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두 개의 산

2021. 7. 30.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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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허락된 사람만이 정상에 오른다고 합니다.

출애굽기에는 두 개의 산이 나옵니다.

그는 최신작 '두 번째 산'에서 인간의 일생에는 두 개의 산이 있다고 말합니다.

절대자의 초청을 받은 사람만이 갈 수 있는 두 번째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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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6장 24절~17장 5절


산은 허락된 사람만이 정상에 오른다고 합니다. 전문 산악인이라도 고봉에 오르기 전 몸과 마음과 주변을 정갈하게 합니다. 골짜기와 달리 산은 내려다보는 대상이 아닙니다. 우러러봐야 하는 대상입니다. 그래서 산은 경외와 갈망의 대상입니다.

교회사의 영성가들은 산에 거하며 하나님과 깊은 대화를 나눴습니다. 주님도 미명에 기도하시기 위해 산에 오르셨습니다. 오늘 본문 변화산과 같은 고지가 성경엔 500번 넘게 등장합니다.

성경의 산은 그리 단순하지 않습니다. 산은 물리적으로 변하지 않기에 견고한 피난처입니다. 그럼에도 가파른 경사와 절벽, 구름과 번개 등으로 산은 또 두려운 험지를 상징합니다. 산은 영적인 장소였고 또 진정한 예배 처소였지만, 이방 민족에겐 우상을 숭배하던 곳이기도 합니다.

출애굽기에는 두 개의 산이 나옵니다. 이집트의 바로 왕은 스스로 거대한 산, 왕묘인 피라미드를 짓습니다. 이집트 문명은 피라미드라는 인공 산의 문명입니다. 공동체의 유익이 아니라 바로 왕 자신의 행복을 위해, 왕조의 영광을 위해서 산을 지어냈습니다. 이건 우상에 지나지 않습니다만 사람들은 자신만의 안전과 행복을 위해서 자신만의 산을 지으려 합니다. 각종 숭배를 만들어내는 우상 공장에 지나지 않습니다.

아브라함 카이퍼상 2020년도 수상자인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브룩스는 우상 공장인 이런 산을 가리켜 첫 번째 산이라고 명명했습니다. 그는 최신작 ‘두 번째 산’에서 인간의 일생에는 두 개의 산이 있다고 말합니다. 먼저 누구나 오르려는 산이 첫 번째 산입니다. 첫 번째 등정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려 합니다. 재능을 연마하고 확고한 업적을 세우려 합니다. 첫째 산행으로 정상에 가서 만나는 자신이 진짜 자기라고 철석같이 믿습니다.

문제는 그 산에 나처럼 오르고자 하는 경쟁자들이 너무 많다는 겁니다. 종종 아찔한 순간이 찾아오고 끔찍하게도 조난자들이 속출합니다. 남들이 못 가진 것을 가지고 있는 이들, 그들은 그것으로 영광을 누리지 못합니다. 오히려 그로 인해 질투와 시기, 조롱과 공격, 거짓 증언과 죽임까지 당하곤 합니다. 과거 민주화운동을 오래 한 후 대통령에 오르신 분은 “영광은 한없이 짧았고, 고뇌는 길고도 무거웠다”고 말했습니다. 성취를 위해 오르는 첫 번째 산에선 생각지도 못한 치명적 상처를 입고 나가떨어져 골짜기로 이르게 됩니다.

굴러떨어지는 그 추락의 순간에 인간은 참 자아를 찾는 계시의 순간을 만난다고 합니다. 이를 통해 두 번째 산을 찾게 됩니다. 이집트에서 떨어진 모세에게 두 번째 산은 시내산이었습니다. 절대자의 초청을 받은 사람만이 갈 수 있는 두 번째 산. 우리는 그 산의 떨기나무 앞에 서 있게 됩니다. 자아가 중요했던 첫 번째 산에서, 이제 소명이 중요한 두 번째 산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첫 번째 산의 오만했던 내가 두 번째 산의 허락된 경계까지 오르는 겸손한 내가 되어 하나님을 바라는 존재가 됩니다. 내가 원하는 자리가 아니라 내가 있어야 하는 자리로 가게 되는 겁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조우한 것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 기쁨입니다. 복음의 비밀을 아는 제자도의 길을 걷는 하나님의 종들이라면 끝내 사라지는 세상의 기쁨과 경쟁하지 않습니다. 섬김을 받으려는 자와 섬기려는 자는 부딪치지 않습니다. 명료한 소명을 받고 변화되어서 궁극적으로는 헌신을 위해 열려야 합니다.

성경에는 이 두 번째 산맥의 흐름이 의연하게 이어져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모리아산, 모세의 시내산, 엘리야의 갈멜산, 주님의 변화산입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두 번째 산에 오르는 성도들이 되시길 기도합니다.

송용원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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