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원에 왜 한약과 침이 없어? 저흰 다른 걸 합니다

김병선 2021. 8. 3.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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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배다리 헌책방거리에 모인 한 지붕 네 가게, 문화상점_동성한의원

[글·사진 김병선]

 새로운 문화를 전파하는 문화상점 주인들. 왼쪽부터 장미영, 청산별곡, 송지유, 이은빈씨
ⓒ 김병선
인천 배다리에 새로운 움직임이 일고 있다. 헌책방 거리의 낡은 2층 건물에 '문화상점_동성한의원'이라는 새로운 간판이 내걸렸다. 이곳이 진원지다. 그런데 간판 이름이 어렵다. '한의원에서 문화를 판다고?' 외지 사람으로서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단어들의 조합이다. 도대체 이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생활문화공간 달이네'의 새로운 탄생 

건물의 머릿돌에 1973년 10월이라는 숫자가 보인다. 동성한의원은 이때부터 40년 넘게 지역민을 치료해 주었던 명성 높은 한방병원이었다. 몇 해 전, 원장의 병환으로 병원이 문을 닫으면서 건물주가 바뀌었다. 새 주인은 건물 전체를 자신이 사용할 계획이었던 터라 세를 놓지 않았다. 건물은 한동안 비어 있었다.

한편, '생활문화공간 달이네(대표 청산별곡)'가 2009년에 '나비날다 책쉼터'라는 이름으로 배다리에 처음 문을 열었다. 23㎡ 크기의 작은 공간에서 시작해 '나비날다 책방', '배다리 안내소', '공유공간_요일가게 다 괜찮아', '창작실험실_수봉정류장' 등 다양한 공간 실험과 문화기획으로 지역의 문화 예술 발전에 기여해 왔다.

달이네의 근거지는 조흥상회 건물(1940년대 축조)이었다. 이곳에 '나비날다책방'과 '공유공간_요일가게 다 괜찮아'뿐만 아니라 생활사전시관도 마련해 조흥상회의 역사적 가치를 보전하고 있었다. 그런데 문화재청이 조흥상회를 건축자산으로 긴급 매입했고, 달이네는 새로이 갈 곳을 찾지 못했다.

달이네가 이전할 공간을 찾지 못하고 있자 이웃들이 나섰다. 청산별곡은 여러 이웃들에게 감사를 전한다.

"'카페 멀씨'와 '책방 모갈1호'에서는 2층 공간을 내주겠다 하고, '아벨서점'에서는 골목 안 공간을 쓰라 하고, 오붓주택의 안병진씨는 지하공간을 쓰라고 마음을 내주었습니다. 박의상실 박태순 선생과 언덕 위 하유자 선생은 동네 빈 가게 주인에게 세를 놓도록 설득도 해주었습니다."

이외에도 많은 이웃이 자기 일처럼 힘을 모아주었다. 이 과정에서 동성한의원 건물주가 애초의 계획을 접고 건물 1층 전체를 달이네에게 임대하기로 마음을 바꾸면서 달이네의 새 둥지가 마련됐다. 면적은 188.5㎡였다. 청산별곡은 그동안 쌓아온 공간 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공간을 기획했다. 이전과는 달리 자생력을 갖춘 상점 형태로 공간을 공유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여기에 뜻을 같이한 네 명의 대표가 모였다. '나비날다 책방'의 청산별곡을 비롯해 '실꽃'의 장미영(56), '슬로슬로'의 이은빈(24), '지유오븐'의 송지유(46)씨였다. 그리고 2021년 7월 25일 마침내, 네 개의 가게 이름과 '문화상점_동성한의원' 간판을 내걸며 새로운 공간의 문을 활짝 열었다.

한지붕 아래 모여 공간 공유
 
 문화상점-동성한의원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마주하는 곳은 '나비날다 책방'이다. 반달이(고양이)가 지키는 나비날다 책방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친근한 동네 서재이자 무인 책방 그대로다. 누구든지 자신의 책을 들고 슬리퍼를 신고 와서 읽어도 되고 서가에 꽂혀 있는 새 책을 사서 읽어도 된다.
ⓒ 김병선
 
 나비날다 책방 주인이자 '문화상점_동성한의원'을 기획한 청산별곡
ⓒ 김병선
새 간판과 함께 옛 '동성한의원'의 대리석 간판도 그대로 남겨두었다. "건물이 가지고 있는 고유성과 동성한의원의 역사성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청산별곡은 말한다. 초록색 문을 열고 들어서면 바깥과는 전혀 다른 공간이 펼쳐진다.

