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우주보다 뇌가 더 넓다

이원하 시인

내가 우주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어진 건 페퍼톤스 이장원의 영향이 컸다. 그가 여행 중 길을 잃었을 때 동방박사처럼 별자리를 보고 방향을 찾아서 무사히 숙소로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들어서였다. 그는 팬들에게 우주 천재라고 불리며, 초등학생 때부터 고등학생 때까지 우주소년단으로 활동하며 천체 관측을 즐겼다고 한다. 나도 언젠가 길을 잃었을 때 이장원처럼 하늘만 보고 목적지에 가닿는다면 얼마나 시적일까 싶어서 우주에 관련된 잡지를 사 모으게 됐다. 그리고 문득 궁금해졌다. 무한의 공간인 우주와 사람의 뇌 중에서 무엇이 더 넓을까. 인간의 뇌 속 뉴런은 우주 대규모의 구조와 유사하기에 그 크기를 겨뤄볼 만했다.

올해 초까지 나는 머릿속에 한 사람밖에 담지 못했다. 사랑에 빠져서 머릿속에는 오직 한 사람뿐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밤에 잠들 때까지 그를 제외한 모든 건 내 머릿속에 침범할 수 없었다. 미련하게도 지독했던 그 사랑이 끝난 뒤에도 한동안 내 머릿속은 한 사람뿐이었다. 가득한 이 사랑을 어쩌지 못해 매일매일 슬퍼했다. 모든 걸 내려놓고 싶었다.

어떤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지만 예정된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헝가리 부다페스트로 떠났고, 떠남과 동시에 나의 뇌는 팽창됐다. 아무도 침범할 수 없었던 나의 머릿속에 서서히 다른 사람이 끼어들기 시작한 것이었다. 새롭게 나타난 그는 이사 첫날부터 나에게 친절했다. 이후 자꾸만 마주치게 되면서 호감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그를 떠올리면 다이어트를 위해 맛있는 음식을 참다가도 웃음이 나왔고, 집중해 운동하다가도 하늘을 올려다보는 순간이 많았다. 평생 내 머릿속에는 한 사람만 존재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나의 뇌는 계속 팽창되기에 잊어야만 하는 사람과 사랑해야 할 사람을 담기에 충분했다. 아마도 나의 뇌는 우주를 담고도 몇 평의 공간이 남을 것이다. 우주처럼 끊임없이 팽창하되, 우주보다 빠른 속도로 팽창하기 때문이다.

부다페스트(헝가리)=이원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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