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호정] 뒷짐 진 필사의 방어, 박지수의 진짜 부활은 올림픽에서

서호정 기자 2021. 7. 29.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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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수(올림픽대표팀). 게티이미지코리아

[풋볼리스트] 서호정 기자 = "개인의 욕심은 다 버렸어요. 팀에 대한 생각만 해야죠."


지난 16일 박지수는 갑작스러운 연락을 받고 소속팀인 국군체육부대(상무)를 떠나 인천 송도의 집으로 향했다. 김학범호의 올림픽 와일드카드 수비 1옵션이었던 김민재의 최종 합류가 불발되며 다급하게 파주NFC로 합류해야 했다. 올림픽 대표팀이 일본으로 출국하기 불과 하루 전 일이었다. 


코로나19 변수에 대비, 에이전트의 개인 차량으로 이동해 여권과 짐을 챙겨 긴급 상경했다. 김민재의 발탁이 확정되지 않았기에 미리 백신 접종은 마쳤고, 비자도 준비해 놨던 것이 다행이었다. 


김학범호 합류를 위해 올라오는 길에 박지수의 마음은 복잡 다난했다. 출국 하루 전이고, 뉴질랜드와의 조별리그 첫 경기까지는 엿새가 남은 시점이었다. 수비 조직력은 호흡이 생명인데, A대표팀에서 함께 한 필드 플레이어는 사실상 없었다. 백지 상태였다. 


본인의 경기력도 미지수였다. 6월 21일 입대를 위해 논산훈련소에 갔다가 입대 동기들과 함께 일주일 만에 팀에 합류했다.(※남은 기초군사훈련은 시즌 종료 후 진행) 김천상무에서 2주 가량 훈련했지만, K리그 경기에는 나서지 못해 실전 공백이 발생했다. 와일드카드에 거는 기대치를 온전히 감당할 수 있을 지가 불확실했다. 


다급히 파주NFC로 이동하며 박지수를 지켜봤다는 에이전트 스퀘어스포츠 관계자는 "혼란스러웠을 텐데 정작 본인은 차분했다"며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오히려 잘해야 한다는 욕심과 집착을 내려 놓고, 어떤 형태로든 팀에 기여하겠다는 얘기만 했다. 조직력이나 개인의 경기 감각을 고려할 때 조별리그에서는 선발 출전을 장담할 수 없었다. 그래도 박지수는 훈련 파트너, 그리고 불의의 상황에서 자신이 필요해질 경우에 모든 걸 다 쏟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시작된 올림픽. 뉴질랜드와의 1차전에서는 역시 선발 명단에서 빠졌다. 0-1로 뒤진 후반 42분 정태욱을 최전방 공격에 세우기 위해 박지수가 투입되며 올림픽의 그라운드를 밟았다. 추가시간 포함 8분여의 시간은 정신없이 흘러갔고, 박지수의 올림픽은 늦은 출격과 패배로 끝났다. 


선수 개인을 떠나 올림픽 대표팀 스스로가 루마니아와의 2차전을 앞두고는 새롭게 거듭나야 했다. 김학범 감독은 짧은 훈련 시간이었지만 박지수의 능력과 경험을 믿고 루마니아전에 정태욱과 함께 선발 출전시켰다. 그리고 기대는 적중했다. 이동준, 설영우, 정승원 등과 함께 김학범호가 뉴질랜드전의 답답한 경기를 딛고 일어서는 데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대인 마크는 단단했고, 자신의 지역으로 넘어오는 공에 대한 책임감도 강했다. 공격 전개 과정에서도 예리함을 보이며 전방으로 수 차례 날카로운 패스를 보냈다. 


온두라스와의 3차전은 '벽지수'였다. 특유의 운동 능력으로 온두라스의 최전방 공격수 더글라스 마르티네스를 꽁꽁 묶었다. 온두라스는 마르티네스를 거쳐 가는 공격으로 레예스, 오브레곤, 팔마, 히바스 등의 2선 공격이 펼쳐지는데 박지수는 기점을 아예 지워버렸다. 수비 차단 후 전방으로 나가는 패스의 질도 변함없었다. 루마니아전 4-0 대승에 이어 온두라스전도 6-0 쾌승이었다. 


이번 대회에 임하는 박지수의 각오는 필사적이다. 개인의 욕심은 지웠지만, 명예는 되찾고 싶었다. 그의 성공 스토리는 축구계의 신데렐라 같았다. 프로 무대 입성 후 1년 만에 방출됐지만 K3(※당시 4부리그 격)리그에서 눈물 젖은 빵을 먹으며 재기의 노력을 기울였다. 경남FC에 입단, 1부 리그 승격과 준우승을 이끌었고 중국 광저우 헝다로 이적해 세계적인 수비수 파비오 칸나바로 감독의 인정을 받았다. A대표팀에도 선발되며 축구화를 벗을 뻔 했던 청춘은 가장 낮은 곳에서 튀어 올라 한국에서 손 꼽히는 수비수가 됐다. 


하지만 군입대가 예정된 상황에서 K리그로 복귀한 뒤 상황은 꼬여갔다. 그는 입대 전 수원FC에 몸 담았는데 3개월 동안 14경기를 치르는 동안 페널티박스 안에서 핸드볼 파울만 4차례를 범했다. 혼전 상황에서 슈팅이 손을 향해 날아오는 불운이 겹쳤지만, VAR 시행이 정착되며 K리그는 더 이상 그런 장면을 놓치지 않았다.


박지수 입장에선 억울한 부분도 많았다. 무려 8개의 경고(※경고 2회 퇴장 두 차례)와 1차례 퇴장이 있었는데, 그 중 한 번의 경고 누적 퇴장, 그리고 다이렉트 퇴장이 오심이었다. 그로 인해 사후 감면을 받고 연속 부활하는 '웃픈' 일도 생겼다. 광주 원정에서도 VAR이 상대 공격수 펠리페의 파울 행위를 보지 못하고 골을 인정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팬들 사이에서는 잇단 핸드볼 파울에 대해 "국가대표 수비수 맞느냐?"는 비아냥과 억울한 퇴장에는 "오심에 죽었다 살아나는 불사조"라는 동정의 복잡한 시선이 겹쳐졌다. 박지수 자신도 광주전 오심에는 참지 못하고 SNS에 영문으로 '이게 축구야?'라는 글로 불만을 표출했다가 벌금 300만원을 받았다. 입대 전 수원FC에서의 마지막 경기에서도 핸드볼 파울과 퇴장으로 운 박지수는 "소금을 많이 뿌렸다"며 꼬일 대로 꼬인 2021년 상반기를 돌아봤다.


그 경험이 약이 됐을까? 박지수가 올림픽에서 보여주는 수비는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 페널티박스에서 상대가 슈팅 모션을 잡으면 그는 수갑을 찬 듯 양손을 허리 뒤로 숨기고 필사의 방어를 펼친다. 한 경기 한 경기의 중요성이 큰 상황에서 페널티킥을 절대 허용하지 않겠다는 의지다. 공을 피하기 위해 몸을 틀다가 핸드볼이 발생할까봐 아예 공을 맞고 말겠다는 각오로 팔만 뒷짐을 진다. 


박지수의 처절한 뒷짐 수비는 선수로서의 자신감과 명예를 모두 잃을 뻔했던 지난 4개월의 아픈 시간이 준 선물이다. 그 필사적인 방어는 김학범호를 뒤에서부터 단단하게 만들었다. 개인의 욕심과 집착을 버린 박지수는 팀을 위한 헌신으로 올림픽에서 한 경기를 치를 때마다 잃었던 명예를 되찾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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