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공유지의 비극
‘달이 진다고 하늘을 떠나는 것은 아니다. (月落不離天)’.
두어번의 클릭 끝, 블로그에 실린 문장이 한눈에 들어왔다. 블로그 제목은 윤따거의 부국부민(富國富民). 842일에 걸쳐 기획재정부 장관을 지낸 윤증현(75) 윤경제연구소장이다. 그는 장관 재직시절의 기록을 이곳에 고스란히 모아두었는데, 기록은 퇴임 때인 2011년 6월 1일의 이임사에 멈춰있다.
무려 10년 전 물러난 경제관료를 떠올린 건 순전히 뉴스 때문이었다. 뉴스의 주인공은 홍남기(61)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공교롭게도 그는 윤 전 장관의 ‘최장수 기재부 장관’ 기록을 지난 4월초 갈아치운 인물이기도 하다.
최장수 경제수장 자리에 빛나는 그가 지난 28일 “송구하다”며 머리를 숙였다. 하지만 여론은 이내 싸늘해졌다. ‘부동산 시장 안정을 위해 국민께 드리는 말씀’을 장구히 내놨는데, 송구하다로 시작했지만 마무리 발언이 화룡점정, 공분을 일으켰다. “부동산시장 안정은 정부 혼자 해 낼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 부동산시장 참여자 모두, 아니 우리 국민 모두가 함께 고민하고 함께 협력해야 가능한 일입니다. 소위 ‘공유지의 비극’을 막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공동체를 위해 지혜를 모아 협력해야 합니다.”
목동들이 자신의 이익만을 앞세워 양들에게 풀을 배부르게 뜯게 하기 위해 욕심을 부리다 공유지인 목초지가 황폐해지다 못해 무용지물이 되어버린다는 ‘공유지의 비극’은 미국 생물학자인 개릿 하딘이 1968년에 내놓은 논문에 실리며 널리 퍼졌다. 홍 부총리가 공유지의 비극까지 소환하며 “집 사지 마라”고 강조한 것인데, 정말 이 비극은 ‘국민 모두’ 때문일까. 자고 일어나면 오르는 집값, 전·월세 폭등에 세금 폭탄은 우매한 국민의 자업자득인 것일까.
정작 부총리가 ‘공유지’로 봤어야 하는 것은 따로 있다. 나라 곳간이다. 최근 정부는 국민 88%를 갈라 재난지원금을 주기 위해 33조원의 추경을 짰다. 나랏빚은 1000조원에 육박한다. 2011년 초, 무상급식을 계기로 정치권에서 복지 포퓰리즘 논쟁이 번지자 당시 곳간지기 윤 전 장관은 이렇게 말했다. “나라 곳간을 주인이 없는 공유지로 취급해 서로 소를 끌고 나와 계획 없이 풀을 뜯긴다면 초지가 황폐화되는 공유지의 비극을 초래할 수 있다.” 이게 진짜 비극이다.
김현예 P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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