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한국인의 DNA에는 노래가 없다?

2021. 8. 3.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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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커스 주커만의 인종차별 발언
"그릇된 태도로 통찰력 빛 잃어"
분노보다 그 근거 성찰·극복해야
전상직 서울대 음대 교수

“기아자동차가 보행자 협회에서 추진하는 버스 타기 운동과 걷기 운동을 후원하고 있다. 내가 만약 그 차를 갖고 있다면 나 역시 차라리 걷고 싶을 것이다.” 2004년, 영국 BBC 자동차 비평 프로그램 ‘톱기어(Top Gear)’의 진행자 제러미 클락슨(1960~)은 이렇게 한국산 자동차를 조롱했다. 냉장고와 세탁기에 바퀴를 붙인 자동차 모형까지 등장시켜가며 “한국산 자동차에는 장인정신도, 영혼도, 열정도 없다. 그런 것은 누구나 만들 수 있다”라는 말도 덧붙였다. 영국이 비평과 조롱의 대상에 성역이 없는 나라임을 고려해도 불쾌한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래서 그가 없다고 한 ‘장인정신·영혼·열정’ 중 ‘영혼’만 콕 집어 이렇게 응수했다. ‘영국 차는 빙의(憑依)했나?’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실컷 조롱한 후에 그가 진지하게 이런 말을 덧붙였단다. “한 가지 확실하게 해두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사실은 한국이 차를 잘 만들 줄 안다는 것입니다.” 그로부터 17년이 지난 지금, 현대·기아차는 미국 JD파워 자동차 브랜드 충성도 조사 6~7위와 유럽 시장 점유율(7.6%) 4위를 차지했다. 조롱에 발끈하기보다 그 이면에 놓인 권면, 즉 가격경쟁력을 넘어 ‘고유의 가치를 담은 최고의 차’를 만들라는 충고를 겸허히 수용한 결과라고 짐작해 본다.

비슷한 일이 또 벌어졌다. 세계적 바이올리니스트 핀커스 주커만(1948~)이 지난 6월 25일 줄리아드 음악원 초청 온라인 공개 강의 중 “한국인에게는 노래하는 DNA가 없다”고 했다. 그의 진의를 알고 싶어 이를 처음으로 공론화한 매체(https://www.violinist.com)를 찾아 자초지종을 살펴보았다.

기사 제목은 ‘핀커스 주커만의 공격적인 문화적 편견 발언 이후 줄리아드 음악원의 대응’. 사건의 경위는 이렇다. 뉴욕 태생의 두 자매가 슈포어(1784~1859)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협주적 이중주’를 연주했다. 주커만은 “거의 완벽한 연주네요, 이건 칭찬이에요.” 뒤이어 “얼마나 완벽하게 연주할 것인지보다 표현에 대해 좀 더 생각해 봐요. 식초나 간장을 좀 더 넣듯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너무 모난(boxy) 연주예요. 즐겨보세요. 바이올린은 단순한 현악기가 아니라 노래하는 악기예요. 기술적으로는 아무 문제 없어요. 때로 어떻게 연주해야 할지 의문이 들 때는 그것을 노래해 보세요.”

음악가들에게 있어 ‘노래한다’라는 표현은 실제로 어떤 노래를 목청껏 부르는 것이 아니다. 앞서 톱기어 진행자가 한국산 자동차에 결여되었다고 했던 세 가지, 즉 ‘정신·영혼·열정’을 담아 연주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주커만이 그 학생에게 요구한 것은 ‘기술적 완벽함을 넘어 음표 이면에 놓인 정서적 측면을 드러내라’는 뜻이었을 게다.

문제는 그다음 발언이다. “한국에서는 노래하지 않아요”. 한국인이 아니라는 말에 “그러면 어느 나라에서 왔어요?”라는 주커만의 질문을 편집자는 ‘물었다(asked)’가 아니라 ‘짖었다(barked)’라고 썼다. 일본계 혼혈 후손이라는 대답에 ‘일본도 마찬가지’라며 우스꽝스럽게 노래를 흉내내자 두 자매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참석자들의 질문에 답하면서 결국은 주워 담을 수 없는 말을 했다. “한국인의 DNA에는 노래가 없습니다.”

기사를 쓴 로리 나일스는 “주커만은 음악적 통찰력을 전했다. 하지만 그릇된 태도로 인해 그것이 빛을 잃었다. 뉴욕에서 태어난 이는 미국인이다. 음악가라면 한국에서 온 음악적 선물이 K-팝뿐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어야 했다”라며 글을 맺었다. ‘그는 한국이 세계 최고의 바이올린 연주자들을 놀라우리만큼 많이 배출하고 있으며 환상적인 연주자들이 일본에서 왔음을 직시했어야 한다’는 댓글도 눈에 띈다.

논란이 불거지자 주커만은 이틀 후 사과문을 발표했다. “제게 있어 저의 경험을 통해 축적한 지식을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지난 금요일, 두 명의 재능 있는 젊은 음악가들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제가 한 말은 문화적 감수성이 결여된 것이었습니다. (중략) 제가 한 말을 주워 담을 수는 없겠지만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이 일로 인해 귀중한 것을 배웠습니다.”

17년 전 한국산 자동차가 ‘잘 만들 수 있는 기술력에도 불구하고 그저 탈 것에 불과하다’는 조롱을 이겨내고 오늘의 위치에 섰듯이 이제 우리는 ‘기술적 수월성’을 넘어 ‘고유의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 타인의 칭찬에 들뜨고 비난에 분노하기보다 그러한 인식과 발언의 근거를 되돌아보고 그것을 극복하는 것이 우리가 갈 길이다. 개(犬)는 이유 없이 짖지 않는다.

전상직 서울대 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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