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파노 포다 "오페라 '나부코'에 한(恨)의 정서 담았어요"

장지영 2021. 8. 3. 0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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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5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무대에 오르는 국립오페라단 '나부코'
국립오페라단의 '나부코' 연출을 맡은 스테파노 포다가 지난달 29일 예술의전당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 하고 있다. 이한결 기자

주세페 베르디(1813~1901)는 전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오페라 작곡가다. ‘라 트라비아타’ ‘아이다’ ‘리골레토’ ‘운명의 힘’ ‘일 트로바토레’ 등 그의 오페라들은 지금도 끊임없이 공연되고 있다. 그를 최고의 이탈리아 오페라 작곡가이자 민족 영웅으로 만든 출발점은 세 번째 작품인 ‘나부코’. 국립오페라단이 8월 12~15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나부코’를 이탈리아 출신의 스타 연출가 스테파노 포다 연출로 16년 만에 선보인다.

오페라 거장이자 민족 영웅이 된 베르디

1842년 초연된 ‘나부코’는 구약성경에 나오는 ‘바빌론 유수’를 소재로 했다. 바빌론 유수는 기원전 6세기 바빌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예루살렘을 멸망시키고 수많은 유대인을 포로로 삼은 사건으로, 나부코는 느부갓네살의 이탈리아식 이름인 나부코도노조르를 줄인 것이다. 테미스토클레 솔레라가 쓴 대본은 픽션으로 나부코와 두 딸 아비가일레와 페네나, 그리고 유다의 장군 이즈마엘레 사이의 사랑과 갈등이 핵심 줄거리다.

베르디는 26살이던 1839년 데뷔작 ‘오베르토’가 호평받았지만 이듬해 어린 딸과 아들에 이어 몇 달 뒤 아내까지 병으로 사망하는 비극을 겪었다. 그 와중에 무대에 올려야 했던 두 번째 오페라 ‘하루만의 임금님’이 실패하자 실의에 빠져 음악을 포기하려 했다. 하지만 베르디의 재능을 높이 평가했던 당시 라 스칼라 극장장이 그에게 ‘나부코’ 대본을 주며 작곡을 권유했다. 이렇게 해서 나온 ‘나부코’는 1842년 초연 직후 이탈리아인들을 열광시켰다. 당시 이탈리아가 여러 국가로 나뉘어 통일되지 못한 데다 북부는 오스트리아의 지배에 놓여 있었기 때문에 이탈리아인들은 극 중 유대 민족을 자신과 동일시했다. 특히 국내에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으로 알려진 합창곡 ‘내 마음아, 황금빛 날개를 달고’는 폭발적인 반향을 일으켜 통일 전 이탈리아의 국가(國歌)로 불리게 됐다.

국립오페라단이 2005년 프랑스 출신의 다니엘 브누앙 연출로 선보였던 '나부코'의 한 장면. 국립오페라단 제공

대규모 출연진이 나오는 ‘나부코’는 스케일 때문에 국내에서 자주 공연되지 못했다. 국립오페라단도 2005년 프랑스 출신의 다니엘 브누앙 연출로 선보인 이후 16년 만에 포다 연출로 선보인다. ‘아름답고 상징적인 무대 미장센’으로 유명한 포다는 1994년 데뷔 이후 연출은 물론 안무, 세트, 의상 및 조명까지 모두 도맡는 것으로 유명하다. 전 세계 오페라극장의 러브콜을 받는 그는 코로나 팬데믹 직전인 2019년엔 프랑스에서 ‘푸른 수염’으로 프랑세즈 상을 받았으며 이탈리아에서는 평생 공로상을 받기도 했다.

포다는 지난달 29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나부코’는 내게 특별한 작품이다. 1994년 데뷔했지만, 이듬해 포르투갈에서 리스본 오페라의 시즌 개막작으로 ‘나부코’를 연출하면서 국제적으로 내 이름이 알려졌기 때문이다”면서 “또 지난해 3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콜론극장에서 ‘나부코’를 공연하려고 했으나 개막 직전 코로나19 여파로 취소됐었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 러시아 볼쇼이극장의 ‘토스카’를 제외하곤 모든 공연이 취소되거나 연기돼 정신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한국의 국립오페라단에서 ‘나부코’ 연출 의뢰가 와서 매우 기뻤다”고 말했다.

