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이 예술을 압도하는 시대에.. 타르콥스키를 읽는다는 것

김남중 2021. 7. 29.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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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길] 시간의 각인
안드레이 타르콥스키 지음·라승도 옮김
곰출판, 320쪽, 2만3000원
안드레이 타르콥스키는 1932년 러시아에서 태어나 소련 국립영화학교에서 영화를 공부했다. 1962년 ‘이반의 어린 시절’을 시작으로 1985년 ‘희생’까지 7편의 장편영화를 발표하고 1986년 12월 29일 프랑스에서 폐암으로 사망했다. 소련 영화 지도부와 갈등을 겪어온 그는 1982년 영화 ‘노스탤지어’ 작업으로 이탈리아로 갔고, 1984년 소련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희생’은 타르콥스키가 소련을 벗어나 제작한 유일한 작품이다. 곰출판 제공


안드레이 타르콥스키(1932∼1986)라는 러시아 영화감독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고 영화사를 쓸 순 없다. 예술로서의 영화를 얘기하는 장이라면 그의 이름이 가장 먼저 불려 나올 것이다. 스웨덴 영화감독 잉그마르 베르히만은 “만일 영화를 예술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그것은 타르콥스키와 같은 위대한 영상시인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국내에서도 1990년대 그의 영화가 소개되면서 ‘타르콥스키 신도들’이 형성됐다.

‘시간의 각인’은 ‘희생’ ‘노스탤지어’ ‘스토커’ 등 7편의 영화를 남기고 54세에 폐암으로 세상을 떠난 타르콥스키가 영화와 예술을 주제로 쓴 유일한 책이다. 그는 1970년부터 이 에세이집을 쓰기 시작해 죽기 전까지 16년에 걸쳐 원고를 완성했다.


이 책은 국내에서 1991년 ‘봉인된 시간’이란 제목으로 출판됐다. 독일어 번역본을 중역한 책이었다. 러시아 문학 전공자로 러시아 영화를 연구해온 라승도씨는 타르콥스키 재단이 보유한 러시아어 원고를 직접 번역해 30년 만에 새 번역본을 내놓으면서 제목도 ‘시간의 각인’으로 바꿨다.

타르콥스키는 영화에서 감독이 하는 작업의 본질을 “시간을 조각하는 것”이라고 규정하면서 비유를 든다. “작가가 수백만m의 필름을 가져와서 거기에 순간순간, 날마다, 해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인간의 삶을 추적하여 기록하고, 이 모든 것에서 편집을 통해 2500m의 필름, 다시 말해 약 한 시간 반 분량의 필름을 추출한다.”

이 책을 한 마디로 설명하자면 영화란 무엇인가에 대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영화에 대한 책만은 아니다.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책으로 읽어도 좋다.

타르콥스키는 영화란 무엇인가를 집요하게 탐구하는데, 주로 다른 예술 장르와 비교·대조를 통해 영화만의 특수성과 고유 언어를 추출한다. 그는 “영화 언어의 특수성 문제는 지금까지 해결되지 않았는데, 이 책은 바로 이 분야에서 뭔가를 밝혀보려는 또 하나의 시도일 뿐”이라며 영화를 문학과 비교하고 음악 회화 발레 연극 심지어 과학이나 수공업과도 대조해본다.

그는 영화에 다른 예술 장르의 관습이 무비판적으로 섞여드는 걸 극도로 경계하면서 영화 고유의 언어를 찾아내려 애쓰지만, 시에 대해서만은 상당한 친화성을 보여준다. 그는 과학의 논리나 드라마의 논리가 아니라 ‘시적 논리’와 ‘시적 기법’이 진실을 드러내는 데 적합하다고 생각했으며, 영화를 ‘시적 예술’로 바라봤다.

예술과 산업 사이에서 흔들리는 영화의 애매한 위치를 이해하면서도 타르콥스키는 영화가 예술이 돼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렇다고 해서 영화는 예술이고 예술은 본질적으로 귀족적이라는 말로 예술가의 청중에 대한 의무를 면제하진 않았다. 오히려 관객이나 청중이 되는 민중에 대한 의무감이야말로 예술가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며, 이는 예술가의 자유보다 앞선다고 말했다.

그는 “평범한 노동자들이 자기 집 방이나 작업장에 내 석판화를 걸어 두고 싶어 한다는 것보다 나를 더 기쁘게 해줄 수 있는 성공은 아무것도 없다”라고 한 빈센트 반 고흐의 말을 책에 인용한다. 반면 상업 영화에 대해서는 “관객을 기쁘게 하려고 관객의 취향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곧 관객을 존중하지 않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타르콥스키의 글은 그의 영화가 그렇듯 철학적이고 다소 난해하다. 하지만 몇 페이지만 읽으면 금방 사로잡히고 만다. 진실만을 말하고 본질에 가닿겠다는 태도가 처음부터 끝까지 지속된다. 한 문장도 진부하게 쓰인 게 없고, 어느 문장을 봐도 날카로움과 뜨거움이 느껴진다. 35년 전에 쓰인 책이지만 조금도 낡지 않았다. 특히 이미지 회상 시간 리듬 재연 연기에 대한 그의 설명은 눈부시게 독창적이다.

예술이 유행이나 새 기법을 따라가기 바쁘고, 산업 논리에 종속되고, 엔터테인먼트가 되는 시대에 타르콥스키의 책을 읽는 것은 본질을 다시 돌아보는 일이 된다. 예술이 잃어버린 숭고함을 환기하는 일이기도 하다.

타르콥스키는 “나는 예술이 언제나 인간 영혼을 집어삼키려는 물질에 맞서는 인간의 투쟁을 위한 수단이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나는 우리 각자의 영혼 속에 살아있는 인간 본연의 것과 영원한 것에 대해 생각해보도록 자극하는 것이 의무라고 생각한다”는 말도 했다.

그러나 인간은 영원하고 중요한 것을 자주 무시한다. 결국 인간에게 남은 것은 사랑의 능력이라며 그는 이렇게 얘기한다.

“나는 사람들이 자신의 내부에서 사랑하고 싶은 욕망과 자신의 사랑을 남에게 주고 싶은 욕망을 느끼게 하고, 그들이 내 영화들을 보고 아름다운 것이 부르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하는 것이 의무라고 생각한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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