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상의 시시각각] '기본소득'에 답하는 이재명의 방식

이현상 2021. 7. 30.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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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 미래 관련한 중대한 의제
가성비·현실성 의문 당연한데도
갈라치기 프레임 써서 매도하나
더불어민주당 대선 주자인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지난 22일 국회 의원회관 영상회의실에서 화상으로 기본소득제 도입 등 정책 공약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뉴스1]

낯 뜨거운 네거티브가 난무하는 대선판에서 그나마 눈에 띄는 정책 이슈가 기본소득이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그 중심에 있다. 이 지사는 집권하면 2023년 25만원을 시작으로 임기 내 한 해 100만원을 전 국민한테 주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청년층에는 별도의 돈까지 약속했다. 계획대로라면 2023년에만 약 20조원이 필요하고, 그 규모는 연 57조원까지 늘어난다.

국가 단위에서 한 번도 현실화한 적 없는 기본소득이 덜렁 도입될 수 있을진 의문이지만, 시비를 되풀이할 생각은 없다. 오히려 오랜만에 공동체의 미래를 둘러싼 담론이 시작됐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여지도 있다. 다만 이 지사의 논쟁 방식만은 이야기하고 싶다.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월 8만원 지급은 기본소득이 아니라 전 국민 외식 수당이라고 부르는 것이 낫겠다"고 비판하자 이 지사는 발끈했다. 분기별 지급액을 굳이 월 단위로 쪼개 보잘것없이 보이게 했다는 것이다. "님께는 월 8만원이 외식비 푼돈에 불과하겠지만, 누군가에겐 생명줄"이라고 반박했다. 페이스북 글은 독설과 비아냥으로 넘친다. "감사원장 때 무슨 목적을 가지고 어떤 식으로 감사하셨는지 조금은 짐작이 간다" "첫술 밥에 왜 배 안 부르냐고 칭얼대는 어린아이가 생각난다."

캠프 대변인은 한술 더 떴다. "(월 8만원을) 외식 수당으로 부르는 것은 자식에게 수억원 정도의 집세는 깎아줄 수 있는 가정이 대한민국의 평균 가정이라고 착각한 것." 논리가 나설 자리에 감정이 대신했다. 이런 말투, 낯설지 않다. 올 초 김세연 전 국민의힘 의원과 논쟁을 벌일 때 이 지사는 김 전 의원이 '천억원대 자산가'임을 들먹였다.

기본소득의 가성비와 현실성에 대한 지적은 보수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다. 같은 민주당의 박용진 후보는 첫해 25만원 계획에 대해 아예 '하루 680원꼴'이라고 더 심한 '쪼개기 산수'로 비판했다. 기본소득은 단순한 선거 공약을 넘어 국가의 미래와 관련된 의제다. 만일 이 지사가 집권해 정책으로 실현된다면 재정과 조세, 복지의 틀이 완전히 바뀌게 된다. 이명박 정부의 4대 강,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불가역적 충격'을 불러올 가능성이 크다. 궁금증과 우려가 큰 것은 당연하다.

월 8만원으로 그토록 아쉬운 계층을 돕겠다면 고소득자에게 돌아갈 몫을 이들에게 돌리는 것이 맞지 않나. 송파 세 모녀 같은 비극을 막기 위해 수십조원의 재정을 뿌리는 대신 복지망을 촘촘하게 짜는 것이 더 효율적이 아닌가. 기본소득이 경제 정책의 성격이 있다고 하지만, 이를 위한 증세는 경제에 부담을 주지 않겠는가. 기본소득 도입으로 조세 부담이 늘어나는 계층은 10~20%에 불과해 조세 저항이 별문제가 안 될 거라는데, 겨우 국민 4% 대상이었던 종부세는 왜 그렇게 문제가 됐나.

이 지사의 언사는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이 아니라 답을 피하는 화법이다. 『논쟁에서 이기는 38가지 방법』은 독설의 철학자 쇼펜하우어의 토론술을 정리한 책이다. 이 지사가 이 책을 읽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중 몇 가지는 효과적으로 구사했다. '상대를 화나게 만들어라, 논의를 다른 방향으로 돌려라, 상대가 억지를 쓴다고 큰소리로 외쳐라, 상대의 주장을 증오의 범주 속에 넣어라.'

경쟁자들의 공격에는 당연히 정치적 성격이 있다. 그러나 비판에 '가진 자-못 가진 자' 프레임으로 대응하는 것은 새 화두의 발제자답지 않은 협량(狹量)이다. 사이다 화법일 수는 있겠지만, 사이다는 한순간 청량감을 줄지 몰라도 소화에는 오히려 해롭다지 않나. 최 전 원장의 비판에 이 지사가 "월 8만원 외식비로 기꺼이 써주시라, 소비 증진도 기본소득의 취지"라고 답했다면 차라리 어땠을까. 가난한 노동자에서 변호사를 거쳐 거물 정치인으로 성장한, 어쩌면 삶의 궤적이 이 지사와 비슷한, 에이브러햄 링컨이라는 사나이는 그런 여유와 품위가 있었다.

이현상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현상 기자 lee.hyuns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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