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닭 칼, 소 칼
공자에게는 10대 제자가 있었는데 그 중 자유는 문학에 특출났다. 자유가 노나라 무성 땅 읍장이 되자 공자는 그를 찾아갔다. 도착한 마을에서는 음악과 노랫소리가 흐르고 있었다. 바로 공자가 가장 이상적으로 여기는 사회의 모습이었다. 이를 본 공자는 빙그레 웃으며 “닭 잡는데 어찌 소 잡는 칼을 사용하는가?”라고 말했다. 자신의 제자가 실제 정치에서 예악을 실현하는 것을 보고 반가운 마음과, 한편으로 무성보다 더 큰 지역에서 예악 문화가 살아있지 못한 아쉬운 마음에 던진 농담이었다.
농담을 이해하지 못한 자유는 “군자는 도를 배우면 사람을 사랑하고, 소인은 도를 배우면 사람을 쉽게 이용한다고 들었다”라며 크든 작든 선생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이 도리라는 뜻으로 받아쳤다. 그러자 공자는 “내 말은 농담이었다. 자유의 말이 백번 옳다”며 다른 제자들이 보는 데서 사과했다. (박재희, 『1일 1강 논어강독』 109쪽)
논어에서 유래한 이 표현이 현대에서는 주로 작은 목적을 위해 거창한 준비나 노력을 들인다는 부정적 의미로 쓰인다. 정치권에도 종종 등장한다. 지난 5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의 해직교사 특별채용 의혹을 1호 사건으로 결정하자 이수진 민주당 의원이 이 비유를 들며 비판했다.
닭과 소를 바꾼 반대의 경우에도 적용된다. 2016년 국정농단 사태 당시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에 대한 특별감찰관 조사가 결정되자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닭 잡는 칼로 소를 잡을 수 있느냐”며 특검을 주장했다.
최근 여권에서 이 칼 논쟁이 뜨거웠다.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가 인터뷰에서 이재명 경기지사를 겨냥해 “닭 잡는 칼과 소 잡는 칼은 다르다”고 말한 것이 발단이었다. 이 지사 측은 “이낙연 후보는 닭이라도 잡아보았나”, “서울시장 소와 부산시장 소를 빼앗긴 분”이라며 맞받아쳤다. 서로를 향한 날 선 말의 요지는 결국 ‘무능’이다. 제자의 능력을 칭찬하던 공자의 농담이 민주당에서는 자당 후보에게 무능 프레임을 씌워 자신의 경선 경쟁력을 높이는 전략으로 사용된 꼴이다.
이들이 간과한 것이 하나 있다. 상대 후보의 무능을 드러낼수록 현 정권과 여당의 과오 또한 상기된다는 점이다. 진정 여당 후보들은 경선 기간 내내 이러한 누워서 침 뱉기 식 말싸움만 보여줄 셈인가?
박해리 정치국제기획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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