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도 눈독 들인다는 MRO..캐시카우지만 中企 "밥그릇 뺏는다"

김경민 2021. 8. 3.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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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이 MRO(소모성 자재 구매 대행) 시장 진출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유통 업계가 술렁인다. 본업인 이커머스에서 대규모 적자를 내는 가운데MRO 사업이 쿠팡의 새로운 캐시카우로 떠오를지 재계 관심이 뜨겁다.

쿠팡이 기업 간 거래(B2B) 전용 브랜드 ‘쿠팡비즈’를 선보이면서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오른쪽 위는 김범석 쿠팡 창업자. <매경DB>
▶쿠팡 MRO 사업 진출 검토 왜

▷적자 탈피 위한 캐시카우 기대

유통 업계에 따르면 쿠팡은 최근 MRO 사업에 뛰어들기 위한 준비 작업에 속도를 내는 중이다. 지난 7월 초 기업 간 거래(B2B) 전용 브랜드 ‘쿠팡비즈’를 특허청에 출원 신청하면서 상표명 정보란에 가격비교 서비스업, 가위 소매업, 가구 소매업 등 MRO 관련 상품군을 넣는 등 사업 영역을 구체화하는 분위기다.

쿠팡이 MRO 사업 검토에 나선 배경은 뭘까. MRO 사업 개념부터 살펴보자. MRO는 소모성 자재 구매 대행 사업으로 Maintenance(유지), Repair(보수), Operation(운영)의 머리글자에서 따온 용어다. 구체적인 사업 방식은 이렇다. A기업은 그동안 볼펜이 필요하면 B볼펜 회사에 한 자루에 300원씩 주고 직접 구매해왔다. 하지만 구매 인력, 비용을 줄이면서 더 저렴하고 간편하게 볼펜을 사기 위해 구매를 아웃소싱하는 방안을 고민하게 됐다. MRO 전문 업체를 활용해 볼펜을 비롯해 사인펜, 잉크, 복사 용지 등 소모성 자재를 일괄 구매하는 대신 볼펜 한 자루를 보다 저렴한 250원에 납품받는 식이다. MRO 업체 입장에서는 단숨에 매출을 올릴 수 있고 A기업도 저렴하게 소모성 자재를 구입할 수 있어 ‘윈윈’이었다.

▶대기업 너도나도 진출했지만

▷동반 성장 논란에 뒤늦게 철수

이를 눈여겨본 삼성, LG 등 국내 대기업들은 2000년대부터 MRO 사업에 직접 뛰어들었다. 제조업처럼 공장 설립 등 대규모 투자 없이도 구매 시스템만 잘 갖춰놓으면 넉넉한 이윤을 낼 수 있는 덕분이다.

LG그룹은 1990년대 말 일찌감치 MRO 시장에 진출해 MRO 업체 서브원을 국내 1위 MRO 업체로 키워냈다. 2010년 기준 서브원 매출 3조8500억원 중 순수 MRO 사업 매출은 2조2000억원에 달할 정도였다. 삼성그룹도 아이마켓코리아를 통해 2010년 1조5500억원 매출을 올렸다. 포스코의 엔투비, 코오롱의 코리아이플랫폼 역시 MRO 사업을 꾸준히 해왔다.

하지만 잘나가던 대기업 MRO 사업은 벽에 부딪혔다. 앞서 살펴본 대로 MRO 전문 업체를 활용하면 A기업과 MRO 업체 모두 윈윈이었지만 문제는 기존에 소모성 자재를 납품해온 B업체였다. 이 업체 입장에서는 대기업 계열 MRO 업체에 일감을 뺏기면서 경영난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았다. 이 때문에 대기업 MRO 사업이 중소기업 경영을 어렵게 만든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중소기업들은 “대기업 MRO 계열사들이 공공, 일반 시장까지 잠식해 중소 공구, 문구 유통 도매상들이 시장을 빼앗겼다”고 주장했다. 이에 정부도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동반 성장을 요구하고 나섰다.

논란이 커지자 삼성, LG 등 대기업들은 곧장 결단을 내렸다. 삼성은 2011년 그룹 내 MRO 사업을 맡아온 아이마켓코리아를 국내 1세대 e커머스 플랫폼 인터파크에 매각해 MRO 사업에서 전격 철수했다. 뒤이어 SK, 한화그룹 등도 MRO 사업에서 손을 뗐다. LG그룹은 2019년 서브원의 MRO 사업 부문을 글로벌 사모펀드(PEF) 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에 매각했다.

