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밥값 지원받던 직장 '멘토-멘티', 왜 흐지부지됐을까

박헌정 2021. 8. 1. 11:0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더,오래] 박헌정의 원초적 놀기 본능(98)

새로운 세계에 첫발을 내딛는 사람에게 방향성을 제시해주는 멘토는 자기 처지가 아니라 멘티의 입장에 서서 그에게 가장 필요한 것, 가장 결핍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 [사진 박헌정 제공]


예전에 직장에는 ‘멘토제’라는 게 있었다. 사회 첫발을 내딛는 신입사원이 잘 적응할 수 있도록 곁에서 조언해주고 보살펴줄 선배를 지정해 ‘멘토-멘티’ 관계를 만들어주고 밥값까지 지원해가며 활동을 권장했다. 그런데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대개는 바쁜 직장생활 속에서 흐지부지되곤 했다. 멘토인 선배는 술자리에서 이런저런 회사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더 친해지면 ‘누구누구를 조심해라’, 어떨 때는 인생론이나 꼰대 철학 단계까지 접어들기도 했다. 그런 조언이 효과 있었을까? 정작 도움이 된 건 그들이 보여주는 행동이었다. 남 욕하는 선배, 회사일 외에는 아무런 주제도 찾지 못하는 선배, 도움 될 말은 없이 끝까지 다정하기만 한 선배 등. 햇병아리 후배도 나름대로 보는 눈은 있었다.

세월이 흘러, 나 역시 후배에게 본보기가 되었을까 생각해 보니 좀 찜찜하다. 그들도 나를 평가했을 텐데, 내 일만 알아서 했지 그리 좋은 선배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래도 인복은 있어서 주변의 애정과 호의 덕분에 직장생활을 잘 마무리했다. 특히 중요한 두 분의 멘토가 있다.

첫 번째 멘토는 첫 직장에서 만난 김석주 선배다. 첫 업무는 그와 함께 사보를 만드는 것이었는데, 그는 내게 자기 지식을 전부 쏟아부어 글 쓰는 기초를 잡아주었다. 문학을 전공해 기본 문장은 갖춰져 있던 나는 선배 덕분에 기업에서 필요한 글을 쓸 줄 알게 되었고, 이후 직장생활을 수월하게 했으니 그가 내 인생의 물꼬를 트게 해준 셈이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철든다’는 개념을 배운 것이다. 나보다 일곱 살 많던 그는 군자다운 어진 성품이었고, 나는 어린 나이에 대기업에 입사해 아무것도 모른 채 천방지축 뛰어다니며 잘난 척하던 철부지였다. 물론 그의 말과 행동이 내게 빠르게 흡수되어 나를 금세 바꿔놓지는 않았지만 그를 보며 생각과 말과 행동에 있어 뭐가 옳은지 그른지 알게 되었고 서서히 다듬어졌다. 이후에도 여러 가지로 신세를 많이 졌는데 점점 연락이 뜸해지더니 소식이 끊긴 지 한참 되었다. 한마디로 나는 ‘먹튀’였다. 평생 감사하고 있다는 것을 이 글로나마 전하고 싶다.

그리고 두 번째 직장인 재보험회사의 박종원 회장이다. 행시 출신 재경부 관료였던 그는 부도 위기의 회사를 살려 세계 7위까지 올려놓은 입지전적인 경영자다. 그는 내게 똑똑하게 일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박종원 회장(오른쪽)은 업무적으로 부족한 부분을 단련시켜 주신 고마운 멘토다. 업무적으로는 단호하면서도 개인적인 배려도 잊지 않으셨다. 겨울이면 주말마다 직원들과 스키장에 다니며 스키를 가르쳐주셨다.[사진 박헌정]


