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병상의 코멘터리] 출전포기 선수가 도쿄올림픽 영웅?

오병상 2021. 8. 2.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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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체조영웅 바일스..'트위스티즈' 증상으로 출전포기
국가와 메달보다 선수와 인권우선 선언으로 세계적 찬사
시몬 바일스가 도쿄올림픽 단체전 첫 종목 도마 경기를 마친 뒤 나머지 종목 출전을 포기했다. [AFP]

1. 도쿄올림픽 영웅으로 미국 체조선수 시몬 바일스(Simone Biles)가 꼽히고 있습니다. 세계적 체조스타인데 지난달 27일 여자체조 단체전 결선경기를 모두 포기했습니다. 출전을 포기한 선수가 세계적 찬사를 받고 있다니 참 아이러니입니다. 미국체조협회, 후원 스포츠용품는 물론 러시아 체조영웅 스베틀라나 호르키나까지 갈채를 보냈습니다.

2. 바일스가 출전을 포기한 원인은 ‘트위스티즈(twisties)’라는 체조선수들만의 특이한 병입니다. 흔히 골퍼들이 겪는 ‘입스(yips)’와 비슷합니다.
심각한 긴장과 중압감에 의한 심리적 균형상실입니다. 골퍼가 입스에 걸리면..너무 긴장해 몸이 안움직입니다. 억지로 움직인다해도 평소처럼 공을 맞추질 못합니다.

3. 트위스티즈는 입스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위험합니다.
트위스티즈에 걸린 체조선수는 공중에서 공간감각을 상실합니다. 당연히 몸을 정확히 움직이지 못하고..결과적으로 추락합니다. 골프도 멘탈스포츠라지만 체조는 멘탈이 더 결정적입니다. 아주 짧은 순간 위험한 기술을 구사하기 때문에 자신감이 받쳐주지 못하면..생명이 위협받습니다. 당연히 공포심도 더 크겠죠.

4. 바일스가 왜 이런 병에 걸렸을까요?
엄청난 중압갑 때문입니다. 바일스는 2016년 리우올림픽에서 금4 동1개 메달을 휩쓸은 이래 세계 체조계를 호령해왔습니다. 그래서 일찌감치 은퇴했어야할 24세에도 불구하고 미국대표로 출전했습니다.
더욱이 바일스는 2018년 미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체조대표 주치의 래리 나사르 성폭력사건 피해자입니다. 성폭력 생존자(Survivor)의 당당함을 보이고자 출전했습니다.

5. 이렇게 어깨가 무거우니..바일스는 경기를 포기한 뒤 SNS에 ‘공중에서 길을 잃었다. 온세상을 어깨에 짊어지고 있었다’고 올렸습니다. 평행봉에서 추락하는 연습 동영상을 올리고 ‘포기가 아니라 위험한 병에 걸렸다’고 설명했습니다. 인터뷰에서 당당히 말했습니다.
‘나를 위한 결정을 했다. 예전만큼 스스로를 믿지 못한다. 내가 사랑하는 일을 하는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하기위한 것이 되었다..’

6. 바일스의 결정이 찬사를 받는 건..그런 결정을 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공개하는 행동 자체가 엄청난 용기이기 때문입니다. 사방의 비난을 피할 수 없습니다. 바일스의 경우도 주위로부터, 특히 보수 남성들로부터‘약해빠진 여자애’‘소시오패스’란 비난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누구도 하지 못했던 일입니다. 흑인여성으로서 더더욱 쉽지 않았습니다. NYT 2일자 칼럼제목이 ‘바일스는 혼자가 아니다’입니다.

7. 바일스의 결정이 특히 주목되는 것은 이번 토쿄올림픽의 여권신장 분위기입니다.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세계적으로 체육계는 남성위주로 보수적입니다.
도쿄 올림픽에선 남성주도 질서에 대한 반란이 눈에 띕니다. 대표적인 예가 복장입니다. 불필요한 노출로 성적 호기심의 대상이 되길 거부한 것입니다. 독일 체조선수단이 수영복 스타일 체조복을 벗어던지고 긴바지 체조복을 입었습니다.

8. 과거 올림픽의 민족주의 국가주의 애국주의 경쟁 속에서 선수 개인은 '메달 따는 기계'취급을 받았습니다.
그 중에서도 어린 여자 체조선수들은 코치와 감독 눈치에 벌벌 떨었습니다. 미국 대표팀 주치의가 30년간 어린 선수 156명에게 성폭력을 행사하고, 피해선수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에도 불구하고.. 2018년 미투운동이 일어날 때까지 알려지지 않았을 정도니까요..

9. 이런 와중에 한국 양궁스타 안산을 둘러싸고‘페미니스트’논란이 일어났습니다. 정치권까지 끼어들어 설왕설래하니..세계적인 비아냥거리가 되어버렸습니다.
바일스가 한국선수가 아니기에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요? 안산이 한국선수라 안타깝다고 해야 할까요?
〈칼럼니스트〉
2021.08.02.

[오병상의 코멘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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