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치욕' 프로야구, 배에 찬 기름 걷어내라
2008년 베이징올림픽, 그리고 2021년 도쿄올림픽.
한국 야구가 13년 사이에 극과 극의 상황을 맞았다.
한국 야구 대표팀은 2008년 베이징에서 올림픽 사상 처음으로 한국의 구기종목 금메달을 따냈다. 그리고 올림픽 정식종목에서 사라졌던 야구가 2021년 도쿄에서 부활했을 때, 한국은 참가한 6개팀 중 4위에 머물렀다.
프로야구가 위기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이후 프로야구 관중 수는 드라마틱하게 치솟았다. 2007년 KBO리그 관중 수는 410만4429명이었는데, 2008시즌 관중 수가 525만6332명으로 전년 대비 28.06%(115만1903명)나 늘어났다. 13년 만에 처음으로 500만 관중을 돌파했다.
이후 2009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대표팀이 선전하자 여성 관중, 가족 단위 관중이 폭발했다. 2016년 프로야구는 총 관중 833만9577명으로 국내 프로 스포츠 사상 최초로 800만 관중 시대를 열었다.
그러나 2017년 정점을 찍은 프로야구 관중은 서서히 내리막을 탔다.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탓에 관중이 제한되면서 수치는 급감했다.
문제는 팬들이 느끼는 ‘체감 인기’도 예전만 못하다는 것이다. 일부 스타 플레이어들의 팬서비스가 도마에 올랐고, 또 다른 선수들은 음주운전을 하거나 승부조작에 연루되는 등 도덕적인 흠결을 드러냈다. 점점 국제 경쟁력에서 멀어지고 있는 선수들의 빈약한 경기력은 관중석의 팬들이 먼저 느꼈다.
여기에 지난달 일부 선수들이 방역수칙을 위반하고 팀 외부의 여성들과 숙소에서 술을 마신 게 드러났다. 문제는 이런 일탈 행위 가운데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왔는데도 구단과 선수는 이를 숨기고 KBO 긴급이사회를 열어 리그 중단을 결정한 것이다.
‘확진자가 나와도 대체 선수로 리그는 계속 치른다’는 시즌 전의 약속은 휴지조각이 됐다. 팬들은 원칙이 실종된 리그 운영에 크게 실망했고, 일탈을 하고도 거짓으로 숨기려 했던 선수들에게 분노했다. 여기에 올림픽에서 연이은 참패가 기름을 부었다.
프로야구는 과거 1997년부터 2006년까지 시즌별 총 관중 수가 200만∼300만명대에 그쳤다. ‘잃어버린 10년’으로 불린다. 어쩌면 팬을 존중하지 않던 그간 프로야구의 아주 사소한 날갯짓이 모이고 모여서, 이게 도쿄올림픽 부진을 계기로 폭발하는 폭풍이 되어 다시 한 번 프로야구를 암흑기로 되돌리는 ‘나비 효과’가 일어날 수 있다.
뒤늦은 후회가 될 수도 있지만, 프로야구가 지난 13년간 호황기를 누리면서 지나치게 안주한 게 아닌가 자성해야 한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때 한국의 에이스 노릇을 했던 류현진은 당시 연봉 1억8000만원(당시 기준 3년차 최고 연봉)을 받았다. 대표팀 내 최고 연봉자 김동주(당시 두산)는 연봉 7억원이었다. 이번 도쿄올림픽 때는 마무리 오승환(삼성)이 연봉 11억원을, 포수 양의지(NC)가 15억원을 받는다. 김응용 전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KBSA) 회장이 도쿄올림픽 대표 선수들에게 "배에 기름이 찬 상태에서 뛰었다"고 일침을 날린 것에 많은 팬들이 호응하고 있다.
프로야구가 호황기를 맞은 사이에 스타 플레이어들의 연봉은 두 배 이상 치솟았지만, 국제경쟁력은 뒷걸음질쳤다. 프로야구는 기본으로 돌아가야 할 때다. 실력, 원칙, 팬서비스라는 베이스를 지금까지 어떻게 다뤄왔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당장 현장 관계자들은 걱정이 크다. 구단 관계자는 "KBO리그 시즌 도중에 국제대회가 열렸는데 결과가 좋지 않으니 각 구단 관중수입에 직접적으로 악영향이 갈 것이다. 신규 팬 유입은 당연히 어렵고 기존 야구팬 관심도 줄어들고 있으니 엄청난 위기다. 팬이 줄어들면 코로나19로 어려운 모기업도 지원이 줄어들 수 있어 걱정"이라고 했다.
류대환 한국야구위원회(KBO) 사무총장은 "2017년 WBC 1라운드 탈락 등 성적이 좋지 않았던 앞선 국제대회 때와는 확실히 다른 상황이다. 사람들이 시간이 지나면 방역수칙 논란도, 도쿄올림픽 패배도 잊을 거라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KBO, 10개 구단, 선수 등 야구계 모든 관계자들이 깊이 반성해야 한다. 경기력을 향상시키고, 팬들이 원하는 기준에 맞춰 바르게 행동해야 한다"고 했다.
이순철 해설위원은 "응원을 받지 못한 건 자초한 일이다. 팬들의 떠난 마음을 돌려세우긴 정말 쉽지 않다. 선수들이 사생활에서도 다 변해야 한다. 대오각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소영 기자 park.soyoung091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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