중앙부처에서 거시적인 정책을 고안하다가 일반 기업에 온 그의 눈에 회사의 업무행태가 얼마나 작고 답답하게 보였을까. 그러니 임직원들이 핵심 못 잡고 실속 없이 일하면 여지없이 ‘박살’을 냈다. 그리고 결과는 회사실적과 임금의 가파른 상승곡선으로 나타났다. 나는 그분의 연설문, 회의자료 같은 원고 초안을 만든 후 마주 앉아 의논해가며 완성하는 일이 많았다. 조직 수장의 연설은 곧 경영이고, 그 한 마디 한 마디가 경영전략이라는 자부심은 있었지만, 정말 고단하고 스트레스받는 일이었다. 회사 전체 상황은 물론이고 경영진이 모르는 분위기까지 파악하고 있어야 해 한순간도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연차가 오르자 비서실장이 되었다. 덕분에 까마득히 높은 유명인사도 많이 만나고, 그러면서 그 세계에서는 어떻게 일하고 교류하는지, 최상위층의 눈높이에 맞는 모습은 어떤 건지 가늠할 수 있었다. 지금은 자상하고 부드럽게 맞아주시지만, 정말 많이 야단맞았다. 비서에게는 냉철함, 정확성, 충성, 중용, 인내 같은 덕목이 필요하다. 머리는 입체적으로 돌아가야 하고, 입은 상황을 잘 정리해야 하고, 행동은 잽싸야 한다. 그러니 처음에는 얼마나 버벅댔던지. 당연히 꾸중과 지적이 이어졌는데, 그때마다 나의 아둔함이 뼈저리게 느껴지며 200%씩 발전하는 기분이 들었다. 야단을 맞더라도 그의 말대로 하면 군더더기 없이 핵심에 빨리 접근할 수 있었고, 그렇게 비서실장을 하고 났더니 성격이 ‘빠릿빠릿’해져 있었다. 멘토는 다정하게 보살펴주는 것도 필요하지만 가장 절실한 것, 가장 결핍한 것을 채워주어야 함을 느꼈다.

15년간 재직 후 퇴임하던 날 만찬 자리에서 “저를 낳고 키워주신 것은 친부모님이지만, 사회적인 아버지 역할을 해주신 분은 회장님입니다”라고 말씀드렸다. 극상의 아부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진심이었다. 뭐하러 임기 끝난 분께 아부하겠는가. 세상에는 일 가르쳐주는 사람은 많아도 큰 그림을 정확히 이해시켜주는 사람은 드물다. 왜? 자기도 모르니까. 자기 눈높이대로 말하면 듣는 사람도 그대로 배워 눈앞의 세상만 바라보며 한평생 살기 쉽다. 그렇게 방향성 대신 방법만 가르쳐주는 것은 멘토가 아니라 매뉴얼이다. 하지만 나는 그분 덕분에 하늘 높이 올라가 세상이 넓음을 한번 보고 내려왔다. 위에서 봤더니 세상에는 본질과 상관없는 군더더기가 너무 많았고, 업무에서나 생활에서나 그 거품을 빼고 사는 것이 나의 신조가 되었다.

나이 들고 경험이 쌓일수록 모든 일을 여유 있고 완벽하게 처리해야 할 것 같은데 오히려 더 낯설고 조급해진다. 삶의 지혜와 평화를 전해줄 멘토가 절실하다. [사진 Pixabay]


이제 중년의 나이이지만 경험이 늘고 노련해질수록 세상은 더 두렵고 만만치 않은 것 같다. 그래서 더 멘토가 그립다. 능력 향상보다 좋은 마음으로 평화롭게 살아가는 데 도움을 줄 멘토 말이다. 하지만 누가 먼저 멘토로 나서줄 리 없고, 나 스스로 찾아 나서야 하는데 쉽지 않다. 마음이 열리지 않아 그럴 수 있다. 아무리 좋은 멘토를 만난다 한들 받아들이는 게 중요한데 점점 고집이 세지는 것 같아 걱정이다. 고집은 이성과 상식의 적 아닌가.

수필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