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을 원하는 이들을 '기득권'으로 내모는 사회

반진욱 2021. 8. 9.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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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벌·인맥 제쳐두고 오직 실력으로 인재를 뽑아야 하는 게 현 정부가 강조하는 ‘공정’ 아닙니까? 그렇게 시험 쳐서 공정하게 뽑자고 주장했더니 어느새 저희는 ‘기득권’으로 몰렸습니다.”

최근 만난 국민건강보험공단 취재원이 털어놓은 하소연이다. 건보공단 정규직인 그는 고객센터노조 직고용을 반대하는 자신들을 여론이 기득권으로 내몬다며 답답해했다.

지난해부터 인천국제공항공사, 건보공단, 한국가스공사 등 공기업들이 ‘외주 직원 직고용’ 문제로 몸살을 앓는다. 위탁회사 근로자들이 본인들을 직고용하라고 연일 시위를 벌인다. 민주노총까지 합세해 회사를 압박한다. 이들은 내부 정규직 직원 반발도 아랑곳 않는다. 직고용을 반대하는 직원들을 향해 철없는 ‘기득권’이라고 손가락질한다. 이 논리에 정치권과 시민단체도 가세한다. “필기시험 합격해서 정규직이 됐다고 비정규직보다 2배가량 임금을 더 받는 것이 오히려 불공정” (김두관 더불어민주당 의원) “단 한 번의 입사시험으로 평생 정규직을 보장받고 그렇지 못한 이들에게는 불안정한 삶을 살도록 하는 게 공정한가” (청년학생노동운동네트워크) 등의 발언이 쏟아졌다. 이들은 정규직 직원을 운 좋게 취업에 성공한 후 기득권이 된 ‘로또 당첨자’로 취급한다.

과연 그럴까? 공기업 정규직 취업은 시험 한 번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토익·학점·자격증으로 층층이 스펙을 쌓고 서류전형부터 통과해야 한다. 겨우 통과해 시험을 치르고 나면 기나긴 면접이 기다린다. 소요되는 시간만 최소 3개월이다. 공기업 채용에 한 번이라도 지원해봤다면 ‘로또 취업’ ‘재수 좋게 시험 잘 봐서’라는 말을 함부로 못할 테다. 정규직 직원을 기득권으로 몰아가는 방법은 비정규직 문제 해결의 해법이 아니다. 갈등을 키우지 않는 새로운 해결책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반진욱 기자 halfnuk@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21호 (2021.08.11~2021.08.1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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