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윰노트] 우리 주위에는 왜 멍청이가 많을까

2021. 8. 6.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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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민 북스피어 대표


MBC 라디오 ‘표창원의 뉴스하이킥’ 담당 피디의 전화를 받았다. 금요일마다 하는 인터뷰 코너에 나와 달라는 요청이었다. “굳이 왜 저를?” 하고 물으니 무슨 대답이 돌아오긴 했는데 한강 근처에서 달리던 중이라 못 알아들었다. 다만 출연료가 얼마인지를 확인하고, 그렇다면 뭘 고민하랴 싶어 나가기로 했다. 생방송이라서 걱정했는데 방송 들어가기 전에 진행자인 표창원씨가 이것저것 물어봐준 덕분에 금방 입이 풀렸다. 방송 시간은 20분이 조금 넘었을까. 추리소설을 만드는 출판사 편집자라면 능히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 이어졌고 그럭저럭 실수 없이 마무리되는 듯했다.

한데 마지막에 약간 당황하고 말았다. “제가 지금 추리소설을 쓰고 있는데 어떻게 하면 잘 팔릴지 비결이 있을까요”라고 표씨가 물었을 때 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출판사를 창업하고 지난 20년 동안 이렇다 할 베스트셀러 한 번 만들어 본 적이 없는 나에게는 지구온난화 문제의 해법만큼이나 어려운 물음이었다. 물론 표씨도 딱히 의미를 두고 물어본 것 같진 않아서 적당히 얘기하고 말았다만.

그로부터 며칠 후 서점에 들렀다가 ‘밀리언의 법칙’을 집어든 이유는 새삼스레 나도 잘나가는 출판사의 비결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420만부라는 경이적인 판매고를 기록한 ‘뇌내 혁명’을 비롯해 편집자 전원이 20만부 이상의 베스트셀러를 만들어 낸 일본 선마크 출판사의 기획력과 마케팅 능력은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의 편집자들 사이에서도 화제가 된 바 있다. 이 책이 여타의 출판 관련 경제경영서와 다른 점은,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말이나 글로 표현하긴 좀 그런데’ 싶은 대목에서 스테레오타입한 서사를 늘어놓지 않고 솔직하게 기술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에키 노부타카 대표는 책을 기획하고 편집하고 출간하고 판매하는 모든 과정에서 ‘어떻게 하면 여성 독자들에게 지지를 받을 수 있을지’를 중요하게 여긴다고 한다. 이 대목이 특히 인상적이었는데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남성은 책을 읽고 나서 좋았다고 생각해도 ‘아, 좋았어’ 하고 끝나버리는 일이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성의 경우에는 좋았다면 ‘이 책, 좋았어’라며 타인에게 좋은 점을 전합니다. 남성과는 정보 제공력이 다른 것입니다. 남성의 몇 배나 되는 정보 제공력을 가진 독자는 귀중한 존재입니다.”

세상의 모든 여성과 남성을 딱 부러지게 구분해서 일도양단할 수는 없겠으나 대체로 어떤 사안을 바라보는 섬세함, 타인을 향한 배려, 정보에 대한 빠른 반응과 입소문을 내는 능력에 대해서라면 남성에 비해 여성이 높지 않은가. 나도 예전에는 이렇게 우에키 대표와 비슷한 생각을 하곤 했지만 최근 들어서는 살짝 바뀌었다. 남성에 비해 여성이 높은 게 아니라, 여성에 비해 남성이 월등하게 낮지 않은가 하고 말이다. 그게 아니라면 어떻게 “숏컷이니까 페미”라거나 “페미니즘이 저출산의 원인”이라는 멍청한 말을 버젓이 하며 거리를 활보할 수 있는지 설명할 도리가 없다.

심리학자 장프랑수아 마르미옹이 지적한 것처럼 멍청한 말은 거짓말과 다르다. 그들은 상대를 속이려는 게 아니라 그저 노상방뇨를 하듯 입에서 나오는 대로 떠들어댈 뿐이다. 진실에는 관심이 없으니까. 하지만 멍청한 말을 그냥 무시하거나 설득하기 위해 노력할수록, 멍청한 말을 하는 인간은 더욱 강하게 멍청한 말을 한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그는 이미 ‘나야말로 세상에 순응하지 않는 대단한 인간’이라고 착각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내 주위에는 왜 멍청이가 많을까’라는 책에 일말의 해법이 있다. “거짓말쟁이는 정체가 탄로 나면 비난받는데 멍청한 말을 하는 사람은 아무 일 없이 그냥 넘어간다. 그런 황당한 상황이 와서는 안 된다. 멍청함에 맞서려면 멍청함을 비난하고 멍청한 짓을 향해 멍청하다고 해야 한다.” 무엇보다 더 많은 남성들이 동료의 멍청한 말을 제지하는 목소리를 내야 한다.

김홍민 북스피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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