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원준 칼럼] 자영업자, 그 불운함에 대하여

태원준 2021. 8. 6. 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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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화·민주화를 거치고 선진국에 올라서는 동안
정책 사각지대에 방치됐던 비대한 자영업 계층
아등바등 버텨내던 이들이 소주성·K방역에 쓰러져가
자영업 문제의 구조적 해법 이번 대선에선 나와야 한다

한국 자영업자처럼 불운한 집단도 흔치 않다. 월급생활자들이 “회사는 전쟁터요, 나가면 지옥”이라 말하는 척박한 환경에서 오랜 세월 버텨왔다. 임금노동의 울타리 바깥이 ‘지옥’인 건 경쟁이 훨씬 치열해서인데, 현재 국내 취업자 중 자영업자 비중은 25%나 된다. 미국(6%)의 4배, 일본(10%)의 2.5배, 프랑스(12%)의 2배. 일본인은 10명 중 1명이 자영업자지만, 한국인은 4명 중 1명이 일본의 3분의 1에 불과한 내수시장에서 자영업으로 먹고산다. 그중 절대다수는 도소매 등 5대 업종에 집중돼 있다. 과잉경쟁·각자도생의 비좁은 시장에 왜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몰려 있게 됐을까.

한국은 산업화를 거쳐 고도성장을 누리고 중진국에 오래 머물다 이제 선진국 소리를 듣게 됐다. 70년에 걸쳐 진행된 이 과정에서 늘 자영업자가 많았다. 1970년 자영업자 비중은 35%였는데, 함께 매달린 무급가족종사자를 포함하면 70%에 육박했다. 취업자 3명 중 2명이 자영업에 종사하는 비정상적 구조가 만들어진 건 전쟁 뒤 맨땅에서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정부는 가난했고 취직할 기업은 부족해 사람들은 알아서 살아가야 했다. 임금노동 울타리 안에 들어가지 못한 이들이 식당 세탁소 슈퍼마켓 같은 일자리를 스스로 만들면서 영세한 자영업자가 많아졌다. 비대한 자영업 인구는 한국인이 그만큼 아등바등 살아왔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한국 산업화는 고용 창출이 많은 중소기업 대신 성장 속도가 빠른 대기업 위주로 진행됐다. 기업이 성장하는 속도만큼 임금생활자가 늘어나는 속도는 빠르지 않았다. 경제가 커질수록 기업 고용이 늘어 자영업자는 줄기 마련인데 충분히 그러지 못했다. 1인당 소득 2만 달러 시점(2007년)의 자영업자 비중은 여전히 32%였다. 그래도 80, 90년대 고도성장기에는 낙수 효과가 있었다. 살만해지나 싶더니 이번엔 민주화가 진행됐다. 시민 권리가 신장되며 노동권이 강화됐다. 최저임금이 도입되고 노동조합이 커지고 임금 상승이 가팔라졌다. 모두 기업에 고용된 이들을 위한 거였다. 스스로 일터를 만들어 노동하던 이들의 권리는 ‘노동권’에 담기지 않았다.

노동자의 삶이 향상되는 건 분명 좋은 일인데, 그럴수록 자영업자는 삶이 팍팍해지는 얄궂은 운명을 가졌다. 세상은 그들을 ‘사장님’이라 불렀고, 정부는 노동자를 부리는 ‘사용자’로 대했다. 상가권리금이 법제화된 것은 2015년의 일이다. 노동자의 온갖 수당이 법으로 정해지는 동안 자영업자의 최대 밑천은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 채 방치됐다.

노동권이 급격히 강화되면서 노동시장 경직성은 세계 최고 수준에 올라섰다. 해고도, 재취업도, 청년의 신규 진입도 어려운 아성이 됐다. 해고가 어려우니 기업이 채용을 꺼려서 사람들을 계속 자영업에 기대게 했다. 재취업이 어려우니 기업에서 밀려난 이들이 자영업을 할 수밖에 없었다. 노동시장의 견고함에 비해 사회안전망은 취약해서 퇴직한 이들이 노후를 보내려면 자영업을 해야 한다. 오갈 데 없는 청년에게 정부가 나서서 창업을 장려하니 그들도 자영업에 뛰어들고 있다. 커피점이 망하면 며칠 뒤 그 자리에 다른 커피점이 들어서는 것은 자영업자가 죽어나가는 자리를 다른 자영업자가 신속히 채우도록 사회 구조가 짜여 있기 때문이다.

민주화 이후 보수·진보 진영이 고착됐다. 각각 성장과 분배를 외쳤고 기업과 노동자를 대변했다. 보수가 말한 성장은 기업의 성장이었고, 진보가 말한 분배는 그 과실을 임금노동자와 나누라는 거였다. 대선을 여러 번 치렀지만 자영업자를 위한 구호를 들어본 적 있는가. 성장과 분배를 넘어 삶의 질을 외쳤던 ‘저녁이 있는 삶’마저 퇴근하는 임금생활자를 향한 거였다. 경제민주화니 사람 사는 세상이니 하면서 정치인들은 늘 시장에 갔는데, 자영업자는 그들이 찍는 사진의 배경화면이었을 뿐이다.

문재인정부는 소득주도성장을 꺼냈다. 그 ‘소득’은 임금소득을 뜻했다. 자영업 가구 평균 소득이 임금노동 가구의 76%까지 떨어진 때였지만 여전히 자영업자를 사용자로 보았다. 최저임금 인상에 자영업이 한계로 내몰릴 때 코로나 사태가 터졌다. K방역은 기업 활동과 임금노동이 지속되게 해줬고, 피해는 결국 자영업자 몫이 됐다. 산업화 시절에도, 민주화 시기에도, 선진국이 돼서도 자영업자는 완벽한 사각지대에서 발버둥 쳐야 했다. 다시 대선판이 열렸다. 누군가는 이런 구조적 문제와 해법을 말해야 한다.

태원준 편집국 부국장 wjt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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