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판 장발장은 없었다..자신 돌봐준 佛신부 죽인 르완다인

박형수 2021. 8. 10.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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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완다 출신 불법 체류자
지난해 낭트대성당 방화로 구속
출옥후 돌봐준 가톨릭 사제 살인
9일(현지시간) 프랑스 서부의 작은 마을의 성당에서 60세의 가톨릭 신부가 살해됐다. 프랑스 경찰이 성당에서 수사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지난해 낭트 대성당에 불을 지른 혐의로 구속됐던 르완다 남성이 출소 후 자신을 돌봐준 가톨릭 신부를 살해해 체포됐다. 용의자가 2년전 프랑스 당국에서 추방명령을 받고도 국내에 거주하며 살인까지 저지른 사실이 알려지자 프랑스 내에 "이민법을 강화하라"는 여론이 퍼지고 있다.

9일(현지시간) AFP통신, 영국 BBC방송 등에 따르면 르완다 출신의 용의자 에마뉘엘 아바이셍가(40)는 전날 경찰서를 찾아 남서부 방데에서 올리비에 메어(60) 신부를 살해했다고 자백했다. 피해 신부는 생로망쉬르세브르에 있는 몽포르탱 수도원장으로, 몇달 전부터 오갈 데 없는 아바이셍가에게 숙식을 제공해왔다. 경찰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현재로써는 테러 동기는 전혀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이 메어 신부를 에도하는 글을 자신의 트위터에 게재했다. [트위터 캡처]


낭트 대성당 방화로 구속…출옥 후 메어 신부가 돌봐
용의자 아바이셍가는 1994년 8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르완다 투치족 대학살에 가담한 후투족 출신으로, 2012년 프랑스로 넘어왔다. 아버지가 고향에서 죽임을 당하는 등 르완다에서는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없다는 이유로 망명을 신청했지만 프랑스 정부는 그를 난민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지난해 7월에는 프랑스 북서부에 위치한 낭트 대성당에 불을 지른 혐의로 붙잡혀 구속상태로 수사를 받다가 지난 5월 풀려났다. 당시 아바이셍가는 그곳에서 자원봉사 관리자로 일하고 있었다. 15세기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낭트 대성당은 당시 화재로 오르간이 불타고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한 창문이 훼손됐다. 재판을 기다리던 용의자는 지난 6월 말 정신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았고 7월 말 퇴원한 뒤 메어 신부의 보살핌을 받고 있었다.

메어 신부의 죽음에 대해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장 카스텍스 총리, 브루노 리테일레오 공화당 상원의원 등은 안타까움을 표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트위터에 메어 신부의 사진을 게재하고 "그의 얼굴에는 타인에 대한 관대함과 사랑이 묻어난다"며 "국가를 대표해 신부님께 경의를 표한다"고 전했다. 도로시 하루쉬나나 수녀는 로이터 통신에 "메어 신부는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어떤 사람이든 도우려 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낭트대성당 화재 모습. 이 화재로 스태인드글라스로 장식된 유리창이 훼손되고 오르간이 불탔다. 연합뉴스


르펜 "프랑스 내무부의 완전한 실패" 비판
극우 정치인 마린 르펜은 트위터에 프랑스 이민법에 대해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는 "내무부는 2019년 추방 명령을 받은 용의자가 왜 여태껏 프랑스에 머무르고 있었는지 설명하라"며 "불법적으로 프랑스에 들어와 성당에 불을 지르고 사제를 살해하고도 추방당하지 않는다는 건 내무부의 완전한 실패를 뜻한다"고 지적했다.

몽포르탱 수도원을 찾은 제랄드 다마르냉 장관은 "정치적 망명이 거부된 용의자가 방화 혐의로 계속 수사를 받는 중이라 추방할 수 없었다"고 해명하면서도 "가톨릭 사제에 대한 공격은 '프랑스 영혼'을 공격한 것과 같다"고 애도를 표했다.

프랑스 극우 정치인 마린 르펜과 내무장관 다르마냉이 트위터로 이민법에 대한 설전을 벌였다. [트위터 캡처]


그간 프랑스의 이민법에 대해 보수 진영에서는 '지나치게 관대하다'는 이유로, 진보 측에서는 '억압적'이라며 논쟁이 이어졌다. 앞서 2018년 프랑스 헌법재판소는 밀입국한 불법 이민자와 난민에게 인도적 차원에서 숙식과 의약품을 제공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이민법 조항이 위헌이라고 판단한 바 있다. 기존 이민법에는 불법 체류자에게 음식과 거처를 제공하면 최대 3만 유로의 벌금과 최장 5년의 징역형에 처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었다. 프랑스 헌재는 "자유·평등·박애는 프랑스 공화국의 공동의 이상으로 존중돼야 한다"며 "해당 조항은 헌법 정신에 어긋난다"고 결정해 무효가 됐다.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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