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무당 이어 인도네시아 주술사, 글로벌로 가는 K호러
연상호 '재차의'는 흑마술 담아
아시아권 괴담 잇따라 영화로
나홍진 감독이 제작한 한국산 태국 공포영화 ‘랑종’(7월 14일 개봉, 감독 반종 피산다나쿤)이 개봉 한 달 만에 82만 관객을 동원하며 올해 한국영화 흥행 3위에 올랐다. ‘모가디슈’ ‘발신제한’에 이어서다. ‘랑종’은 태국말로 무당(ร่างทรง)이라는 뜻. 신내림이 대물림되는 태국 무당 가문의 비극을 그렸다.
이어 ‘부산행’ 감독 연상호가 각본을 맡아 지난달 28일 개봉한 오컬트 영화 ‘방법: 재차의’(감독 김용완, 이하 ‘재차의’)엔 인도네시아 주술꾼 ‘두꾼(Dukun)’이 등장해 되살아난 시체 ‘재차의(在此矣)’를 조종한다.
아시아 이웃국가의 괴담을 흡수한 K호러가 잇따른다. tvN 드라마 ‘방법’의 극장판인 ‘재차의’는 조선 초기 문신 성현(1439~1504)이 쓴 수필집 용재총화 속 동양판 좀비 ‘재차의’에 인도네시아 흑마술을 결합했다. 한국 제약회사 비리를 파헤치는 줄거리에 기존 한국 공포물에서 보지 못한 색다른 주술 장면을 녹여냈다. “아시아의 요괴나 괴담을 현대적인 방식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이야기를 고민했다”는 연 감독은 용재총화 속 다른 요괴들은 그 유래가 설명돼 있지만, 재차의는 ‘이 요괴는 미신 같은 것이라 우리가 처리했다’고만 적혀 있는 점에 주목했다고 했다. “재차의는 외국에서 온 것인가, 생각했죠. 보통 시체를 되살리는 주술사가 흑마술을 쓰는데 아시아에 흑마술이 있는지 검색하다 인도네시아 두꾼까지 연결됐죠.” 지난달 20일 ‘재차의’ 시사회 후 한 말이다.
‘부산행’ ‘킹덤’ 등 K좀비의 전영 안무가가 시체 군단의 대형 액션신을 디자인했다. 김용완 감독은 “‘두꾼’은 인도네시아의 무당 같은 존재”라며 “누군가를 해하는 두꾼, 산파 같은 두꾼, 귀복을 빌어주는 두꾼도 있다. 보편적인 정서를 표현해 (인도네시아 문화가) 오해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그려냈다”고 했다.
좀비 블록버스터 ‘부산행’ ‘반도’와 넷플릭스 좀비 사극 ‘킹덤’ 등 K호러가 극장에 이어 온라인 스트리밍 플랫폼(OTT)에서 호응을 얻는 가운데 이런 아시아 문화권 괴담은 한국 창작자들에겐 매력적이다. 개성적이면서도 아시아권의 문화·정서적 공감대를 공유한다는 점에서다. 한국 관객에겐 신선함으로, 아시아 각국 시장엔 친근함으로 공략하는 1석 2조 전략이다. 영화진흥위원회의 ‘2020년 한국 영화산업 결산’에 따르면 2016~2020년 한국영화 완성작의 권역별 수출 비중에서 아시아 지역은 적게는 48.7%(2020년)에서 많게는 72.3%(2019년)까지 차지했다.
불교 승려의 퇴마의식을 내세워 지난달 2일 넷플릭스로 공개된 이성민 주연 오컬트 영화 ‘제8일의 밤’은 한국에선 혹평받았지만 필리핀에선 1위(이하 7일 스트리밍 사이트 순위 플릭스패트롤 집계), 말레이시아·대만·태국·베트남 등에서 2위를 차지하며 호응을 얻었다. 신인 김형태 감독의 데뷔작으로 전직 승려 퇴마사(이성민)가 부처의 봉인에서 풀려난 악귀에 맞서는 내용이다.
연 감독은 직접 연출하는 넷플릭스 ‘지옥’, 작가로 참여한 티빙의 ‘괴이’ 등 국내외 OTT의 오리지널 호러 시리즈를 줄줄이 선보인다. 그는 “한국 콘텐트에 관심이 커지다 보니 외국과의 협업도 훨씬 더 폭이 넓어진 것 같다”면서 “뉴욕에서 무당이 굿하는 내용을 만들면 어떨까 농담한 적이 있는데 그게 실제로 만들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더 많은 검증이 필요해졌다”고 했다. “넷플릭스 ‘지옥’ 같은 작품도 전 세계에 동시에 나가다 보니까 미묘한 부분이 있어요. 요즘 ‘문화적 전조’라고 표현하잖아요. 다른 문화를 훔쳐 사용하는 거로 보일 수 있어 예전보다 훨씬 많은 방식으로 확인하려 노력합니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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