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생 유학생 박강아름이 가장이 되는 길

김용현 2021. 8. 9. 19:1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자전적 다큐 '박강아름 결혼하다' 19일 개봉
영화 '박강아름 결혼하다' 스틸. 영화사진진 제공


불어 한마디 할 줄 모르는 남편이 아내의 프랑스 유학길에 따라나선다면 ‘지긋지긋한 가부장제’와는 다른 결혼 생활이 펼쳐질까. 82년생 유학생 박강아름 감독은 자전적 다큐멘터리 ‘박강아름 결혼하다’에서 남편 성만과 함께 마주하는 가부장제의 반복과 극복을 날 것의 시선으로 드러낸다.

아름은 처음부터 가족을 짊어지고 유학을 떠날 생각은 없었을지 모른다. 성만도 아름이 3~4년 동안 자신은 영화 공부를 하고 성만은 요리 공부를 하자고 하는 말에 가벼운 마음으로 학생 비자를 들고 프랑스로 함께 떠난다.

하지만 가난한 유학생 부부에게 찾아온 건 무거운 현실이었다. 타지에서 외국인인 그들에게 언어 때문에 가부장제와는 정반대의 모습이 펼쳐졌다. 불어를 하는 아름이 경제와 행정을 맡고 ‘불어 까막눈’ 성만은 집안일을 맡게 된다. ‘주부 우울증’은 성만에게 찾아온다. 그는 자신을 ‘하인’으로 부르며 외부와는 단절된 삶을 살 수밖에 없는 환경에 놓인다. 프랑스 유학의 꿈은 아름의 것이지 성만의 것이 아니었다. 또 다른 가부장제가 그들 사이에 들어섰다.

영화 '박강아름 결혼하다' 스틸. 영화사진진 제공

어쩔 수 없이 마주한 가부장제를 극복하기 위해 아름이 기획한 건 ‘외길식당’ 프로젝트다. 우울함에 빠진 성만을 구해내면서 자신의 영화도 찍기 위한 시도였다. 성만은 그들의 집에서 아름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고향 음식이 그리운 유학생과 교포들을 위해 한국 음식을 만들고 대접했다. 덕분에 성만의 삶은 고립에서부터 조금 벗어났다. 하지만 좋은 재료를 고집하는 성만 때문에 외길 식당은 늘 적자였다고 한다.

여유가 없어지면서 작은 일에도 화가 나는 건 가장의 일인 걸까. 그들에게 카페에서 즐기는 3유로(약 4000원)짜리 커피가 사치일 만큼 가난했다. 아름은 성만이 일반 토마토 대신 비싼 체리 토마토를 샀다는 이유로 화를 내고, 아름이 생리 때문에 따뜻한 파스타를 먹고 싶었는데 성만이 찬 파스타를 만들었다는 이유로도 화를 낸다. 아름은 이런 모습을 성찰과 고백을 담아서 풀어낸다. 한 영화제에 아름이 참석한 장면에선 외국 관계자는 “당신은 응석받이다. 나도 모든 걸 다 해주는 저런 남편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한다.

영화 '박강아름 결혼하다' 스틸. 영화사진진 제공

이들 사이에 딸 보리가 태어나면서 그들의 등은 더욱 무거워 지지만 삶은 계속된다. 육아 노동을 감당하는 성만은 외길식당에서 만난 부부에게 “프랑스에선 어떤 날은 너무 행복하고, 어떤 날은 너무 불행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박강아름 감독은 인터뷰에서 “남성적인 역할과 여성적인 역할이 태어나서부터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젠더 권력에 의한 것이라면 이 역할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 나와 성만이 처한 이 작은 상황이 이걸 보여준다”고 말했다.

영화 '박강아름 결혼하다' 포스터. 영화사진진 제공

그러면서 “일도 사랑도 다 잘 해내고 싶었던 30대 여성의 좌충우돌 이야기로 보이기 바란다. 다만 이 여성은 자신의 욕망에 솔직할 뿐”이라며 “나는 많은 여성이 자신의 욕망에 솔직하고 자신의 부족함이나 한계를 드러내는 것에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으로 영화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영화의 끝부분 이들은 다 같이 덩케르크 해변에 다다른다. 바다는 아름다웠지만 비바람이 몰아친다. 아름은 해변 앞에서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보리를 태운 유모차는 좀처럼 모래사장에서 앞으로 가지 않는다. 몸이 아픈 성만은 아름과 함께 유모차를 들고 비바람을 뚫고 해변 앞으로가 기어이 사진을 찍는다.

아름은 그 장면에 관해 “나에겐 정상 가족의 전형적인 이미지가 있다”라며 63빌딩을 배경으로 엄마, 아빠, 아이가 손잡고 가는 장면과 그리고 아쿠아리움의 유리에 비치는 가족의 그림자가 비치는 장면, 해변에 앉아서 하늘과 파도를 바라보는 장면 등을 열거했다. 그러면서 “나는 성만이 도시락으로 싸 온 김밥을 해변에 다 같이 앉아서 먹고 싶었다. 그리고 바다를 뒤로하고 사진 한 장을 남기고 싶었을 뿐이었다. 내 안에 있는 정상 가족의 전형적인 이미지 안으로 내가 들어가고 싶었다”고 말했다. 19일 개봉.

김용현 기자 face@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