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과 약물의 '악연'.. 도쿄올림픽은 무사할까?

전혜영 헬스조선 기자 2021. 7. 29.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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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올림픽 출전 선수 35%, 사전 약물 검사 안 해
전문가는 선수들의 성적 압박이 줄어든다면 약물 사용도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올림픽과 함께 늘 꼬리표처럼 달라붙는 게 약물 파동이다. 이번 도쿄올림픽에서도 러시아가 약물 검사 표본을 조작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국가명 대신 '러시아올림픽위원회 선수단(Russia Olympic Commitee athletes)'이라는 이름으로 출전하게 됐다. 그런데 일부에선 이번 도쿄올림픽이 유례없는 '약물 올림픽'이 될 수도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전 세계적인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사전 불시검사를 제대로 시행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올림픽과 금지 약물의 끈질긴 '악연'을 알아본다.

◇약물 검출 기술 발전했지만… '약물 파동' 여전해

올림픽에서 의무적으로 약물 검사를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이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1867년부터 약물 검사를 시작했고, 그런데도 약물 논란이 지속되자 1999년에야 세계반도핑기구(WADA)가 창설됐다. 이전까지는 약물의 힘으로 경기력을 끌어올리는 것이 '잘못'이라고 여겨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국가적으로 약물 사용을 독려하기도 했다. 스포츠 정신의학에 관심을 갖고 『도핑의 과학』을 저술한 다사랑중앙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최강 원장은 "20세기 중반 냉전시대에는 민주주의 진영과 공산주의 진영이 스포츠를 통해 자신들의 체제를 선전하길 원했다"며 "국가 차원에서 근육을 단련하기 위해 스테로이드를 권장하기까지 했다"고 말했다.

이후 금지 약물을 찾아낼 수 있는 기술이 발전하고, 약물 사용이 선수들의 건강과 스포츠 정신을 저해할 수 있다는 인식이 자리 잡으며 약물 사용은 줄어드는 듯했다. 그러나 발전한 것은 검출 기술만이 아니었다. 새로운 약물이 등장하고, 이를 감쪽같이 숨기는 기술도 함께 발전하며 올림픽과 금지 약물의 동행은 계속됐다. 이번 도쿄올림픽에서 가장 우려되는 금지 약물은 '성장호르몬제'다. 성장호르몬은 측정값이 높게 나와도 외부에서 들어왔는지 내부에서 분비됐는지 구분하기 어렵기 때문. 이에 도쿄올림픽에는 최신 약물 분석시스템을 갖춘 한국과학기술연구원이 초청돼 시료 분석 비결을 전수하기도 했다.

◇도쿄올림픽 출전 선수 35%, 사전 약물 검사 안 했다

도쿄올림픽에는 약물 사용 우려가 커질 수밖에 없는 배경이 있다. 원래 올림픽에서 약물 검사는 올림픽 출전 직전뿐 아니라, 훈련 기간에도 불시로 진행해왔다. 훈련 기간에만 약물을 복용하고, 출전하기 얼마 전부터는 중단해 흔적을 지울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인해 도쿄올림픽 직전의 사전 검사 수는 급감했다. 세계반도핑기구에 따르면 2020년에 시행된 불시 사전 검사 수는 3203건으로, 2019년에 시행된 5만2365건보다 현저히 적었다. 심지어 도쿄올림픽에 출전하는 1만1470명의 선수 중 4125명은 올림픽 이전에 약물 검사를 받지 않았다. 최강 원장은 "훈련 중에 약물을 사용해 근육량이나 경기력을 올려놓고, 이후에는 약물을 끊어 검출되지 않는 것을 미리 확인하고 출전했을 수도 있다"며 "다른 올림픽과는 다르게 약물 사용 우려가 큰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 이전에는 불시 검사에 제대로 응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무거운 징계를 받았다. 박태환 선수의 라이벌로 유명한 중국의 수영선수 쑨양은 지난 2018년 갑자기 찾아온 검사관들이 채취한 유리병을 일부러 깨트렸다. 이에 스포츠중재재판소(CAS)는 지난해 쑨양에게 자격 정지 8년을 내렸으며, 이후 재심을 통해 4년 3개월로 줄었으나 여전히 도쿄올림픽은 출전할 수 없는 신분으로 남았다. 국내에서도 지난 2013년에도 배드민턴 스타인 이용대 선수가 약물 검사에 불응해 1년 자격 정지를 받은 바 있다. 세계반도핑위원회 올리버 니글리 사무총장은 "이런 잠잠한 상황을 이용하려는 선수들이 없었다고 여기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라고 말했다.

