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부치다 미끄러져"..6년간 보험금 3억 '불운한 가족' 비밀

안효성 입력 2021. 7. 31. 08:01 수정 2021. 9. 1.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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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지경 보험사기]

6년간 입원 일수 916일. 보험금 3억5000만원.

경기도 부천시에 사는 일가족 4명의 보험금 수령 기록이다. 입원 사유만 놓고 보면 온갖 불운이 이들 가족을 한꺼번에 덮쳤다. 빙판길과 화장실에서 미끄러지고, 차에서 내리던 중 차가 갑자기 출발해 넘어져 병원 신세를 졌다. 베란다 물청소를 하다, 심지어 명절에 전을 부치다 기름에 미끄러져 다치기도 했다.

하지만 이 '불운한 가족'의 스토리는 모두 가짜로 들통났다. 보험설계사 출신의 여성과 남편, 아들, 어머니까지 가담한 '가족 보험사기단'이 보험금을 타내기 위해 꾸민 일이었다.

허위로 증상을 꾸며 병원에 입원해 총 3억5000만원의 보험금을 챙긴 일가족이 처벌을 받았다. 중앙포토·연합뉴스

사기를 주도한 건 여성 A씨였다. A씨는 2007~2009년 보험설계사로 일했는데, 이때 쌓은 지식을 악용해 돈을 벌 궁리를 했다. A씨는 남편인 B씨와 아들 C씨, 어머니 D씨 명의로 2008~2009년 사이 입원급여가 중복해서 나오는 보험을 집중적으로 가입했다.

이들이 가입한 보험은 모두 35개다. A씨 10개, B씨 8개, C씨 11개, D씨 6개 등이다. 가족이 매달 낸 보험료만 470만원이다. 이 중 부부는 보험료로 285만원을 냈는데, 귀금속 가게를 하던 부부의 수입이 매달 400만원 정도였다. 수입의 70%를 보험료로 낸 셈이다.

이후 이들은 본격적으로 병원을 들락거린다. 입원 사유는 목, 허리, 무릎, 어깨통증, 두통, 어지럼증 등이다. 환자의 통증 호소만으로도 입원이 가능한 증상들이다. 병원에 입원해서는 약물치료나 물리치료 등을 주로 받았다. 장기간 입원에도 증상이 호전되지 않으면 상급 병원을 찾을 만도 했지만 이들 일가족은 동네병원과 한방병원만을 고집했다.

이들 일가족은 허리통증 등을 이유로 수차례 걸쳐 병원에 입원해 보험금을 청구 받았다. 총 입원일수는 2225일이지만, 이중 916일만 허위입원으로 입증됐다. pixabay


하지만 입원한 가족이 함께 술을 마시는 등 수상한 정황들이 포착됐다. 주로 모녀 관계인 A씨와 D씨가 함께 병원을 입원할 때였다. 두 사람은 2011년 10월에는 함께 태국으로 여행도 다녀왔다. A씨는 화장실에서 넘어져 요추 염좌 진단을 받고 병원 신세를 지고 있던 시기였고, D씨는 시화방조제에서 넘어져 딸과 같은 요추 염좌 진단을 받고 병원에 입원치료를 받던 시기였다.

이렇게 A씨는 2012년 2월~2016년 4월까지 8회에 걸쳐 283일을 입원해 1억500만원의 보험금을 받았고, B씨는 2010년 1월~2016년 5월까지 9회에 걸쳐 428일을 입원해 보험금 1억5200만원을 받았다. C씨는 83일을 입원해 보험금 3663만원을, D씨는 122일을 입원하고 5913만원을 받았다.

결국 일가족은 2010~2016년 916일을 입원해 보험금 3억5403만원을 받아 챙겼다. 그나마 이는 보험사기로 명확하게 입증된 입원 일수만 헤아린 것이다. 전체 입원일수를 보면, A씨(751일, 보험금 3억1833만원), B씨(947일, 3억3038만원), C씨(200일, 1억476만원), D씨(327일, 1억4869만원) 등이다. 합하면 입원일수 2225일, 타간 보험금은 9억218만원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과다입원의 경우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입원 적정성 심사를 하고 있는데, 병원별로 심사를 하다 보니 혐의 입증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보험사기 적발금액 및 인원.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이들 가족의 보험사기는 2016년 3월이 되어서야 덜미가 잡혔다. 다수의 보험사에 가입한 뒤 잇따라 보험금 청구한 정황이 의심을 사면서다. 일가족은 지난해 8월 인천지방법원에서 열린 2심 재판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다. A씨와 B씨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C씨는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 D씨는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각각 선고받았다. 사기로 판명된 보험금은 보험사에 반환했다. 재판부는 “다수의 선량한 보험가입자들에게 부담을 전가하는 등 사회적 해악이 매우 크다”고 선고 이유를 밝혔다.

안효성 기자 hyoz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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