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 휘젓는 대선 테마주..'혹시'는 없다

배준희 2021. 8. 1.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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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성씨·고시 동기..사업 연관성 제로

증권가에서 대선 테마는 5년 주기로 빠짐없이 등장한다. 이번에도 큰 장이 열렸다. 내년 열리는 제20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주요 대선 주자들과 별의별 인연으로 엮인 대선 테마주가 연일 요동친다.

금융투자 업계와 한국거래소 등에 따르면 주식 시장에서 대선 주자들과 얼토당토않은 인연으로 엮인 테마주가 판을 치고 있다.

최근 주가 변동성이 두드러졌던 대선 테마주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 관련주다. 시장에서는 한일화학, NE능률, 정원엔시스, 덕성, 자연과환경, 서연 등을 윤석열 관련주로 묶고 있다. 윤 전 총장과 성씨가 같다는 등 억지스러운 이유가 대부분이다.

한 예로 한일화학은 윤성진 대표이사가 윤 전 총장과 같은 파평 윤씨라는 설이 돌면서 윤석열 테마주로 편입됐다. 파평 윤씨가 희귀 성씨인 것도 아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5년 기준 파평 윤씨는 충청 지역을 중심으로 전국에 77만여명이 분포해 있다. 공교롭게도 이 종목은 오세훈 서울시장 관련주로도 분류된다. 이 회사 김영수 감사위원이 오 시장과 고려대 동문으로 알려지면서 오세훈 관련주로 분류됐다. 동문인 것은 맞지만 김 감사위원은 1953년생, 오 시장은 1961년생으로 학창 시절이 겹쳤을 가능성은 낮다. 1972년 설립된 한일화학의 본업은 화학 사업이다. 한일화학은 아연화(Zinc Oxide) 사업이 본업으로 아연화는 고무 공업, 도료, 세라믹, 요업, 사료, 화장품 등 다양한 산업의 기초 원료로 쓰인다.

윤 전 총장과 같은 성씨라는 이유로 테마주로 편입된 회사가 또 있다. 코스닥 상장사인 영어교육 업체 NE능률은 최대주주인 윤호중 hy(구 한국야쿠르트) 회장이 윤 전 총장과 같은 파평 윤씨라는 이유로 역시 테마주에 편입됐다. NE능률은 올 들어 주가가 2845원에서 2만원 안팎으로 약 7배 폭등했다. NE능률은 “과거, 현재 당사의 사업과 윤 전 총장은 아무 관련이 없다”고 공시했지만 불나방처럼 달려든 개인투자자들 광기를 달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 관련주도 요란스럽다. 코스피에서는 부동산 매매·임대 업체인 이스타코가 이재명 지사 관련주로 묶여 주가가 폭등했다. 이스타코는 이 지사의 장기 공공주택 정책 관련 테마주로 엮였으나 회사 측은 ‘관련 없다’고 공시했다. 1980년 설립된 이스타코는 주택과 상가를 새로 짓거나 분양하는 부동산 매매 업체다. 2003년부터는 미분양 오피스텔, 상가 등을 임대 사업에 활용해 보증금 운용과 임대료 수입을 얻고 있다.

동신건설은 이스타코과 함께 대표적인 ‘이재명 테마주’로 꼽힌다. 이 회사는 이 지사의 고향인 경북 안동에 본사가 있다는 이유로 관련주가 됐다. 지난해 동신건설은 매출액 355억원, 영업이익 22억원, 당기순손실 19억원을 각각 기록했다. 이외 전자저울, 로드셀 제조·판매 업체 카스는 사외이사가 이 지사와 사법시험·사법연수원 동기라는 이유로 테마주로 편입됐다. 지난 5월 회사 측은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당사 사외이사가 사법시험 28회, 사법연수원 18기로 동기인 것은 사실이나 그 이상의 친분 관계는 없다”며 “과거, 현재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당사와 사업 관련 연관성이 전혀 없다”고 밝혔다.

최근 매수세가 몰리는 테마주는 야권의 또 다른 대선 주자로 꼽히는 최재형 전 감사원장 관련 종목이다. 코스닥 상장사인 소프트웨어 개발 업체 이루온이 대표적이다. 이루온은 최대주주인 이승구 대표가 최 전 원장과 경기고·서울대 동문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대선 테마주가 됐다. 이루온은 6월에만 약 2배 올랐다.

대선 테마주의 패턴은 매번 비슷하다. 대부분 특정 후보와 학연, 지연 등 사적 인연을 강조하면서 향후 정권 교체 과정에서 정책 수혜를 입을 것이라는 소문을 퍼뜨리는 식이다. 정치 테마주는 해당 정치인의 여론조사 지지율과 등락을 같이했기 때문에 선거가 임박하면서 지지율 추이에 따라 후보별 테마주의 희비가 엇갈린다. 결론부터 말하면 특정 후보와 연관된 대선 테마주가 실제 해당 후보 당선 뒤 실적이 개선된 사례는 전무했다.