◇감기약, 돼지고기 잘못 먹었다가… 억울한 '자격 정지'

한편 약물 검사에서 적발된 선수들이 늘 하는 말이 있다. "실수였다" "모르고 맞았다"는 말이다. 그저 변명 같아 보이지만, 실제로 억울하게 적발된 선수들이 있다. 90년대 800M 달리기 선수였던 이진일 선수가 대표적이다. 당시 그는 독한 감기에 걸렸는데, 태릉선수촌에서 지은 약으로는 나을 기미가 없었다. 잠시 외출할 때 약국에서 1000원짜리 감기약을 사 먹었고, 약물 검사에서도 솔직하게 복용약을 써서 제출했다. 그러나 약에 들어 있던 '클린부테롤' 성분이 문제가 됐다. 클린부테롤은 근육량을 높이는 효과를 낼 수 있어 금지약물로 지정돼 있었기 때문이다.

돼지고기나 소고기를 먹었다가 클린부테롤 성분에 적발된 사례도 있었다. 지방은 줄이고, 근육은 줄여주는 탓에 고기의 상품성을 높이기 위해 가축에게 먹이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2012년 런던올림픽 직전에는 이런 돼지고기를 먹고 중국 선수들이 잇따라 적발되자, 중국 당국이 돼지고기 섭취를 제한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현재는 대부분 국가에서 가축에게 클린부테롤을 먹이는 것을 금지하고 있지만, 멕시코 등 일부 국가에서는 지금도 가축에게 사용하고 있다. 최강 원장은 "선수나 의사들도 금지 약물을 일일이 알기는 어려운 데다, 나도 모르게 약물을 복용했을 수도 있다"며 "이로 인해 선수들은 감기에 걸리거나, 몸이 아파도 참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금메달만 원하는 사회 분위기, 선수를 약물로 내몬다

스포츠 선수들의 약물 사용은 수십 년간 비윤리적 문제로 지적받아왔다. 약물 사용이 적발될 때 받는 징계도 점점 더 무거워지고 있다. 한 번만 걸려도 그동안 쌓아왔던 선수 생활이 전부 무너지게 된다. 그런데 왜 아직도 약물 파동은 그치지 않고 발생하는 걸까. 전문가는 반복되는 약물 파동의 원인이 선수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 시스템의 문제일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최강 원장은 "금메달만을 추구하는 사회 분위기가 선수들의 약물 사용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며 "성적에 대한 압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면 약물 사용도 줄어들 것으로 추측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세계적인 수영선수 마이클 펠프스는 모두가 알고 있지만, 베이징 올림픽에서 펠프스와 불과 0.6% 차이의 기록으로 들어온 은메달리스트 체흐 라슬로는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여러 이유로 현재의 약물 사용 규제가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으며, 규제의 방향을 바꿔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어떤 약물을 금지 약물로 지정할 것인지 또한 지금 누군가가 정해놓은 기준일 뿐이다. 카페인은 한때 금지 약물이었지만, 지금은 제외됐다. 태생적으로 특정 호르몬 분비가 많은 사람도 모호하다. 앞선 사례처럼 억울하게 적발되는 선수도 분명 존재한다. 스포츠 청렴 분야 전문가인 호주 캔버라대 캐서린 오드웨이 교수는 "선수들이 결백함을 밝히는 것은 마치 건초더미에서 바늘을 찾는 것과 같이 어렵다"며 "반도핑 단체가 선수들에게 죄책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 아닌, '깨끗한' 선수를 지원하려는 관리 윤리적 접근 방식을 사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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