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탐정 목사의 사이비 종교 추적기.. 신앙이 낳은 비극
[정병진 기자]
▲ 영화 <사바하> 스틸 컷. 신흥종교 사슴동산의 전국 신전 위치를 살피는 혜안 스님과 박 목사 |
ⓒ CJ엔터테인먼트 |
세상이 혼탁하니 사이비 종교가 번창한다. 아니, 사이비 종교가 번창하니 세상이 혼탁한지도 모르겠다. 기성 종교가 타락해 제 구실을 못할 때 사이비 종교는 독버섯처럼 자라난다. 영화 <사바하>는 불교 계통의 신흥 종교 '사슴동산'을 둘러싼 의문사들과 그 배후를 캐는 사이비 종교 연구가 박 목사(이정재 분)와 형사들 이야기를 다룬다.
개신교계에는 워낙 이단 사이비가 많다 보니 관련 전문가들도 있다. 국내에서 이 분야를 개척하다시피 한 사람은 국제종교문제연구소 탁명환 소장(1937~1994)이다. 그는 다양한 신흥종교와 이단 사이비 종교를 취재하고 그 교리와 문제점을 집요하게 파헤쳐 알린 바 있다.
가령 탁 소장은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으로 널리 알려진 사이비 교주 최태민에 대해 세간에 그리 알려지지 않았을 때 이미 취재해 알리기도 하였다. 그는 끝내 어느 광신도의 테러로 별세하는 비극을 맞았다. 하지만 탁 전 소장의 큰 아들 탁지일은 부친을 이어 여전히 이단 사이비 종교 연구가로 활동한다. 영화 <사바하>의 설정이 터무니 없는 건 아님을 알 수 있다.
아마 장재현 감독은 온 나라를 들썩인 국정농단 사태를 비롯해 끔찍한 연쇄 살인 사건 같은 흉악 범죄 배후에 이따금 사이비 종교가 있음에 주목한 것으로 보인다. 종교적 확신에 따른 살인이라면 그 죄책감마저 둔감해질 수 있다. 그럴 경우 사회 일반의 흉악 범죄보다 그 위험성이 훨씬 더 크다. 영화 <사바하>는 그 사례로 일본 옴진리교 테러 사건을 든다.
▲ 영화 <사바하> 스틸 컷. 신흥종교 사슴동산 신전에 침투해 둘러 보는 박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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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영화 속 박 목사는 사이비 신흥 종교를 정화하겠다는 사명감이 가득한 인물은 아니다. 사이비 종교들을 탐사해 이슈가 될만한 거리를 찾아 폭로함으로써 자신이 운영하는 연구소 운영의 잇속을 챙기려는 의도가 강하다. 목사면서도 신(神)이 실제하는지에 대한 확신도 그다지 없는 인물이다. 하지만 사슴동산을 추적하면서 그는 세상에 존재하는 무서운 악에 몸서리치며 신의 도움을 간절히 구한다.
영화 <사바하>는 아무래도 스릴러물이다 보니 괴기스러운 장면들이 자주 나온다. 귀신 나올 거 같은 음산한 집, 그 집 낡은 창고에 있는 미지의 존재, 죽은 시신들이 천정에서 내려오는 악몽, 정말 꿈에 다시 보일까 두려운 등골 오싹한 장면들이다. 하지만 복잡한 퍼즐이 풀릴 무렵엔 모두 뒤틀린 종교 신앙이 낳은 비극의 주인공들임이 드러난다.
흔히 사찰 입구에는 험상궂은 얼굴로 악귀들을 밟고 앉은 '사천왕' 상이 들어서 있다. 사천왕은 본디 인도 신화에 나오는 '귀신의 왕'이었으나 불법에 귀의해 부처와 불법을 수호하는 존재로 변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영화 <사바하>는 사천왕 이미지를 활용해 밀교 사슴동산의 사천왕들이 교주인 '미륵불'을 수호하고자 연쇄살인을 저지르는 구성으로 되어 있다. 전형적 불교 교리를 활용한 범죄인데 아무리 사이비 종교 연구가라지만 박 목사가 추적하는 건 무리가 아닐까?
박 목사는 자신의 고교 후배인 혜안 스님과 통화하며 '불교에 악이 존재하는지' 여부를 놓고 잠시 설전을 벌인다. 박 목사는 마왕 파순이나 수라, 마라 같은 존재에서 보듯 불교에도 악이 존재한다고 본다. 반면 혜안 스님은 "그건 기독교식 편견"이며 "'파순, 수라, 마라'는 그 어원을 보면 인간의 욕망과 집착의 표현일 뿐"이라 일축한다.
두 사람의 견해 중에 누가 맞는지와는 상관없이 영화 속 '사슴동산'에서는 '미륵'을 해치려는 거악의 존재 '뱀'을 제거하려 안간힘을 쓴다. 그들에게는 엄연한 현실이다. 사슴동산의 사천왕들은 교주가 쓴 <항마경>이란 경전을 암송하며 그 경전을 지침 삼아 미륵의 영생을 방해하는 존재라 예언된 사람들을 차례로 살해한다.
영화는 항마경의 한 구절을 전도사(고요셉/이다윗 분)의 낭송으로 소개한다. "여래께서 말씀하시되 등불의 태토에 뿌려진 뱀들을 밟고 짐승은 전쟁에서 승리하리라." 이로써 <항마경>은 기독교 성경 중 요한계시록처럼 '상징과 은유' 표현들로 비의를 전달하려는 책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 풍유(諷諭)의 정확한 의미를 아는 이는 신도 중에 극소수에 불과하다. 박 목사는 자신의 종교적 식견과 용감한 취재 등을 거쳐 마침내 그 비밀을 풀어냈다. 하지만 등불로 여겨지던 교주와 뱀으로 등장하는 소녀의 죽음을 막지는 못한다. 어쩌면 감독은 신화적 존재들인 등불과 뱀은 사라지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하고 싶었던 거 같다. 영화 제목 <사바하>의 뜻이 '원만한 성취'라는 사실로 이를 유추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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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여수넷통뉴스>에도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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