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 버스 안내양의 추억

2021. 8. 3.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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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어렸을 적 버스는 좌석버스와 일반버스로 나누어져 있었다.

좌석버스는 가운데 문이 하나 있었고, 일반버스는 문이 앞과 뒤에 있었다.

바늘 하나 더 들어갈 것 같지 않은 버스인데, 다음 정류장에서 또 대여섯 명이 탄다.

돌이켜 보면 버스 안내양은 10대 후반이나 20대 초반 여성 근로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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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어렸을 적 버스는 좌석버스와 일반버스로 나누어져 있었다. 좌석버스는 가운데 문이 하나 있었고, 일반버스는 문이 앞과 뒤에 있었다. 각 문에는 여자 안내양이 서서 돈이나 회수권을 받았고, 사람이 다 내리고 타면 “오라이” 하면서 차 문을 두 번 두드렸다. 회수권 안 내고 타는 개구쟁이 중고생들을 색출하는 것도 차장인 그녀들의 일이다.

차장은 ‘푸시맨’ 역할도 해야 했다. 러시아워엔 버스 한 대에 100명도 더 탄다. 바늘 하나 더 들어갈 것 같지 않은 버스인데, 다음 정류장에서 또 대여섯 명이 탄다. 사람들은 어떻게든 발 한 짝이라도 버스에 걸쳤고, 차장이 이 사람들을 감싼 채 양손으로 버스 문 옆 봉을 잡으면, 버스는 출발한다. 운전기사가 버스를 왼쪽으로 획 기울이면 문에 매달려 있던 손님과 차장이 모두 문 안으로 빨려 들어가고, 때를 놓칠세라 차장은 버스 문을 잽싸게 닫는다. 거의 신기에 가깝다.

돌이켜 보면 버스 안내양은 10대 후반이나 20대 초반 여성 근로자였다. 무작정 상경해 더러는 공장에 취직하고 몇몇은 이리로 흘러들어온 시골 처녀들일 게다. 휴일도 없이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서서 일하니 얼마나 피곤하고 힘이 들었을까. 밤이 되면 차 문에 기대어 꾸벅꾸벅 조는 차장들이 많았다. 그렇게 피곤한데도 손에 무언가를 들고 있다. 영어 단어장이다. 월급 대부분을 시골에 부쳐주고, 기회가 되면 공부하려고 조금씩 저축한다. 그날을 기대하며 꾸벅꾸벅 졸면서도 영어 단어를 외웠던 것이다.

반세기가 지난 오늘, 가난하지만 열심히 사는 것을 중요한 가치로 여기지 않는 세상이 됐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지위가 상승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열심히 일하는 이들이 존중받지 못하는 대한민국이다. 돈 좀 있는 투자자들은 자기 아파트가 한 해에 몇억씩 오른 것을 자랑하고, 공직자들은 얻은 정보를 이용하여 돈을 벌고, 대기업은 신규 사업투자보다 경매 물건을 사서 자산을 늘린다. 가난한 사람들은 로또에 희망을 걸고, 가진 것 없는 젊은이들은 희망을 잃었다. 정상이 아니다.

노동은 신성한 것이고 땀 흘리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노동자는 땀 흘려 일하고, 회사원은 만원 지하철에 시달리며 성실하게 출근하고, 기업가는 새로운 상품과 유통을 창조하기 위해 밤을 새우고, 주부들은 한 푼이라도 아껴 절약하고, 학생들은 진리를 알기 위해 밤을 새워 공부하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아름다운 삶이다.

기독교계의 경우, 평범한 성도, 평범한 목사들이 기반이다. 전도와 설교에 최선을 다하고, 성도들 한 영혼을 위해 매일 새벽 기도하는 목사들, 그리고 그 목사를 믿고 교회 바닥을 걸레질하고, 꼬박꼬박 십일조를 내는 성실한 성도들이다. 그 기반 위에 노회와 총회, 신학교, 기독교 매체와 각종 선교단체, 기독교 연합단체가 있고, 기독교 저술가와 유튜버가 있다. 이 기관들에 종사하는 이들이 결국 평범한 성도들의 헌신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자산의 기본 가치는 늘어나지 않는데 그 자산에 기초한 금융상품과 파생상품을 만들다가, 어느 순간 버블이 꺼져 버린 2008년 금융위기가 생각난다. 투자은행 애널리스트들과 정부 관료와 관변 학자들의 범죄에 가까운 도덕적 해이가 밉고, 그들의 말에 속아 집을 잃은 몰락한 중산층의 불운이 안타깝다. 그러나 우리를 더욱 분노하게 하는 것은 땀 흘려 일하고 아끼고 저축하는, 작은 희망을 품은 노동자들로부터 일할 의욕을 앗아간 것이다.

혹시 한국교회의 목사와 성도들이 한 영혼을 섬기는 평범한, 그러나 가장 어려운 목회 사역에 대한 의욕을 잃지는 않았는지 모르겠다.

장동민(백석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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