과거 여러 방으로 구분되어 있던 벽면을 모두 허물고 확 트인 하나의 공간으로 바꾸었다. 천장에는 허문 벽들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남은 세월의 흔적이 멋스러운 인테리어가 되고 있다. 이 하나의 공간에서 네 명의 상점 주인이 서로 다른 사업을 운영한다.

가장 먼저 마주하는 곳은 '나비날다 책방'이다. 반달이(고양이)가 지키는 '나비날다 책방'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친근한 동네 서재이자 무인 책방 그대로다. 누구든지 자신의 책을 들고 슬리퍼를 신고 와서 읽어도 되고 서가에 꽂혀 있는 새 책을 사서 읽어도 된다.

"나비날다 책방이 책을 통한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활용되는 공간이길 바랍니다. 나눔과 비움이 함께 공존하는 가치를 가지고 '문화상점_동성한의원'에 따뜻한 사람들이 깃드는 매개 역할을 하고자 합니다. 많은 분과 함께 지속 가능한 삶의 방식을 고민하고 싶습니다."

청산별곡의 말이다.
 
 책방 바로 옆에는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 숍인 '슬로슬로'가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재활용 제품에서부터 천연수세미와 밀랍 초, 나무 칫솔, 코르크 마개를 이용한 소품까지 아기자기하고 활용성인 높은 친환경 제품들이 가득하다.
ⓒ 김병선
 
 슬로슬로 주인이며, 열정적인 환경운동 실천가인 이은빈씨
ⓒ 김병선
책방 바로 옆에는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 숍인 '슬로슬로'가 자리하고 있다. 이은빈 씨는 열정적인 환경 실천가다. 여러 네트워크를 활용해 일상생활에서 쓰레기를 줄이는 친환경 제품을 판매한다. '슬로슬로'에는 플라스틱과 일회용품을 줄이는 대안, 재활용 제품에서부터 천연수세미와 밀랍 초, 나무 칫솔, 코르크 마개를 이용한 소품까지 아기자기하고 활용성인 높은 친환경 제품들이 가득하다. 제품도 제품이지만 이은빈씨는 더 많은 사람과 환경 캠페인을 전개하려 한다.
"친환경 제품을 권장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재미있고 유쾌하게 환경 문제를 고민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지속 가능한 방향이라 생각합니다. '문화상점_동성한의원'을 자원순환 캠페인의 거점으로 삼아 '제로 웨이스트' 운동을 실천하고 지원하려고 합니다."
 
 문화상점- 동성한의원 안쪽 공간에는 손뜨개 소품 가게인 '실꽃'이 있다. ‘실로 뜬 꽃’과 누구나 편하게 쉬어갈 수 있는 '쉴 곳'이라는 중의가 담긴 이름이다. 이곳에서는 방석, 가방, 물병집, 휴대폰 주머니, 인형 옷 등의 뜨개질 작품과 빈티지 소품을 살 수 있다.? 다양한 손뜨개질 제품들. 이 중에는 장미양 씨의 스승이자 친정어머니가 뜬 제품이 인기가 좋다.
ⓒ 김병선
 
 고등학교 때 외투를 직접 떠서 입고 다녔던 실꽃 주인 장미영씨
ⓒ 김병선
 
안쪽 공간에는 손뜨개 소품 가게인 '실꽃'이 있다. '실로 뜬 꽃'과 누구나 편하게 쉬어갈 수 있는 '쉴 곳'이라는 중의가 담긴 이름이다. 이곳에서는 방석, 가방, 물병집, 휴대폰 주머니, 인형 옷 등의 뜨개질 작품과 빈티지 소품을 살 수 있다.

가게주인인 장미영씨는 일곱 살 때 이미 필통과 도장집을 뜰 정도로 뜨개질에 천부적 재능을 가진 명인이다. 뜨개질 자격증뿐만 아니라 독특한 창작 도안으로 손뜨개 대회에서 수상했다.

가을부터 뜨개질 수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여럿이 모일 수 없기 때문에 1대 1수업으로 방향을 정했다. 그런데, 수업 공간으로 활용할 작업실 벽면에는 흔히 보아오던 극세사 수세미가 잔뜩 걸려 있다. 제품인가 싶었는데 아니었다.

