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사니] 낯선 기준들

임세정 2021. 8. 9. 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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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세정 문화스포츠레저부 기자


요즘 꽤 난감하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시청률이다. 시청률 조사업체들은 하루도 빠짐없이 전날의 TV 프로그램 시청률을 발표한다. 방송사들은 작품을 홍보하는 데 시청률을 활용한다. 주변에서 많이들 본다는 프로그램의 시청률이 높게 나오는 걸 보면 시청률은 여전히 믿을만한 지표인 듯하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의 영상물 시청 패턴을 보면 지금 TV 시청률이 작품의 흥행을 판단하는 적절한 기준은 아닌 듯도 하다. 나도 방송 프로그램을 TV로 챙겨보지 않은 지 몇 년 됐다. 드라마라면 전편의 방송이 다 끝난 뒤 몰아보는 ‘정주행의 즐거움’을 누리거나 내가 편한 시간에 틈틈이, 모두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로 본다. 예능 프로그램도 마찬가지다. 굳이 TV 앞에 앉아 방송 시간을 기다릴 이유가 없다.

최근 시청률이 1%대로 저조한 한 드라마가 넷플릭스나 유튜브 등 온라인 플랫폼에선 관련 콘텐츠의 조회 수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분석을 내놓은 주문형비디오 유통업체는 이 같은 현상에 대해 “20대가 많이 보는 드라마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 설명은 어느 정도 맞기도 하지만, 작품의 흥행성을 입증할 수는 없다. 이 드라마는 첫 회 시청률(2.2%, 닐슨코리아 기준)이 가장 높았다. 영상물 시청 패턴을 연령대로 가르기도 쉽지 않다. 요즘 10대도 50대도 OTT나 유튜브가 영상물 소비의 주요 통로다. 그리고 소위 흥행하는 작품들은 지금도 여전히 시청률이 ‘비교적’ 잘 나온다.

시청률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문제가 제기된 후 콘텐츠 영향력 지수(CPI)라는 새로운 기준이 개발됐다. 프로그램 관련 뉴스를 구독한 사람의 수, 온라인 검색량 등을 종합해 산출하는 수치다. 그러나 여전히 방송가는 이 낯선 기준보단 시청률을 의식하고 내세운다. 대중도 시청률을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지난달 ‘비욘더로드’라는 전시회의 미디어 프리뷰에 다녀왔다. 이머시브(immersive) 장르의 전시회였다. 연극 등에 먼저 적용된 이 장르는 우리 말로 ‘실감 몰입형’이라고 표현된다. 공연에선 관객이 무대 위로 올라가 직접 참여하는 형태다. 작품에 대한 안내가 없는 이 전시는 관람객이 오감을 활용해 능동적으로 감상에 ‘뛰어들어야’ 한다.

낯선 전시 형태에 처음부터 적응하진 못했다. 내 기준에서 전시는 다른 요소의 방해 없이 그림이나 조형물을 관람하는 거였다. 내 익숙한 기준에서, 음악은 콘서트장에서 소리 지르고 춤추면서 즐기거나 조용히 감상하는 거였다. 일렉트로닉 음악을 들으면서 비디오아트를 감상하고 동시에 향기와 조명을 느끼려니 갑자기 속싸개 풀린 신생아가 된 기분이었다.

전시의 연출자는 “감상에 옳고 그른 것은 없다. 오감이 동시에 자극돼 당황스러운 기분이 들었다면 그것 역시 관람객의 개인적이고 진실한 감상”이라고 말했다. 거리두기가 일상화되고 기술이 발달하면서 실감 몰입형 전시는 늘어날 것이다. 전시를 보는 새로운 기준은 익숙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가만, ‘감상하는 방법’에 대한 기준이란 게 있긴 있었던가.

우리가 당연시하는 기준은 많은 경우 익숙한 기준이다. 오래전부터 관습적으로 적용돼 온 기준, 너무나 익숙해서 이제 와서 바꾸기엔 번거로운 기준, ‘왜’라는 질문을 막아버린 기준. 하지만 사회 여기저기서 새로운 기준을 요구하고 있다. 시대의 흐름, 산업의 발전, 코로나19와 같은 상황은 끊임없이 유연성을 요구한다.

최근 카카오엔터테인먼트는 다음 웹툰과 카카오페이지의 웹툰 콘텐츠를 통합해 카카오 웹툰 서비스를 시작했다. 카카오는 “웹툰을 살아 숨 쉬는 것처럼 전하고 사용자경험(UX) 설계의 틀을 파격적으로 바꿨다”고 했다. 사용자들은 ‘작은 직사각형의 섬네일 이미지와 관성적인 디스플레이’를 대체한 공급자 관점에서 만든 불필요한 화려함이 불편하다고 호소한다. 기업이 사용자의 니즈를 잘못 파악한 건지, 사용자에게 낯선 기준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한 건지 좀 더 지켜봐야겠다.

임세정 문화스포츠레저부 기자 fish813@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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