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톺아보기]'페미', 네가 왜 거기서 나왔어?

2021. 8. 10.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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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혜리/언론인·문화비평

2021년 열린 2020 도쿄올림픽이 막을 내렸다. 코로나 19에 갇힌 우리 마음과 무더위를 식혀주는 한줄기 소나기 같았던 선수들의 땀방울과 미소를 우리는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그 중에서도 이번 도쿄 올림픽을 얘기할 때 빠지지 않을 선수는 하계 올림픽 최초의 3관왕 신기록을 세운 짧은 머리 그녀, 여자 양궁의 안산(20·광주여대) 선수일 게다. 강철 심장과 뛰어난 기량도 나무랄데 없었지만 안 선수는 난데없는 ‘페미 논란’에도 흔들리지 않고 의연하게 금 과녁을 뚫었다는 점에서 두고두고 얘깃거리가 될 것이다. 상식 밖의 사건에 외신은 정확한 진단을 내렸다. BBC와 로이터통신은 안 선수를 향한 공격을 ‘온라인 학대’로 규정하고 “이는 한국 젊은 남성들 사이에서 확산하고 있는 반페미니즘 정서를 배경에 두고 있다”고 전했다.

반페미니즘 정서는 여성 혐오, 젠더갈등으로 달리 표현된다. 우리가 가야할 사회 통합의 대척점에 있다. 특정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전개됐던 젠더 갈등이 일찌감치 달아오른 대선 정국에서 다시 불붙으면서 사회적 이슈로 확산되고 있다. 국민의힘 대선주자 유승민 전 의원과 하태경 의원은 지난달 여성가족부 폐지를 대선 공약으로 제시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여가부 폐지론을 적극 옹호했다. 이어진 안산 선수의 ‘페미 논란’과 관련해 “핵심은 안 선수의 남성혐오 용어 사용”이라고 양준우 국민의힘 대변인이 의견을 표명했다. 비난받아 마땅한 데 이 대표는 “개인의 의견일 뿐”이란 반응을 보였다.

사회갈등을 봉합할 수 있는 묘책을 내놓아도 모자란 판국에 보수 정치권이 여혐 이슈에 편승하며 갈등을 조장하는 모양새는 영 보기 불편하다. 역차별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2030대 젊은 남성들의 지지를 끌어 모으겠다는 전략으로 선회한 듯 하다. 그렇지만 이런 꼼수에는 반드시 반대 급부가 따른다. 실제로 여성 유권자 사이에서 국민의힘 지지율은 떨어지고 있다. 최근 일련의 사안들이 가랑비에 옷 젖듯이 쌓인 결과다.

여론조사기관 한국갤럽이 지난 3~5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국민의힘 정당 지지율은 30%로, 더불어민주당(34%)보다 4%포인트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두 정당에 대한 남성들의 지지율은 국민의힘 34%, 더불어민주당 31%로 나타났으나 여성들 사이에선 국민의힘 25%, 더불어민주당 36%로 격차를 보였다. 정당 지지율을 4·7 재보선 직후와 비교해 보자. 지난 4월 13~15일 조사(정당 지지율 국민의힘 30%, 민주당 31%)에서 남성들은 국민의힘 31%, 민주당 30% 였고 여성들은 국민의힘 29%, 민주당 31%였다. 4개월 사이 국민의힘에 대한 남성층의 지지는 3% 포인트 늘었지만 여성 지지층은 4%포인트 줄었다.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많다. 1% 포인트가 뭐 그리 대단하냐고 할 수도 있지만 묘하게도 여성표에서 잃은 것 만큼 지지율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다면 달리 생각해 봐야 한다. 여성들의 선택이 차기 대선의 향방을 가를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라는 예측도 가능하다.

이렇게 길게 얘기한 이유는 여당이든, 야당이든, 나이가 들었든, 젊든 정치권에서 젠더 문제를 대하는 태도를 바꿔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어서이다. 공식적으로 선진국에 진입한 우리나라에서 가장 후진적인 분야가 정치권이다. 말은 장황하고 집권욕은 대단하지만 그것을 받쳐 줄 정책은 깊이도, 비전도 없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여성들이 처한 문제가 무엇인지, 실력으로 들어간 조직에서 왜 늘 ‘잠재적 피해자’로 남아야 하는지, 여성들의 노동은 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지 등. 제대로 공부를 좀 하라고 말하고 싶다.

페미니즘을 곡해하며 무조건 거부반응을 보이는 일부 네티즌에 편승하지 말고 진심으로 다가가 여성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기 바란다. 특히 2030세대 여성들에게 진심으로 다가가 물어보라. 그들이 우려하는 것은 무엇인지, 원하는 세상이 어떤 것인지. 미래를 책임질 정치권에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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