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황금만능주의와 경제학

2021. 8. 3.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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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5개월 전 국민을 도탄에 빠지게 했던 한국토지주택공사 사태 당시 "우리가 분노하는 것은 당사자들의 부도덕한 행위를 향한 것인지, 우리는 갖지 못한 기회와 정보를 그들만 누렸다는 상대적 박탈감 때문인지"를 묻는 조민영 국민일보 기자의 글은 황금만능주의에 익숙해져가는 스스로에 대한 반성을 넘어 경제학이라는 학문이 과연 이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가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계기를 마련해 줬다.

반대로 도덕적이지 않더라도 법의 테두리에서 금전적 이익을 얻을 수 있다면 바로 실행에 옮기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경제학은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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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빈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불과 5개월 전 국민을 도탄에 빠지게 했던 한국토지주택공사 사태 당시 “우리가 분노하는 것은 당사자들의 부도덕한 행위를 향한 것인지, 우리는 갖지 못한 기회와 정보를 그들만 누렸다는 상대적 박탈감 때문인지”를 묻는 조민영 국민일보 기자의 글은 황금만능주의에 익숙해져가는 스스로에 대한 반성을 넘어 경제학이라는 학문이 과연 이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가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계기를 마련해 줬다.

인간의 합리성과 이기심을 바탕으로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자원이 효율적으로 배분되는 시장경제를 설명하는 경제학에는 애초에 도덕성이 존재할 틈이 없다. 인센티브에 반응하는 인간 본성에 근거해 수요와 공급의 작동 원리를 통해 다양한 사회 현상을 직관적으로 해석하는 경제학적 사고에 의하면, 정작 금전적 이익을 뒤로하고 도덕적 가치를 선택하는 경제 주체는 비합리적이라고밖에는 설명할 수 없다. 반대로 도덕적이지 않더라도 법의 테두리에서 금전적 이익을 얻을 수 있다면 바로 실행에 옮기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경제학은 설명한다. 일례로 “청와대보다는 강남 아파트”를 택한 고위공직자들은 지극히 합리적 경제 주체일 뿐이다. 경제학은 그렇게 황금만능주의를 좇는 도덕성 상실 시대를 공공연히 조장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경제학의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 못한 시장경제의 결과물까지도 경제학적 사고를 통해 지극히 합리적인 것으로 포장하곤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서울 강남 집값이 치솟는 이유는 그만큼 높은 가격을 지불하고서라도 강남에 집을 사고자 하는 수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 수요를 지탱하는 큰 축은 자녀를 명문대에 진학시키고자 하는 부모의 교육열이다. 8학군에서 학교를 다니며 대치동 학원을 거치면 명문대에 진학할 확률이 크게 높아지는 것은 온 국민이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래서 모두가 강남에 살어리랏다 외친다. 그러나 모두가 원한다고 해서 거주할 수 있을 정도로 공급이 충분한 것은 아니다. 우리의 교육열을 감안하면 주택 공급을 늘린다고 해서 쉽사리 강남 집값이 잡힐 것 같지도 않다. 따라서 황금만능주의를 좇아 어떻게든 돈을 융통해 전세든 자가든 강남에 입성하는 것은 완벽하게 합리적인 결정이다. 결국 수요와 공급의 원칙은 높은 집값을 감당할 수 있는 부모의 자녀들에게만 높은 명문대 진학 확률의 혜택을 나눠 준다.

경제학은 이 모든 현상을 명쾌히 설명해 주지만, 그렇다고 해서 부의 대물림을 넘어 마침내 “부모 잘 만난 것도 능력”인 시대가 도래한 것마저도 시장경제의 당연한 결과물로 해석하는 데 그치고 만다면 경제학의 미래는 어둡기만 할 것이다. 필자를 비롯한 일반 국민은 “내가 그들처럼 자녀를 강남에서 교육시키지 못하는 상대적 박탈감 때문”에 이런 현상이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책임 있는 경제학자라면 “부모 능력이 자녀 운명을 결정하는 세태가 가져오는 불공정함”을 개선할 필요를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돼줄 수 있는 공정한 교육 기회가 위협받는 것을 공정이 화두가 된 시대는 용인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시장 원리가 초래한 불공정한 교육 기회를 해소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아이러니하게도 경제학적 사고를 통해 쉽게 찾을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자녀를 굳이 특정 지역에서 교육시키고자 하는 인센티브 자체를 소멸시키는 것이다. 대치동 학원을 다닌다고 해서 명문대에 합격할 확률이 높아지지 않도록 입학 전형을 바꿀 수도 있고 전국적으로 공교육을 강화해 특정 지역의 사교육 수요를 줄일 수도 있다. 결과적으로 개천에서 쉽게 용이 나오는 사회가 돼야 한다. 이를 통해 특정 지역 집값 상승을 잡을 수 있는 것은 덤이다.

안재빈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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