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윰노트] 좋아함의 기적

2021. 7. 30.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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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인혜 시인·웹툰작가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광고도 만들고 책도 엮고 온갖 일에 손대며 번잡하게 사는 나에게 회사 동기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넌 하고 싶은 일이 많아서 좋겠다. 난 딱히 좋아하는 게 없어.” 또 나는 강연장에서 이런 질문을 종종 받는다. “언제나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사시는 것 같아요. 저는 어떻게 하면 그런 걸 찾을 수 있을까요?”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해야 되니까 하는 일’ 말고 ‘좋아서 하는 일’을 찾지 못해 방황하고 있었다.

흔히들 말하는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하면 성공한다’ 같은 잠언에서 사람들은 보통 ‘열심히’에만 주목한다. 부단한 노력, 멈추지 않는 지구력, 포기하지 않는 끈기 같은 것들. 물론 소중한 가치들이지만 그보다 앞선 것은 ‘좋아하는 마음’이다. 실제로는 무언가를 열심히 하는 것만큼이나 그 무언가를 좋아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싫어함은 간편하다. 무언가가 거슬릴 때 그것은 저절로 그러하고, 누군가가 짜증날 때는 명징한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각종 혐오가 넘실대는 세상에서 우리가 싫어할 대상을 찾기란 너무도 쉽다. 우리는 빈번히 싫어한다. 게다가 싫어함에는 노력도 필요 없다. 이유는 대상이 무상으로 제공해주기 마련이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뭔가를 꾸준히 싫어하기 위해 굳이 애쓰지도 않는다. 섶에서 자고 쓸개를 씹으며 증오감을 벼려야 하는 철천지원수가 있지 않은 딴에는 뭔가를 부단히 싫어하기 위해 매일같이 마음을 다잡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좋아함’은 다르다. 좋아함은 뜻밖에 연약하고 뒷심이 부족하다. 온갖 미디어가 부르짖는 ‘사랑’의 판타지가 너무 강력해서일까, 우리는 애정에 너무 큰 기대를 한다. 첫눈에 반하는 강렬함이나 영혼을 뒤흔드는 파괴력 같은 것들. 하지만 보통 사랑은 사소함에서 비롯돼 서서히 번져든다. 업무적 대화만 주고받던 사람의 가방에 매달린 캐릭터 배지 같은 것에서 처음으로 사적인 호기심이 싹트는 것처럼. 그리고 그 마음은 햇볕과 물을 줘야 자라난다.

좋아함의 대상이 사람이 아닌 경우에도 비슷하다. 내 모든 좋아함의 처음도 그랬다. 우연히 전철에서 본 카메라 광고 문구에 혹해 ‘광고일은 누가, 어떻게 하는 것일까?’ 하는 작은 호기심이 싹텄고 거기에 스스로 물을 줘 오늘에 이르렀다.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 이후 시라는 것은 읽은 적도 없으면서 카피라이터로서 내가 쓰는 짤막한 글들이 시에 가깝지 않을까 하는 착각으로 별생각 없이 시 수업을 신청했는데 그것이 오늘에 이르렀다. 좋아함은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 모르는 것이다.

또 하나 염두에 둬야 하는 것은 불타는 열정에는 유효 기간이 있다는 사실이다. ‘사랑’ 하면 자연스레 연상되는 무한의 에너지는 찰나적이다. 게임에 비유하면 일종의 아이템을 먹어서 빛나는 갑주를 입고 광속으로 달리며 만능감에 빠져드는 상태 같은 것인데 그것은 언젠가 끝나기 마련이다. 그리고 남는 것은 열정의 필터가 벗겨져 다소 현실감 있는 얼굴로 돌아온 좋아함의 대상과, 내가 이것에 이다지도 몰두했었나, 하는 머쓱함이다. 여기서부터는 선택이다. 태초의 좋아함을 위해 더 노력하느냐, 여기까지가 끝인가 보오, 하고 마음을 거두느냐. 나는 대체로 노력하는 사람이다.

나는 좋아함을 귀하게 여기고 싶기 때문이다. 호기심으로 시작된 작은 새싹이라도 물을 주고 가꿔 나가고 싶다. 좋아함은 오래 기다려 겨우 마주친 천연기념물처럼 희귀하니까. 좋아함이 희미해지려 하면 갖은 노력으로 또렷함을 되찾고 싶다. 어떻게 시작한 사랑인데 놓치고 싶지 않으니까. 당신이 운동에 지루함을 느낄 무렵 새 운동복을 사보는 것도, 혼자 하던 요리에 더는 재미를 느끼지 못하게 돼 유튜브 채널을 열어보는 것도 모두 좋아함을 위한 노력이다. 심지어 매너리즘에 함몰되지 않기 위해 잠시 그것을 멈추는 것마저 더 오래 좋아하기 위한 노력이다. 당신이 우연히 발견한 좋아함의 싹을 소중히 여기기를. 부디 열심히 좋아하기를.

홍인혜 시인·웹툰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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