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 보호? 분열? 캐나다 퀘백주 '백신여권' 도입 [김수진의 '별 일 있는' 캐나다]
캐나다에서 경험하는 크고 작은 '별일'들, 한국에 의미있는 캐나다 소식을 전합니다. <편집자말>
[김수진 기자]
▲ 코로나19 백신 |
ⓒ Pixabay |
수 개월 전부터 퀘백 정부는 상황이 악화될 경우 '백신여권'의 필요성에 대해 강조해왔다. 지난 달에는 보건부장관이 체육관, 극장, 팀 스포츠처럼 바이러스 전파 위험이 높은 장소와 활동들에 대해 비접종자들의 접근이 제한될 것이라고 밝혔었다.
"공동체 보호" vs. "공동체 분열"
'백신여권'의 목표는 델타 변이가 퍼지기 시작한 가운데 4차 유행을 억제하자는 것이다. 학교가 다시 문을 열고 추운 날씨가 시작되는 가을, 백신이 보급되기 전의 팬데믹 대응책이었던 대규모 제재와 봉쇄를 또다시 겪지 않기 위함이다. 7월 말 캐나다 공중보건기관이 제시한 모델에 따르면, 12세 이상 인구의 80% 이상이 2차 접종을 완료해야만 올 가을 의료기관에 과중한 부담이 가해지는 것도 막을 수 있다. 또한 주지사는 "두 번의 접종을 받기 위해 애쓴 사람들은 일상에 근접한 생활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현재 퀘백 주민의 83%가 1차 접종을, 67%가 2차 접종을 마친 상태다. '9월까지 접종 완료율 75%'라는 목표는 달성 가능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문제는 델타 변이다. 퀘백주는 지금 가장 낮은 보건 경보 단계인 '그린 존'에 속해 있어서 사업체와 모임, 공연 등의 재개가 상당 부분 진행돼 있다. 하지만 최근 확진자가 다시 증가하는 추세인 데다, 최근 14일간 확진자의 62%는 백신 미접종자 혹은 1차만 접종한 사람들이었다. 따라서 더이상 기다릴 여유가 없으며 지금이 바로 '백신여권'이라는 전략을 취할 때라는 것이 퀘백 주정부의 판단이다.
캐나다의 다른 지역들, 마니토바주와 프린스 에드워드 아일랜드(P.E.I)도 이미 비슷한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마니토바주에서는 백신카드(정부 앱으로 스캔할 수 있는 QR코드가 들어 있다)가 있으면 다른 지역을 여행한 뒤 돌아와서 격리를 하지 않아도 된다. 박물관, 카지노, 미술관, 요양원 방문도 백신카드가 있어야 가능하다. P.E.I는 12세 이상 모든 여행자들에게 이름, 주소, 백신접종 여부가 기록된 패스를 소지하도록 하고 있다. 그밖에 브리티쉬 콜롬비아, 뉴브런스윅, 노바스코샤 등의 주들도 백신여권 시행을 고려하고 있다.
캐나다 총리 저스틴 트뤼도 역시 연방정부가 규제하는 산업체 직원 및 공무원들에게 백신접종을 의무화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캐나다인들은 팬데믹을 벗어나기 위해 백신 접종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단지 개인적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를 보호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캐나다의 모든 주들이 백신여권제를 찬성하는 것은 아니다. 온타리오주의 경우, 더그 포드 주지사는 "분열된 사회"가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며 백신여권 제도를 시행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온타리오 의사 협회와 간호사 협회는 백신여권 혹은 백신 증명서 제도 실시를 주장하고 있다). 알버타주 주지사 재이슨 케니는 개인적인 건강 정보를 요구하는 것은 '개인정보보호법'에 위반된다는 이유로 사업체들이 그러한 요건을 부과하지 못하도록 했다.
퀘백주 내에서도 백신여권을 둘러싼 '정보 보호' 문제와 시행 방법에 대한 우려가 일고 있다. 야당인 연대퀘백당 대변인은 "실수를 피하고 시민들의 개인정보를 보호하기 위한 명확한 지침이 세워져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맥길 대학의 감염병 전문가 도날드 빈은 백신여권제가 사업주들에 의해 어떻게 시행될 것인지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백신여권제를 따르는 사업주들에게 인센티브를 줄 것인가? 혹은 따르지 않는 사업주들에게 처벌이나 벌금을 부과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손님을 가려내기 원치 않는 사업주들도 있을텐데, 그럴 경우 백신여권제의 취지가 무색해질 것도 염려했다. 백신여권이 없어 출입을 거부 당한 손님들의 강력한 반발을 걱정하는 이들도 있다.
웨스턴 온타리오 대학의 생명 윤리학자 맥스웰 스미스는 백신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타당한 이유를 지닌 이들까지 배제시키는 일이 없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말한다. 일례로 캐나다에서 승인되지 않은 백신을 접종한 유학생의 경우가 그러하다.
백신여권제가 차별이라는 주장도 있다. 주정부의 공중보건 조치들에 대한 시위를 기획해온 그룹 '퀘백 드부아'는 백신여권제에 대해 "매우 차별적인, 시민들에 대한 전대미문의 권리 침해"라는 말로 맞섰다. 그들의 페이스북 이벤트 페이지에는 수천 명의 사람들이 지지 반응을 보였다.
▲ 캐나다 미시소거에서 마스크를 쓴 한 남성이 코로나19 백신 접종소에 도착하고 있다. |
ⓒ 연합뉴스 |
이같은 우려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문가들은 바로 지금이 백신 접종을 강하게 독려해야 할 시기라는 의견이다. 감염병 전문가 매튜 아우턴은 백신여권이 대규모 집단 감염으로부터 사람들을 지켜줄 것이고, 백신을 접종한 이들에게는 일종의 인센티브가 될 것이라고 했다. 또 다른 전염병 학자 프라티바 바랄 역시 델타 바이러스로 인해 확진자가 다시 증가하기 시작한 지금이 바로 전략적으로 행동해야 할 때라고 말한다.
생명 윤리학자 맥스웰 스미스에 따르면, 공중보건 윤리의 일반 지침은 제한 조치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역시 팬데믹이 길어지고 델타 변이가 위협이 되고 있는 지금,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시도해서 효과적인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백신여권제가 더 많은 사람들이 접종을 받게 하는 효과적인 수단이 될지, 다른 주들도 퀘백주의 백신여권제를 주목해야 한다고 밝혔다.
'레스토랑 캐나다' 부회장 올리비에 부르보아도 이번 소식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백신을 접종한 사람들에게만 출입을 제한하면 식당 같은 비필수업종 사업체들이 문을 닫지 않아도 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 한번의 봉쇄가 행해진다면 이미 커다란 빚을 떠안고 있는 관련업계에 부담이 가중될 것임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퀘백 레스토랑 협회도 백신여권제 시행에 필요한 추가 노동력과 고객들의 불만 등 걱정되는 바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레스토랑이 다시 한번 문을 닫는 것과 비교한다면 그나마 백신여권제가 낫다는 입장이다.
백신여권제 도입 발표가 일단은 즉각적인 반응을 거둔 것으로 보인다. 발표가 나던 날 바로 1만1500명 이상이 접종 예약을 했고, 이는 최근 예약자의 2배에 해당하는 수치다. 유럽에서는 백신여권 반대시위가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캐나다 퀘백주에서는 얼마만큼의 효과 혹은 반발이 일어날지 주의깊게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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