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 선출직 공직후보자 자격시험 포기해야

2021. 8. 2. 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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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봉기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공법학)


서울대 청소노동자 사망 후 고용노동부는 업무와 무관한 필기시험과 근무평정 반영 및 회의 참석 복장에 대한 품평 등이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한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재발 방지 조치를 하도록 행정지도했다. 최근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자신의 당대표 선거 공약이었다며 선출직 공직후보자에 대한 능력 최저한도를 정하는 자격시험을 강행하겠다는 보도를 보며 이 사건을 떠올렸다. 두 사건이 직접적 관련성이 없는 듯하지만 이것이 선출직 공직 진출을 꿈꾸는 이들에 대한 ‘정당 내 괴롭힘’이라고 하면 과도한 표현일까.

현행 공직선거법 제47조 2항은 정당이 선출직 후보자를 추천하는 때에는 민주적 절차에 따라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민주적 절차에 의하지 않으면 각 후보자의 참정권을 침해하고 국민주권주의에 반할 수 있다. 이 대표가 추진하는 당내 선출직 공직후보자 자격시험도 민주적 절차에 따라 합헌적으로 진행돼야 한다. 그는 정당의 자유를 앞세워 공직 임용 자체가 아닌 정당에서의 공직 후보자 선정 과정이라서 당헌·당규를 개정하면 가능하다고 주장하겠지만, 그것 역시 헌법상 기본권 제한의 한계 및 이른바 ‘기본권의 제3자적 효력’을 무시한 것이다.

국가권력 외에 사인이나 사회적 제(諸)세력에 의해 기본권이 침해되는 일이 많아짐에 따라 사인 상호 간 관계에까지 기본권 효력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 제3자적 효력이다. 특히 헌법상 직접 적용되는 대(對)사인적 효력에는 참정권 외에도 근로3권, 언론출판의 자유 등이 있다. 따라서 정당에서 선출직 공직후보자 선정, 즉 공천 절차를 진행함에 있어서도 당헌·당규에 의한 과도한 참정권 제한은 위헌·위법이다. 그런데도 이 대표는 시험 강행 의지를 꺾지 않고 있다.

이 대표는 “지방자치단체를 감시하는 구의원·시의원은 직급상 4급 대우인데 적어도 9급시험을 위해 노량진에서 몇 년씩 공부하는 분들보다는 실력이 좋아야 하지 않겠냐”고 했다. 그의 발언을 보면 자격시험 대상으로 구의원·시의원 등 기초·광역 지방의원을 지목한다. 하지만 김재원 조수진 최고위원 등 다수의 반대로 인해 그가 구상했던 ‘선출직 공직후보자 자격시험 태스크포스(TF)’는 ‘공직후보자 역량강화 TF’로 명칭을 바꿨다. 그러나 그는 최고위원회에서 자격시험을 빼기로 했음에도 수능 ‘일타강사’에 의뢰해 모의시험을 치렀고, TF 위원 임명장 수여 시점까지도 시험 출제 방식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그는 적어도 독해 능력, 컴퓨터 활용 능력 평가는 해야겠다며 합당한 능력을 갖출 것을 강변하고 있다. 결국 정보기술(IT)에 생소한 나이 든 지원자들을 배제하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비판을 받기에 이르렀다. 몇 차례 공천심사위원을 했던 경험에서 볼 때 자격시험으로 진입 장벽을 설치할 것이 아니라 진입 개방 후 당선자에 대해 역량 강화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게 우선이라고 본다. 물론 이 대표 입장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수년 전 공천심사 당시 기초의원 면접에서 “구의원이 무엇을 하는 자리냐”는 질문에 “구청장님 보좌 잘하고”라는 답변에 경악했었다. ‘견제와 균형’을 기대했던 것은 사치였다.

그럼에도 선출직 공직후보자 선정을 위해 자격시험을 도입하는 것은 국민주권원리라는 헌법 원칙에 반한다. 뿐만 아니라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 정당 공천제의 폐지와 도입을 반복했던 우리나라의 지자체 공천제 도입 경위를 보더라도 자격시험 도입은 부적절하다. 공천을 통한 과도한 정당 개입은 참정권 침해라는 부정적 인식 때문이었다.

따라서 선출직 공직후보자 자격시험 도입은 다음의 이유로 포기돼야 한다. 첫째, 자격시험을 통한 지방의원 출마 권리의 진입 장벽은 참정권 침해로서 위헌이다. 자격시험이 아니라 종래의 심층면접으로도 충분히 그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둘째, 자격시험 대체 심층면접 방식에서 일정한 기본 지식 확인 과정을 거치는 경우에도 업무와 무관한 검증은 허용되지 않는다. 면접에서 개인의 지식 평가에 점수 비중을 높이는 것은 가능하다. 셋째, 좋은 성적과 좋은 정치인은 정비례하지 않는다. 좋은 점수가 좋은 정치를 가져왔다면 정치 불신이라는 말조차 없었을 것이다.

선출직 공직후보자 자격시험 실시 여부 판단에 있어 참정권 침해와 국민주권원리에 반하는 위헌적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끝까지 이를 강행한다면 그것은 이 대표의 헌법적 무지함과 경험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일 뿐이다.

신봉기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공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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