인터파크 계열사인 아이마켓코리아는 지난해 매출 2조800억원, 영업이익 405억원을 기록했다. 인터파크는 최근 M&A(인수합병) 시장 매물로 나왔지만 알짜 자회사 아이마켓코리아는 제외될 정도로 인터파크의 핵심 캐시카우로 손꼽힌다.

한동안 대기업 MRO 사업 논란이 잠잠했지만 쿠팡이 MRO 사업 진출을 저울질하면서 다시 논란이 커지는 모양새다. 쿠팡은 MRO 사업을 통해 신규 매출을 창출하고 이익까지 올려 캐시카우 역할을 하길 기대하는 속내다.

쿠팡은 지난 3월 미국 뉴욕 증시 상장 후 단숨에 100조원 기업가치를 인정받았지만 여전히 대규모 적자에 시달리는 중이다. 올 1분기 영업손실은 전년 동기 대비 180% 증가한 2억9503만달러(약 3300억원)에 달했다. 같은 기간 매출이 74% 증가한 42억686만달러(약 4조7200억원)를 기록했지만 적자를 피하지는 못했다. 쿠팡은 앞서 지난해에도 5842억원 영업손실을 기록하는 등 수년째 적자를 이어가는 중이다.

쿠팡 실적이 부진하자 주가도 지지부진한 모습이다. 1분기 실적 발표 다음 날인 5월 13일 주가가 10%가량 급락한 32달러에 그쳤다. 고점(69달러) 대비 반 토막 난 데다 공모가(35달러)에도 못 미쳤다. 이후에도 30달러대에서 횡보하는 모습이다. 쿠팡은 ‘계획된 적자’ 전략이라는 점을 강조하지만 여전히 시장 불안은 크다.

급기야 쿠팡은 지난 7월 중순 2287억4000만원 규모 유상증자를 단행했다. 이번 유상증자는 쿠팡이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한 후 처음 이뤄지는 조치다. 미국 증시 상장으로 마련한 자금을 국내 신사업에 투자하기 위한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김범석 쿠팡 창업자는 1분기 콘퍼런스콜에서 “미국 증시 상장을 통해 조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약 5조원을 투자에 쓰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창영 유안타증권 애널리스트는 “신세계가 이베이코리아를 인수하는 등 국내 이커머스 시장 경쟁이 갈수록 격화되는 상황에서 쿠팡은 상장을 통해 조달한 자금으로 공격 경영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국내 이커머스 대표 주자로 성장한 쿠팡이 뉴욕 증시 상장까지 성공했지만 여전히 대규모 적자에 시달리는 중이다. MRO 사업을 통해 넉넉한 이익을 올려 수익구조 개선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는 유통 업계 관계자 의견도 눈길을 끈다.

다만 업계에서는 쿠팡의 MRO 사업이 기존 MRO와 다른 방식으로 추진될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는다. 기존 MRO 업체는 주로 대기업과 직접 계약을 통해 안정적인 매출을 올려왔지만 쿠팡은 여론을 의식해 중소기업, 소상공인 대상의 MRO 사업을 진행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상표권을 출원한 ‘쿠팡비즈’ 브랜드로 개인사업자나 중소법인사업자 회원 전용 몰을 만들어 복사지, 잉크, 컴퓨터 소모품 등 사무용품과 간식류를 판매하는 식이다. 쿠팡의 장점인 로켓배송 시스템을 활용해 배송 경쟁력을 높이면서 다른 MRO 업체와 차별화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에 대해 쿠팡 측은 아직까지 정해진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쿠팡 관계자는 “다양한 신사업 아이디어에 대한 상표권 확보 차원에서 상표권을 출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재계 안팎에서는 쿠팡이 쿠팡플레이, 쿠팡이츠 등 다양한 신사업으로 해당 분야 점유율을 늘려온 만큼 ‘쿠팡비즈’ 브랜드의 MRO도 얼마든지 핵심 신사업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고 내다본다.

“ ‘아마존 키즈’로 불리는 쿠팡은 다른 기업과는 투자 방식이 다르다. 기존 사업자들은 번 돈의 일부만 투자하고 남은 돈은 혹시 모를 미래를 위해 유보하지만 쿠팡은 순이익 일부가 아니라 적자를 내면서까지 대규모 투자를 단행한다. 쿠팡은 새로 조달한 5조원을 각종 신사업에 과감히 투자해 ‘파괴적 혁신 기업’ 도약에 나설 것이다.”

이효석 SK증권 애널리스트의 장밋빛 전망이다.

김경민 기자 kmkim@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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