"극세사 수세미가 환경에 좋지 않기 때문에 저는 수세미를 떠도 면이나 마(麻)실을 사용합니다. 극세사 수세미는 어머니가 주신 거라 버리지는 못하고 어찌할까 고민하다가 타일 벽면에 걸어두었더니 나름대로 괜찮더라고요."
 
 문화상점- 동성한의원에 입주해 있는 '자유오븐'은 베이킹에 관심은 있는데 시작을 못 하는 사람들이 편하게 와서 배울 수 있는 공간이다. 지유오븐에서 수업용으로 구운 에그 타르트. 한입 베어 물면 향기로운 버터 향과 촉촉하고 부드러운 달걀의 풍미가 입안 가득 퍼진다.
ⓒ 김병선
 
 맛은 물론 더 건강한 빵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지유오븐의 송지유씨
ⓒ 김병선
 
송지유씨의 '지유오븐'은 원데이 클래스를 운영하는 빵 굽는 가게다. 온·오프라인에서 홈베이킹 레슨을 진행하는데, 빵을 진열해 놓고 판매하지는 않는다. 제빵기능사인 송지유씨는 수년 전부터 유튜브에 홈베이킹 '지유 팩토리'를 운영하며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처음엔 취미로 시작했다가 아예 오랜 직장생활을 접고 제빵 전문가의 길로 들어섰다.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레시피를 공유하고 공부하며 새로운 빵을 만드는 매력에 흠뻑 빠진 것이다.

지유오븐의 빵에는 특별함이 있다. 지유오븐의 모토는 '건강한 빵'이다. 자녀와 가족, 이웃이 먹을 빵이기 때문에 유기농 재료와 친환경 방식으로 건강한 빵을 만든다.

"주변에 보면 빵은 좋아하지만, 글루텐 성분을 소화 시키지 못하는 분들이 있어요. 그래서 밀가루가 아니라 쌀가루를 이용한 제품을 만든다든지, 이스트를 사용하지 않고 천연발효종을 이용해서 빵을 만듭니다. 물론 시간은 오래 걸리지만, 거기에 건강한 삶이 있습니다."

순화구조가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곳
 
 동성한의원은 배다리에서 40년 넘게 지역민을 치료해 주었던 명성 높은 한방병원이었다. 몇 해 전, 원장의 병환으로 병원이 문을 닫으면서 건물주가 바뀌었다. 한동안 비워있던 이곳에 최근 '문화상점_동성한의원'이라는 낯선 간판이 달렸다.
ⓒ 김병선
'문화상점_동성한의원'의 가게주인들은 사업 분야가 전혀 다르지만 하나의 고리로 연결돼 있다. 가게주인들은 순환 자원을 모으는 데 열성적이다. 또한 서로 머리를 맞대고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비건 빵의 가능성에 대해 고민하고, 재활용 실로 뜨개질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더 많은 이웃이 참여하는 환경 캠페인을 기획하고 있으며, 책을 통해 환경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고 문화 예술 활동과 환경을 접목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러한 고민은 '문화상점_동성한의원' 밖으로 나와 배다리 마을 전체로 확대되고 있다. 벌써 여러 카페가 동참하고 있다. 청산별곡은 이렇게 말한다.

"문화상점_동성한의원에서는 커피를 판매하지 않습니다. 배다리에는 이미 아홉 곳의 카페가 있습니다. 이들 카페와 일회용 컵, 플라스틱 사용을 자제하는 캠페인(유어보틀위크) 등, 문화상점_동성한의원을 거점으로 지구를 살리는 활동을 진행해보려 합니다."

'문화상점_동성한의원'은 배다리의 새로운 볼거리나 구경거리가 아니다. 환경과 소통, 건강한 삶의 순환을 바라는 이들이 뜻을 모으는 거점이다. '문화상점_동성한의원'은 '혼자는 부족하지만 함께하면 힘이 나는 공간, 힘을 낼 수 있는 공간, 무엇이든 의견을 내며 같이 풀어가는 공간'이다.

가게주인 네 명의 바람은 하나다. '지금껏 여러분들의 도움을 받아 일어섰듯이 앞으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공간'으로 꾸려가는 일이다.

'문화상점_동성한의원'에서 일고 있는 새로운 문화의 바람이, 진동이 심상치 않다.

글·사진 김병선 i-View 객원기자(rainblue10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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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인천시 인터넷신문 'i-View'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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