 교수는 “기후 위험은 불평등을 악화시킬 수 있는데, 이는 소득과 적응이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가장 잘 갖춰진 지역에 축적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적응에 있어 경제성장도 중요하다. 경제가 성장하면 소득이 늘고 회복을 위한 투자도 함께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 보고서는 경제성장이 폭염으로 인한 사망률을 60% 감소시킬 것이라고 분석했다. 예상 소득이 늘지 않는다고 했을 때 사망률은 10만명당 200명 이상이다. 결국 경제성장 유인이 없는 국가들은 적응을 위한 역량이 부족해 폭염의 피해를 고스란히 입을 가능성이 크다.

올해 1월 유엔환경계획(UNEP)은 2020년 적응격차보고서를 발표하고 개발도상국의 적응 계획 및 구현을 강화하고 기후 피해를 제한하기 위해 추가 적응 재정 지원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선진국들의 절대적 적응 비용이 더 높을 수 있지만, 개도국이 국내총생산(GDP) 대비 적응 비용의 부담이 더 큰 데다 기술, 인적 역량도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탓이다.

더구나 개도국의 기후변화 적응에 필요한 연간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현재 개도국의 연간 적응 비용은 700억 달러로 추산된다. 그러나 UNEP는 이 비용이 2030년에 1400~3000억 달러가 되고, 2050년에는 2800~5000억 달러에 달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최근 저소득 국가들과 기후변화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국가들을 중심으로 적응 계획이 추진되고 있지만, 여전히 개도국들의 적응 재정은 선진국과 큰 차이가 있다.
빈부격차는 온도 격차로 이어져
국가 안에서도 빈부격차라 따라 폭염의 피해 수준은 달라진다. 같은 권역에 있더라도 소득 수준에 따라 폭염에 노출되는 정도가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미 공영방송 NPR에 따르면 캘리포니아대 연구팀은 미국 1056개 카운티 중 76%에서 저소득층이 고소득층보다 더 높은 온도에 노출됐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에 따르면 카운티 내 빈곤율이 높은 지역의 여름철 기온은 부유한 지역에 비해 섭씨 4도가량 높았다. 인종별로도 71%의 카운티에서 유색인종들이 백인들에 비해 높은 기온에 노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도시의 열섬 현상도 부를 피해간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지난 5월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에 발표된 한 연구는 미국 175개 도시 중 6개를 제외한 모든 도시에서 유색인종이 백인 거주자들보다 폭염에 더 많이 노출됐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대다수의 백인 거주지의 열섬 효과는 평균 1.47도로 나타났다. 반면 유색인종과 빈곤선 이하의 사람들이 거주하는 지역의 열섬은 2.77도로 거의 두 배에 가까웠으며, 흑인 거주지에선 가장 높은 3.12도를 기록했다. 연구팀은 “일반적으로 도심 한복판의 기온이 높다”며 “도심은 역사적으로 소수민족과 저소득 공동체가 위치한 곳”이라고 말했다.

임송수 기자 songst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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