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오줌까지 신성시하는 인도인이 물소 앞에 드러내는 탐욕

김용현 2021. 8. 4.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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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잘리카투' 5일 개봉
영화 '잘리카투' 스틸 사진. 슈아픽처스 제공

‘소의 천국’ 인도에선 소의 오줌까지 축복으로 여길 정도로 소를 신성시한다. 인도의 국교인 힌두교가 소의 몸에 많은 신이 살고 있다는 교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물소라면 얘기가 다르다. 죽음의 신 ‘야마’가 타고 다니는 물소는 신성하다고 여기지 않는다. 인도인의 욕망은 식육이 허락된 이 물소 고기 앞에서 어둡게 드러난다.

5일 개봉하는 영화 ‘잘리카투’는 인도 남부의 한 산골 마을 푸줏간에서 풀려난 물소를 쫓는 마을 남자들의 이야기다. 이 영화는 ‘발리우드’의 유쾌함이 인도 영화의 전부가 아니라는 걸 여실히 보여준다. 부패와 탐욕으로 물들어 있는 남인도 지역 사회를 풍자한다.

물소 고기는 마을 사람들의 배를 채워주는 최고급 식재료이기 때문에 마을 사람 모두가 원하는 일종의 사치품이다. 고위 성직자들을 위한 뇌물로도, 결혼식 피로연의 최고급 요리로도, 신에게 바치는 재물로도, 구애를 위한 선물로도 쓰인다. 푸줏간 주인 바르키(쳄반 비노드 조제)은 심지어 이 지역 사회의 우두머리 노릇을 한다.

영화 '잘리카투' 스틸 사진. 슈아픽처스 제공

마을 사람들이 보여주는 물소에 대한 집착은 광기에 가깝다. 마을에 물소를 먹일 건초 더미가 불타는 사건이 발생하자 마을 사람들 모두가 힘을 합쳐 화재를 진압한다. 건초 더미가 줄어드는 건 곧 물소를 살찌울 먹이가 없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 화재 사건을 틈타 물소는 우리에서 도망쳐 나오고 마을은 아수라장이 된다. 그리고 물소가 우리에서 도망쳐 나온 틈을 타 원치 않는 결혼을 앞둔 마을 여성도 도망친다.

물소잡이는 곧 권력이다. 모든 마을 남자들과 그 옆 마을 남자까지 소를 잡아 명성을 얻고 싶어한다. 물소잡이에 눈이 벌게진 남성들은 축제라도 맞이한 양 들떠서 술을 퍼마시고 짐승 무리처럼 몰려다니며 소리를 질러댄다. 마을의 건축물들을 부수고 은행까지 쳐들어간 물소를 두고는 마을 사람들은 “빚을 탕감해주면 소를 잡아주겠다”고 외친다.

그 권력을 쟁취하고 싶어하는 안토니(안토니 바르게즈)와 쿠타찬(사부몬 압두시마드) 두 인물을 중심으로 서사가 흐른다. 푸줏간에서 일하는 안토니는 물소를 잡아 푸줏간 주인 바르키의 여동생이자 마을 남성들의 선망인 소피의 마음을 얻고 싶어한다. 물소 고기를 향한 욕망은 남자와 여자를 구분하지 않는다. 이를 강하게 거부하던 소피도 안토니가 물소를 잡을 거라고 하자 물소의 갈빗대를 가져오라며 태도를 바꾼다.

영화 '잘리카투' 스틸 사진. 슈아픽처스 제공

쿠타찬은 복수와 명예 회복을 위해 마을에 돌아온 총잡이다. 그는 푸줏간에서 일하던 소피의 전 애인이자 교회에서 백단향 나무를 훔쳤다는 안토니의 모함을 받고 마을에서 쫓겨난 전력이 있다.

죽음과 정의의 신 야마를 태운 듯 혼돈을 몰고 다니는 물소는 점점 희미해지고 그 자리를 대신하는 건 인간들의 탐욕과 무질서다. 점점 늘어나는 물소를 쫓는 군중들이 연출하는 신은 관객을 압도한다.

연출을 맡은 리조 조세 펠리세리 감독은 “이 영화에는 두 개의 캐릭터가 있다. 하나는 탈주한 짐승이고 다른 하나는 종국에 거대한 짐승이 돼 버리는 군중 그 자체다”라며 “영화는 그림 같은 마을 전경에서 편안하고 안정된 리듬으로 시작하지만, 곧 일련의 사건들이 터지면서 동적 에너지로 완충된 인간의 폭력성을 스크린에 풀어놓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잘리카투’는 이 세상이 돼서는 안 되는 모든 것이다. 외적으로는 풍자극이고 내적으로는 잔혹한 스릴러이며, 인간의 탈을 벗어 던지고 그 아래 숨어있는 짐승을 드러내는 인간들에 관한 이야기”라고 덧붙였다.

영화 '잘리카투' 포스터. 슈아픽처스 제공

영화 제목인 ‘잘리카투’는 운동장에 황소를 풀어놓고 수많은 장정이 맨손으로 달려들어 황소의 뿔과 등에 난 혹을 잡아 제압하는 인도에서 열리는 경기다. 타밀나두 주에서 해마다 1월 추수 감사 축제 ‘퐁갈’ 기간에 대규모로 열린다. 인도에선 동물 학대를 이유로 지난 2014년 대법원이 중단시켰지만 격렬한 시위 끝에 2017년에 다시 허용되기도 했다. 영화는 인도 남부 케랄라 출신인 펠리세리 감독이 원작인 S. 하리쉬의 단편 소설 ‘마오주의자’(Maoist)를 바탕으로 남인도 문화를 생생하게 살려냈다.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4일 오후 7시 기준 독립예술영화 사이에서 예매율 30.8%(2032명)로 1위를 달리고 있다. 2019년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됐으며 국내에서도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 영화의 창’ 섹션을 통해 먼저 선보였다. 지난해 아카데미 영화상 최우수 국제 장편 영화상 인도 출품작이기도 하다.

김용현 기자 fac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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