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보다 '한 걸음 뒤'에 있고 싶습니다

도혜민 2021. 7. 30.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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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치맘 그리고 도치파파가 되는 게 한편으로 두려운 이유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도혜민 기자]

"우리 아기 나중에 인기가 너무 많아지면 어떡하지?"

아이와 놀던 남편이 갑자기 이렇게 묻더군요. 농담이 15% 정도는 섞인 듯했지만, 질문의 내용에 비해 지나치게 진지한 태도로 말을 꺼냈습니다.

"응? 누구? 우리 아기?"
"응. 너무 잘 생겨서 유치원 가면 여자애들이 좋다고 따라다닐 거 같아. 나중에 엄마보다 여자 친구들이 더 좋다고 하면 어떻게 할 거야?"

저는 공기반 소리반으로 잠깐 웃은 뒤 "걱정 마, 그럴 일은 없을 거 같은데? 그리고 인기 많으면 좋지 뭐"라고 진지한 질문에 한없이 가볍게 대답했습니다.

남편은 벌써 도치파파가 되어버렸나봅니다. 도치파파는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함함하다는 말에서 나온 단어로, 털이 뾰족하고 뻣뻣한 고슴도치도 제 새끼의 털은 보드랍게 느끼듯이 자기 자식은 무조건 예뻐 보이는 아빠를 뜻하는 말입니다. 엄마는 도치맘이라고 하죠.

남편의 말에 그냥 어이없이 그냥 웃고 넘어갔지만, 생각할수록 덩달아 진지해지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정말 그럴까 봐 걱정이 되는 걸 보니 저도 도치맘이 되어버렸나 봅니다.
 
 자식에 대해 객관적인 시각을 잃지 않고 싶어요.
ⓒ elements.envato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내 새끼."
"내 자식 먹는 것만 봐도 배부르다."
"아이가 아프느니 차라리 내가 아프면 좋겠다."

한 번쯤은 꼭 들어봤고, 그저 고개만 끄덕이거나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렸던 말들이 머리가 아닌 몸을 관통해서 지나가는 듯합니다.

남편과 저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너무 예쁘다", "어떻게 이렇게 귀엽지?", "너무너무 사랑스러워", "너무 잘생긴 거 아니야"라는 말을 하며 팔불출 대잔치를 벌입니다. 이미 객관성을 잃어버린 거죠.

어느 부모가 자식 앞에서 객관적이고 냉정한 시각으로 아이를 바라볼 수 있겠습니까? 도치맘, 도치파파가 되는 건 어쩌면 당연합니다.

그런데 문득 자식에 대해 객관적인 시각을 잃은 게 두려워졌습니다. 아이에 대해 지극히 주관적이 될 경우 지나친 욕심이 생기거나, 이기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에는 건강하게만 태어나길 바랐고, 아이가 건강하게 태어난 후에는 '다른 건 바라지 않겠다. 몸과 마음만 건강하게 자라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자라다 보니 자꾸 눈이 옆으로 돌아갑니다. 다른 아이는 벌써 뒤집었다는데. 다른 아이는 이미 엄마, 아빠, 물, 안녕 등 간단한 단어는 말한다는데. 다른 아이는 책을 너무 좋아해서 벌써부터 책을 많이 본다는데. 하는 말들이 더 크게 들리고 마음이 조급해집니다. 다른 아이와 비교하지 않겠다는 다짐들이 저도 모르는 사이에 순간순간 무너지더군요.

아이에 대해 욕심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내 자식이 뭐든 가장 잘했으면 좋겠고, 인성도 바르고, 운동도 잘하고, 공부도 잘했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게 되고, 기대에 미치지 못하게 된다면 아이를 다그치겠죠.

'내 자식이기에' 남들보다 뛰어나야 하고, '사랑하기에' 최고로 잘 되어야 한다는 그럴싸한 이유를 둘러대며, 존재만으로도 소중했던 아이를 잃지는 않을까 두려워집니다.

그리고 욕심이 커질수록 더욱 이기적이 됩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정도로 소중한 내 자식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다 해주고 싶은 게 부모의 마음이죠. 그런데 한정된 인프라를 먼저 선점하기 위해서는 주위를 둘러보고, 주변을 배려하는 행동은 사치입니다. 내 자식'만'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생기게 될까 봐 두렵습니다.

저는 이미 아이에 대한 객관성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아이를 키우며 새롭게 알게 된 엄마의 마음을 함부로 사용하지 않도록 애쓰려 합니다. 늘 아이보다 '한 걸음 뒤'에 서 있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를 너무 가까이 두어 아이 외에 주변을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빼앗기지 않도록, 그리고 아이보다 한 발 앞서서 아이가 방향도 알지 못한 채 헐떡이며 따라오는 일이 없도록 말입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한 걸음 뒤에서 객관적으로 상황을 바라보며 아이가 가는 곳을 지지해주고, 아이의 주변에 있는 어느 누구의 손도 닿지 않는 빈 틈에 손 내밀어 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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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기자의 브런치에도 함께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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