과거 사례를 거슬러보면 금방 알 수 있다. 금융투자 업계에서는 대선을 포함한 정치 테마주가 증시 전면에 등장한 것을 2007년 17대 대선을 즈음해서로 본다. 당시 유력 대권 후보로 거론되던 이명박 전 대통령이 ‘4대강 사업’을 공약으로 내걸자 관련주가 폭등했다. 그나마 4대강 테마는 이명박정부의 대선 공약과 연관이 있었기 때문에 전혀 근거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한반도 대운하 공약 관련 건설·개발주가 대표적이었다. 이화공영은 2007년 주가가 최고 33배까지 올랐다. 그해 12월 초순 3만1922원으로 정점을 찍었던 주가는 이후 연속 하한가를 기록해 연말 7531원으로 마감했다. 이명박 후보의 당선도 소용없었다.

18대 대선 때는 지금처럼 황당한 사적 인연을 앞세운 테마주가 본격적으로 기승을 부렸다. 박근혜·문재인·안철수 후보 등 유력 정치인의 인맥을 중심으로 형성된 테마주가 판을 쳤다.

대선 테마주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간단하다. 일단 특정 정치 테마주로 제법 쏠쏠한 시세차익을 거둔 ‘단타꾼’이 관련 정치인의 학연과 인연 등을 샅샅이 훑는다. 이 단타꾼은 특정 정치인과 여러 인연으로 엮을 만한 상장사를 여러 곳 골라둔 뒤 언론에서 지지율 상승 등 관련 소식이 전해질 때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나 온라인 주식 카페, 모바일 메신저 등을 통해 일제히 퍼뜨린다.

이런 테마주 투자가 일반 개인으로까지 급속히 확산된 데는 증권가 메신저 문화가 한몫했다는 분석도 있다. 2000년을 전후해 특정 메신저가 증권가에 빠른 속도로 퍼졌는데 이를 통해 테마주 관련 정보 공유가 손쉽게 이뤄지며 전파 속도가 큰 폭으로 빨라졌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막대한 유동성이 증시로 유입됐고 주식 투자를 처음 접한 초보 개인투자자가 대거 등장하며 시장이 변화를 겪은 탓도 있다. 금융투자 업계 관계자는 “최근 개인투자자는 과거보다 스마트하다고 평가받음에도 불구하고 한탕주의 특성은 여전한 것 같다”며 “정치 테마주는 아예 눈길도 주지 않는 것이 상책”이라고 강조했다.

황당무계한 테마주 역사

1980년대 증시 휩쓴 ‘만리장성 4인방’

정확한 유래를 따지기는 힘들어도 국내에서 테마주 투자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때는 한국 경제의 호황기였던 1980년대부터다.

첫 번째 테마주로 꼽히는 것은 이른바 1984년 여름에 불어닥쳤던 북예멘 유전 개발 관련주다. 당시 삼환기업이 북예멘 마리브 유전 개발에 참여했다는 소식이 국내 주식 시장에 급속도로 퍼졌다. 이후 선경(현 SK네트웍스), 유공(현 SK이노베이션), 현대종합상사 등의 사업과 직간접적으로 연계된 자원 개발 관련 종목이 6개월간 2~3배 급등했다. 이들 유전 관련주는 그나마 실체가 있는 테마주였다. 3년 후인 1987년 12월부터 북예멘 광구에서 본격적으로 원유가 생산되면서 테마주의 근거가 확인됐기 때문이다.

최근 정치 테마주처럼 그야말로 황당한 테마주가 등장한 때는 노태우 전 대통령이 중국·러시아 등에 대해 적극적인 북방 외교 정책을 추진하던 1980년대 후반이다. 당시 증시는 이른바 ‘만리장성 4인방(대한알루미늄·태화·삼립식품·한독약품)’ 테마주로 연일 들썩였는데 이유가 그야말로 황당무계했다.

예를 들면 이렇다. 1987년 말 ‘중국 정부가 만리장성에 바람막이를 설치하기로 했는데 여기에 쓰이는 알루미늄 새시를 전량 납품한다’는 소문이 돌자 대한알루미늄이 급등했다. 이어 ‘이 공사에 동원되는 인부들이 신을 신발을 전량 납품하게 됐다’는 루머로 검정 고무신을 만들던 태화가 급등했다. 끝이 아니다. ‘인부들의 간식으로 쓸 호빵을 공급하게 됐다’는 루머로 삼립식품이 만리장성 테마에 올라탔고, ‘인부들이 호빵을 먹다 체할 때 먹는 소화제를 공급한다’는 재료로 한독약품이 대미를 장식했다. 그야말로 황당무계한 소문만으로 폭등한 ‘만리장성 4인방’ 중 대한알루미늄(2001년)과 태화(1999년)는 결국 상장폐지 수순을 밟았다.

1990년대로 넘어와서는 IT 테마주가 춤을 췄다. 당시 미국에서 IT 산업이 꽃을 피우면서 국내에서도 1998년 IMF 외환위기를 즈음해 코스닥 시장과 IT 기업에 대한 집중 육성 방안이 발표되자 IT 테마주 투자가 들불처럼 번져나갔다.

IT 버블이 끝나자 2004년과 2005년에는 바이오주가 강세를 보였다. 2005년에는 줄기세포 테마주가 강세였지만 같은 해 하반기 ‘황우석 쇼크’로 고꾸라졌다. 2006년은 에너지와 인수합병(M&A) 바람이 코스닥 시장을 휩쓸었다.

배준희 기자 bjh0413@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20호 (2021.08.04~2021.08.1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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