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경제와 감동

신준섭 2021. 8. 7. 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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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준섭 경제부 기자


올림픽에 세계인의 시선이 집중되는 가장 큰 이유를 꼽으라면 ‘감동’이 아닐까 싶다. 4년간 혼신의 힘을 다해 역량을 끌어올린 이들이 한자리에서 맞부딪히며 불꽃이 튀어오른다. 이 순간이 전파를 통해 시청하는 이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특히 자국 선수 경기라면 마음의 기울기가 가팔라진다. 내가 살고 있는 나라의 국기를 유니폼에 담고 격전을 펼치는 모습은 감동의 원동력이 된다.

메달의 색깔이나 순위가 중요한 게 아니다. ‘넘사벽’(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으로 여겨지던 세계 강호와 맞붙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중요하다. 예상하지 못했던 순위를 기록하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스포츠를 잘 모르는 이들이라도 이러한 모습을 접하면 마음이 들뜰 수밖에 없다.

사례가 다양하다. 한국 역사상 최초로 여자 사브르 단체전에서 동메달을 따낸 4인의 여검사들이 일궈낸 분투는 눈을 떼기 힘들었다. 세계 2위 이탈리아와 대적해 마지막 점수를 내며 얼싸안는 순간까지 어떤 여정을 거쳤을지 생각해 보면 가슴이 아린다. 허벅지 핏줄이 터지면서까지 숙적 일본과 겨뤄 8강에 진출한 여자 배구는 어떤가. 세계 4위 터키에도 신승하며 4강 무대에 올라 형언하기 힘든 감동을 국민에게 선사했다. 해맑은 모습으로 25년 만에 한국 높이뛰기 신기록을 수립하며 4위에 오른 우상혁 선수의 경기에선 희망이라는 이름의 감동을 접했다. 선수들이 흘려 온 피땀이 고스란히 전해진 덕분이다.

경제 정책도 올림픽처럼 감동을 줄 수 있을까. 답을 내놓기는 쉽지 않지만 한 가지만은 분명하다. 경제 정책은 스포츠와는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작동 원리 자체가 좀 다르다는 점이다. 결과만이 국민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 좀 감성적으로 말하자면 이렇다. 크게 봐서 누구나 열심히 노력하면 만족할 만한 수준의 부(富)를 축적할 수 있다는 희망을 줘야 한다. ‘성장 사다리’가 있다는 믿음을 국민에게 주는 것 자체가 감동이 될 수 있다.

이를 전제로 할 때 정부의 경제 정책에서는 감동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정권 초기 도입한 개념인 소득주도성장부터 살펴보자. 소득이 늘면 경제도 성장한다는 논리로 기존 경제학의 상식을 파괴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결과는 어떨까. 2017년 3.2%였던 경제성장률은 내리막만 걷는다. 2018년에 2.9%, 2019년에는 2.2%까지 떨어졌다. 코로나19라는 돌발 변수가 등장한 지난해를 빼고 봐도 하향 곡선이 명확하다. 그만큼 성장이 정체 국면을 보였다는 소리다.

소득주도성장을 얘기하려면 소득 상향의 핵심 기제인 최저임금을 빼놓기가 힘들다. 2017년에 시급 6470원이었던 최저임금이 올해에는 8720원까지 뛰어올랐다. 4년 만에 34.8%나 급등한 것이다. 얼마나 가계에 도움이 됐을까. 통계청 가계동향조사를 살펴보면 근로자 가구의 근로소득은 최저임금과 달리 그리 급증하지 않았다.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4분기 기준 근로자 가구 월평균 근로소득(479만5157원)은 정부가 출범한 2017년 2분기(408만6401원)에 비해 17.3% 오른 것으로 파악된다. 최저임금 인상폭에 비해서는 효과가 불분명하다.

그래도 올랐으니 다행이라고 관대하게 평가를 내리기가 쉽지 않다. 청와대에 전광판까지 마련하며 부산을 떨었던 일자리를 보자. 최저임금이 고공 행진하는 동안 30~40대 일자리는 사라져갔다. 2018~2019년 연령대별 취업자 증감을 보면 30~40대 취업자 수가 전년 동월보다 증가한 것은 2019년 12월이 유일하다. 그나마도 30대만 전년 동월 대비 2000명 느는 데 그쳤다.

부동산은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다. 부를 축적할 수 있다는 희망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부동산 관련 정책을 바라보는 국민에게서 곡소리가 나온다. “부동산만큼은 자신 있다”던 문재인 대통령의 말은 공허해진 지 오래다. 집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내 집 마련의 꿈을 접어야 하는 이들이 늘었다. 임대차 3법 시행 이후로는 전셋값까지 뛰어오르며 가계를 옥죄기 시작했다. 얼마나 열심히 정책을 준비했는지는 몰라도 결과를 보면 감동은커녕 실망만 들끓는다.

국민 개개인이 지닌 인간의 욕구를 가볍게 본 결과로 읽힌다. 빌 클린턴 미국 전 대통령이 1992년 대선 당시 내걸었던 문구는 경제 정책에 감동이 없는 지금의 한국에 유효하다.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

신준섭 경제부 기자 sman32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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