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국가 순위부터 바꿔보자

임상균 2021. 7. 31.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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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균 칼럼]
“제가 물 타는 능력은 뛰어나죠.” “49초요? 미쳤네.” ‘한국 수영의 희망’으로 불리는 18세의 황선우 선수. 이번 도쿄 올림픽에서 결국 노메달로 그쳤지만 그의 당찬 모습 덕분에 국민들은 흐뭇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우리가 종주국인 태권도는 결국 ‘노골드’에 그쳤다. 태권도가 정식 종목이 된 2000년 시드니 올릭픽 대회 이래 한국이 금메달을 하나도 따지 못한 것은 처음이다. 하지만 태권도 선수들을 비난하는 시각은 찾아 보기 힘들다. 오히려 이제 태권도가 전 세계에서 즐기는 스포츠가 됐다며 반기는 분위기다. “태권도가 올림픽 ‘메달 소외국’들의 희망으로 자리매김했다”는 뉴욕타임스 기사가 더 회자될 정도다.

사상 처음 올림픽에 출전한 럭비 대표팀은 5경기 모두 패하며 꼴찌의 성적을 거뒀다. 마지막 11~12위 결정전에서는 일본에 패했지만, 국민들은 선수들의 투혼만을 기억한다.

여자 태권도 선수 이다빈은 결승전에서 패한 직후 자신을 이긴 세르비아 선수에게 웃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2등을 하고도 바닥에 쓰러져 통한의 눈물을 흘리던 선배들 모습과 다르다. 은메달을 걸고 환하게 웃으며 손 흔드는 펜싱 여자 에페 대표팀 선수들의 시상식 사진은 다음 날 신문 1면을 두루 장식했다.

그동안 스포츠에서는 무조건 우승을 하거나 금메달을 따야 했다. 1등만이 부와 명예를 얻는 길인 줄 알았다. 국민들도 “라면만 먹고 뛰었어요”라는 임춘애(서울아시안게임 육상 3관왕)식 감동 스토리를 원했다. 이제는 달라졌다. 금메달에 연연하지 않는다. 한계를 이겨내고 도전하는 것 자체에 환호한다. 결과 못지않게 땀 흘리며 준비한 과정에 감동한다. 경기에 패해 아쉬워하는 선수의 SNS에는 “당신은 우리의 자랑스러운 국가대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너무 멋있다” 등의 댓글이 달린다.

이것이 MZ세대가 스포츠 또는 경쟁을 대하는 자세인가 보다. 대표 선수 SNS에는 격려나 응원의 묵직한 글뿐 아니라 “언니라고 불러도 돼요?”와 같은 가벼운 농담이 올라온다

기성세대들이 메달 색깔을 대하는 태도를 바꿔야 할 때가 온 듯하다. 전 세계 3등도 대단한 성과다. 왜 한탄하고 아쉬워해야 하는가. 미국은 진작부터 올림픽의 국가 순위를 메달 합계로 나열한다. 금·은·동 메달의 총수가 가장 많은 국가가 1등이다. 3가지 메달에 동등한 가치를 부여한다는 의미다. 한국을 포함해 나머지 국가들은 금메달이 많은 순서대로 국가 순위를 매긴다. 메달 합계 방식으로 하면 인구가 많고 스포츠 저변이 넓을수록 유리하다. 미국이 메달 합계를 중시하는 이유일 수도 있다. 한국은 두세 계단 내려갈 수 있다. 좀 내려가면 어떤가. 2016 리우 올림픽에서 우리 등수는 아무도 알지 못하지만 여자 유도에서 20년 만에 결승에 진출한 정보경 선수는 기억하는 이가 많다. 대한체육회 홈페이지와 네이버에서는 국가 순위로 금메달 수와 메달 합계 2가지 모두 게시 되기 시작했다. 1등 지상주의에서 벗어나는 우리 사회의 작은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주간국장 sky221@mk.co.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20호 (2021.08.04~2021.08.1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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