코로나 팬데믹이 포다에게 가르쳐준 것

포다는 앞서 한국의 국립오페라단에서 2015년 ‘안드레아 셰니에’와 2017년 ‘보리스 고두노프’를 연출한 적이 있다. 당시 화려하고 고풍적인 무대 세트와 의상 등을 바탕으로 상징적인 이미지를 펼쳐 오페라 애호가들의 환호를 받은 바 있다. 국립오페라단에서 세 번째 연출인 ‘나부코’ 역시 올해 국내 오페라계 최고의 기대작으로 꼽힌다.
스테파노 포다는 '나부코'에 앞서 국립오페라단에서 2015년 ‘안드레아 셰니에’(위)와 2017년 ‘보리스 고두노프’(아래)를 연출한 적이 있다. 국립오페라단 제공

극 중 억압하는 바빌론과 억압받는 유대의 관계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나부코’를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연출이 유난히 많이 나왔다. 앞서 2005년 국립오페라단의 ‘나부코’ 역시 배경을 기원전 6세기 바빌론에서 20세기 나치 점령기 유럽의 ‘게토’(유대인을 강제 격리하기 위해 설정한 유대인 거주지역)로 옮겨온 뒤 유대인이 그 안에서 ‘나부코’를 상연하는 극중극 형태를 취했었다. 하지만 포다는 정치적인 해석이 담긴 연출과 다를 것이라고 강조했다.

“예술은 정치가 아닙니다. 현재 우리가 사는 시대가 너무 복잡한 만큼 오페라를 단순한 정치적 해석의 틀로 풀어내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봅니다. 게다가 ‘나부코’는 단순히 선한 민족과 악한 민족 간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등장인물들이 충돌과 모순의 단계를 거쳐 성장하는 ‘나부코’는 인류의 희망, 회개, 구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구원의 음악이라는 점에서 바그너에게 ‘파르지팔’이 있다면 베르디에겐 ‘나부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해부터 이어지고 있는 코로나 팬데믹도 포다의 이번 ‘나부코’ 연출에 영향을 미쳤다. 코로나19로 극장이 폐쇄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좀 더 본질적인 것의 중요성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코로나19는 제게 트라우마를 남겼습니다. 개막을 앞뒀던 작품이 취소되고 예정됐던 공연이 연기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공중에 떠 있는 느낌이었어요. 한국에서 와서 2주간 자가격리를 하면서 인간의 기본적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는 경험 역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는데요. 코로나 팬데믹은 제가 극장과 오페라, 음악을 좀 더 본질적이고 객관적으로 보도록 만들었습니다. ‘나부코’의 경우 아르헨티나에서는 매우 화려한 프로덕션을 준비했었지만, 한국에서는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며 깨달은 본질의 문제에 집중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국립오페라단 ‘나부코’에 담아낸 한국의 ‘한(恨)’

스테파노 포다가 국립오페라단 '나부코'를 위해 스케치한 무대 디자인의 일부로 격자 무늬가 보인다. 국립오페라단 제공

포다가 국립오페라단의 ‘나부코’를 준비하면서 떠올린 것은 한국의 ‘한(恨)’이다. 지난 2015년 한국에 처음 왔을 때 알게 된 ‘한’은 그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었다.

“한국에서 지내는 동안 한국 문화의 전반에 자리잡은 ‘한’을 알게 됐어요. 제가 직관적으로 느낀 한은 말로 표현하긴 어렵지만 억눌린 울음 또는 존중받을 가치가 있는 울음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역사 속에서 생긴 상처를 극복하려는 정서라고도 생각합니다. 이 정서는 당시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던 이탈리아에서 베르디가 ‘나부코’를 작곡하면서 느꼈던 감정과도 연결된다고 생각합니다.”

포다는 ‘한을 표현하기 위해 무대 디자인에 한글과 격자무늬 등 한국적인 패턴을 반영했다. 그는 “무대 디자인 스케치를 많이 하는 편인데, 한글과 격자무늬가 직관적으로 떠올랐다”면서 “의상에도 한국의 전통적인 실크가 일부 사용된다”고 귀띔했다.

한편 국립오페라단 ‘나부코’는 나부코 역에 바리톤 고성현과 정승기, 여주인공 아비가일레 역에 소프라노 문수진과 박현주 등이 출연한다. 그리고 홍석원 광주시립교향악단 예술감독이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와 국립합창단을 이끈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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