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현장에 묻다] 경단녀 1년 만에 아이들로부터 영감 얻어 창업 성공

김동호 2021. 8. 4. 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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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돌보다 돌봄매칭 플랫폼 개발
추천 알고리즘으로 최적 교사 지원
방치되기 쉬운 4~13세 1대1 교육
코로나 겪으며 오히려 이용자 늘어


9만명에게 일하는 기회 제공하는 ‘자란다’ 장서정 대표

김동호 논설위원

아이를 키우려면 한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은 영원한 진리다. 한 아이가 크려면 가족은 물론이고 마을의 어르신과 형·누나·오빠·언니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도시 생활은 이웃도 모른 채 지내는 게 현실이다. 동네 형과 언니로부터 삶의 지혜를 배울 기회가 있을 리 없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상황은 더 어려워진다. 특히 워킹맘에겐 시련의 계절이다. 출산 전후를 어렵게 넘겨도 보육에서 교육으로 넘어가는 초등학교 저학년 때가 되면 아예 돌봄 공백이 발생한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과 달리 초등학생 저학년은 하교 시간이 빠르다. 워킹맘은 정오쯤 귀가하는 아이를 누구에게 맡겨야 할지, 하루에도 수십번 퇴사를 떠올린다. 워킹맘의 경력 단절로 연결된다.

이런 점에서 자란다 장서정(43) 대표의 발상은 혁명적이다. 우리 이웃에서 만날 수 있는 형과 언니를 가정교사로 연결해주는 아이디어 사업화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아이 둘을 키우면서도 창업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남성 중심의 전통 산업에서 인터넷 기반의 지식집약 산업으로 대전환하면서 나타난 변화다. 홍익대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장 대표는 모토로라와 제일기획에서 14년간 모바일 디바이스의 이용자 화면을 디자인하는 UX 디자이너로 일했다. 이 기술은 자란다의 운영기술 구축에도 도움이 됐다. 사장될 뻔한 여성 인재의 지식과 전문성이 창업으로 반짝이게 된 셈이다.

방문 학습의 특성 때문에 코로나 피해가 있었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자란다는 쑥쑥 자라고 있었다. 1년여 전 코로나가 처음 엄습했을 때는 4만 명이던 자란다 방문교사가 지금은 9만 명으로 늘어났다. 등록된 이용자는 10만 명을 돌파했다. 자녀 기준으로는 13만~14만 명에 달한다.

20~30대 젊은층을 통해 주로 초등학교 저학년에게 돌봄과 교육을 제공하는 ‘자란다’ 장서정 대표. 그는 “코로나19는 오히려 자란다에 기회를 가져왔다”고 말했다. 우상조 기자

장 대표를 보면서 또 하나 놀란 것은 한국이 이제는 아이디어만 있으면 여성이든, 청년이든, 누구든 얼마든지 사업을 시작하고 투자 자금을 유치할 수 있는 창업 인프라를 갖추었다는 사실이다. 장 대표 역시 구글 서울 캠퍼스를 거쳐 지금은 은행이 후원하는 마포 디캠프에 둥지를 틀고 있다. ‘자란다’라는 브랜드는 장 대표가 자녀들과 대화 중 영감을 얻어 작명했다고 한다.

Q : 어떻게 사업을 시작하게 됐나.
A : “첫째의 초등학교 입학과 함께 10년 넘게 다니던 회사를 그만뒀다. 아이들 돌봄 때문에 결국 직장을 그만뒀는데 내 일을 하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뚜렷해졌다. 그러다 떠올린 게 대학생이 돌봄과 교육을 해주는 서비스다. 자신이 엄마라서 이런 사업을 떠올릴 수 있었다. 누구나 떠올릴 만한 아이디어였지만 실천은 어려웠다. 사람을 찾고 고용하고 관리하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Q : 첫 아이디어를 어떻게 떠올렸나.
A : “직장을 그만두기 전 1년간 맘 카페에 들어가 아이 돌봐줄 사람을 구했다. 운 좋게도 좋은 대학생을 만나 큰 도움을 받았다. 그때 이런 네트워크 연결 서비스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게시판에서 사람을 연결해주는 정도였다. 이런 수요는 분명히 많을 것이라고 봤다. 그래서 사업을 결심하고 나서 주변 엄마들과 지인들에게 피드백을 받으며 사업으로 연결지었다.”

Q : 기존 학습지 교육과는 다른가.
A : “기존 학습지는 공급자 중심이다. 일방적 목표를 제시하고 수준에 미달하면 학습이 부진하다는 낙인이 찍힌다. 자란다는 공부뿐만 아니라 놀이, 신체활동, 영어회화 등 아이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경험할 수 있다. 아이들 특성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시작한다. 개인적으로도 아들 둘의 성격과 기질이 다르다는 걸 알게 됐다. 자녀 기질에 맞는 맞춤형 교육을 하고 있다.”

Q : 맞춤형 교육이 어떻게 가능한가.
A : “방문교사가 아이들 특성과 관심을 조사해 오면 아이에게 가장 적합한 프로그램을 매칭해준다. 10만 명 이상의 빅데이터가 축적돼 있기 때문에 적중률이 높다. 주로 4세부터 13세를 대상으로 하는데 5~10세 어린이가 가장 많다. 방문교사는 대학생을 비롯해 20~30대가 대부분이다. 한번 방문에 2시간가량 아이와 시간을 보낸다. 공부를 통해 학습능력을 키워주기도 하지만, 책을 읽어주고 그림도 그리고 보드게임도 함께 한다. 영어 학습도 인기가 많다. 획일적으로 공부하지 않고 아이가 동물을 좋아하면 동물에 관한 영어를 해준다. 아이가 거부감을 갖지 않고 자연스럽게 영어에 익숙해진다.”

