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보다 중요한 게 관심·사랑.. '선한 사마리아인' 돼줄 것"

박지훈 2021. 8. 4.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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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알의 기적] 익산영생교회 박용호 목사가 만난 현지네 가족
박용호(오른쪽에서 세 번째) 익산영생교회 목사가 지난달 26일 전북 익산 현지네 집을 찾아 아이들에게 성경에 나오는 요셉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익산=강민석 선임기자


“예쁜 방에서 살아보고 싶어요. TV에 나오는 근사한 집을 볼 때마다 너무 부러웠거든요. 제 방이 생긴다면 핑크색으로 꾸밀 거예요.”

현지(가명·10)는 가장 갖고 싶은 게 무엇인지 묻자 이렇게 답하면서 열없는 미소를 지었다. 위, 아래로 각각 두 살 터울의 언니, 남동생이 있는 현지는 그룹 방탄소년단 멤버 뷔를 좋아하고, 별것 아닌 이야기에도 웃음을 터뜨리는 평범한 열 살 소녀였다.

하지만 지난달 26일 찾아간 현지의 집은 또래 친구들의 그것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남루하고 누추했다. 현지가 무슨 이유에서 “예쁜 방에서 살아보고 싶다”고 말한 건지 짐작할 수 있었다. 마당엔 잡초가 무성했고 곳곳에 쓰레기가 나뒹굴고 있었다. 현지 아버지의 문패는 현관의 더러운 신발들 사이에 처박혀 있었다. 집 안으로 들어서자 ‘상황’은 더 심각했다. 누렇게 변색된 벽지, 엉망진창으로 망가진 가구들, 곳곳에 쌓인 먼지, 걸레처럼 보이는 수건, 퀴퀴한 냄새…. 도대체 현지네 가족에겐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떠나버린 엄마, 남겨진 아이들

현지의 집은 인가를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전북 익산의 한 농촌 마을에 위치해 있었다. 부모님은 보이지 않았고, 할머니(79)만이 거실에 앉아 취재진을 맞았다. 할머니를 통해 현지네 가족이 걸어온 신산했던 삶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간추리자면 이런 내용이었다.

현지네 부모님이 백년가약을 맺은 건 13년 전이었다. 현지의 아빠는 한국인이고 엄마는 필리핀인이었는데,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부모님은 자주 싸웠다. 엄마는 집을 나가버릴 때가 많았다. 돈도 함부로 썼다. 결국 6년 전쯤 현지네 아빠와 엄마는 법적으로 갈라섰다. 문제는 엄마가 빚을 약 1억원이나 남겨놓고 가족을 떠나버렸다는 것. 아빠는 막노동으로 생활비를 댔다. 할머니도 농사일을 해서 번 돈을 가계에 보탰다.

그러나 이 정도 수입으로는 빚을 갚기가 힘들었다. 삼 남매를 건사하기도 쉽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할머니가 아프기 시작하면서 가족의 삶은 더 힘들어졌다.

할머니는 4~5년 전쯤 심각한 허리 통증을 느꼈다. 일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돼버렸다. 할머니는 “허리뼈가 틀어지고 목 디스크까지 심해져서 대문까지 걸어 나가는 것도 힘들다. 몇 년 전 시술을 받았지만 나아진 게 거의 없다”고 하소연했다.

할머니가 도움이 시급하다고 요청한 부분은 주거 환경과 관련된 부분이었다. 50년 전에 지어진 집은 너무 낡아서 취재진이 보기에도 수리가 필요한 데가 수두룩했다. 할머니는 “50년 동안 도배는 두세 번 정도만 한 것 같다”고 했다.

열악한 주거 환경이나 경제적인 어려움 외에도 가족을 힘들게 하는 것은 한두 개가 아니었다. 삼 남매의 막내인 현수(가명·8)만 하더라도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증세가 심각했다. 현수는 시종일관 동문서답을 했고 가끔 흥분하는 모습을 보였다.

절망의 터널을 걸어오면서도 할머니가 하루하루를 버틸 수 있었던 건 신앙의 힘 덕분이었다. 할머니는 집 인근에 있는 한 교회에 출석하고 있는데, 직분은 권사였다. 할머니는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고, 하나님을 아버지로 영접하지 못했다면 손주들 기르는 일이 더 힘들었을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개인적으로 힘든 건 아픈 허리 때문에 새벽기도를 하러 교회에 갈 수 없다는 거예요. 제가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는 항상 같은 내용입니다. 아이들이 건강하고 바르게 클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거죠. 손주들이 누군가한테 끌려다니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들을 이끌어가는 인물이 됐으면 하는 게 제 소원이에요.”

“현지네 가족에게 축복을”

현지네 가족 방문은 국민일보와 월드비전이 함께하는 ‘밀알의 기적’ 캠페인의 일환이었다. 현장에는 기독교대한감리회(기감) 호남특별연회 감독이자 익산영생교회 담임목사인 박용호(67) 목사와 이 교회 조병진(65) 장로가 동행했다. 두 사람은 아이들에게 이불과 학용품이 담긴 선물을 전달했는데, 할머니는 “선물도 좋지만 손주들을 위해 목사님이 기도 좀 많이 해 달라”고 간청했다.

박 목사는 아이들 손을 잡고 “우리가 서로 알게 된 것이 너희들에게 새로운 하늘이 열리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한 뒤 기도를 시작했다. “하나님, 이런 만남의 자리를 마련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아이들에게 축복의 문을 열어주시옵소서….”

현지네 집을 방문한 뒤 익산영생교회에서 박 목사를 다시 만났다. 그는 “밀알의 기적 캠페인을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직접 참여하니 생각보다 더 큰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물질보다 더 중요한 게 관심과 사랑입니다. 국민일보와 월드비전, 익산영생교회와 기감 호남특별연회 같은 조직이 함께 어려운 이웃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 캠페인 이름처럼 기적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겁니다. 교회 성도들과 나눔을 실천하는 ‘선한 사마리아인 운동’을 하고 있는데 현지네 가족을 돕는 일이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익산=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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