자란다 앱을 통해 돌봄 교사를 신청할 수 있다. [사진 자란다]

Q : 돌봄과 배움이 동시에 이뤄지는 건가.
A : “두 발 자전거를 처음 타는 아이를 잡아주는 것처럼 자란다 방문교사는 아이가 혼자 하기 어려운 활동을 함께 한다. 교육학 이론에 나오는 스캐폴딩(scaffolding) 교육 방식이다. 도움닫기라는 뜻이다. 그러다 보니까 돌봄과 배움이 동시에 가능해졌다. 이런 효과가 알려지면서 지금은 워킹맘이 아닌 엄마의 이용도 많이 늘어나고 있다. 사회적 학습은 부모보다는 큰 형, 큰 언니 같은 대학생들이 더 잘해주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일방적으로 공부를 가르치는 게 아니라 공부를 즐기게 만들어준다.”

Q : 어떻게 하면 공부가 즐거운가.
A : “숫자를 가르칠 때는 보드게임을 이용한다. 놀면서 숫자를 배우게 된다. 아이들은 히어로(영웅) 놀이를 좋아한다. 구해주는 놀이, 모험 놀이, 해적 놀이 다 같은 말이다. 이런 놀이를 통해 친구끼리 왜 양보해야 하는지 이해하고 배우게 된다. 책 읽기를 통해서 자리에 앉아 있는 습관을 만들고, 영어 놀이를 통해 다른 세계와 다른 언어가 있다는 현실을 인식하게 해준다. 구연동화, 과학실험처럼 다양한 형태로 공부를 놀이로 접근하니까 재미있게 된다.”

Q : 어린이와 방문교사 매칭은 어떻게 하나.
A : “방문교사는 소속과 인적사항부터 성범죄 경력조회 등 8단계 검증과정을 거쳐 선발된다. 방문교사의 성향·특기·경험을 포함해 40여 개 데이터를 활용해 아이들과 짝을 맺어준다. 아이 연령부터 거주지역과 관심사, 활동 내용에 따라 가장 적합한 선생님이 방문하게 된다. 기본적으로 아이들을 좋아해야 할 수 있는 일이다. 수업이 끝나면 방문일지가 학부모에게 제공된다. 부모는 아이가 어떤 발달 단계를 지나고 있는지 성장 과정을 생생하게 지켜볼 수 있다.”

Q : 일자리를 많이 만든 게 대단하다.
A : “의외로 전업하는 사람이 많다. 시간당 교육 비용은 돌봄 1만3000원이고, 배움은 1만9000원부터 시작한다. 선생님 역량에 따라 비용이 올라간다. 어디까지나 자란다는 플랫폼 역할에 충실하면서 수수료율은 15~20%에서 책정하고 있다. 수업료의 상당 부분이 방문교사에게 돌아가는 구조다. 방문교사의 평균 수입은 40만원 수준인데, 이용자가 많은 방문교사 중에는 월수입 400만원 이상도 많다. 이들은 자란다에서도 지원을 강화해 적극적으로 활동하게 돕고 있다. 다양한 것을 가르치다 보니까 의외의 재능을 발견해 전문성을 살리고 실력을 발휘하는 선생님도 많다.”

Q : 코로나 피해는 없었나.
A : “학교에 못 가게 되자 지난해 3월부터 오히려 이용자 등록이 수직 상승했다. 코로나 와중에도 누군가 숙제를 돌봐주고, 함께 경험을 공유할 선생님이 필요해서 그렇게 된 것으로 보인다. 직원이 60여 명으로 늘어나고 사업이 커지면서 다음 달에는 선릉으로 사무실을 확장해서 옮긴다.”

Q : 시장 규모는 충분한가.
A : “4~13세 인구는 450만 명이다. 이 아이들의 일과시간 중 3분의 1을 책임지는 교육, 돌봄 매칭 플랫폼이 되면서 성장 가능성이 있다. 매칭 후 재구매율 80%, 만족도 97%에 달한다. 정성적 지표인 아이 정보와 선생님 정보를 기반으로 추천알고리즘에 의해 매칭을 진행하기 때문에 교육과 돌봄의 만족도가 높게 나타난다. 그만큼 사업의 확장성이 커지면서, 현재는 교사매칭뿐 아니라 교육프로그램, 교구재 매칭까지 사업을 확장하는 단계에 있다. 앞으로는 부모님들이 아이의 교육뿐 아니라, 4~13세 생애주기에 걸쳐 가장 먼저 찾는 서비스가 되려고 한다.”

Q : 투자도 받아야 사업을 키울 수 있을 텐데.
A : “지금까지 모두 138억원을 투자받았다. 2017년 3월 투자 액셀러레이터 소풍(Sopoong)의 투자를 시작으로 카카오벤처스로부터 스타트업 투자를 유치했다. 올해 한국투자파트너스, KDB산업은행, 대교 등에서 97억원의 투자를 받았다. 대한민국 모바일 대상을 받고 아동의 기질과 관심사 데이터 기반의 매칭 알고리즘과 맞춤형 상품추천 방법에서 특허를 출원했다.”

김동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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