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방은 창조의 어머니' 보여준 영리한 화가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말이 있다. 미술사에 이름을 남긴 거장들 가운데 모방에서 출발하지 않은 예술가는 단 한 명도 없으리라. 요즘 미술 시장 대세로 떠오른 이 미국 화가의 역동적인 회화는 그가 이런 창조의 원칙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는 영리한 화가라는 사실을 여실히 증명한다. 미국 브루클린에서 작업하는 에디 마르티네즈(Eddie Martinez, 1977년생)가 그 주인공이다.
“내가 내 작품과 작업 과정에서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속도감과 여과되지 않은 날것의 흔적 만들기다”라는 자신의 말처럼 그의 회화는 ‘날것’의 에너지로 가득하다. 그는 구상과 추상을 자유롭게 오가며 재현적 이미지와 추상적 원칙들 간 대화를 시도한다. 생명체를 연상시키는 유기적 형태를 다양한 색채와 함께 마음껏 펼쳐 보여준다. 한마디로 생생한 색채와 자유로운 형태, 생동감 넘치는 움직임을 통해 그 어디에도 구속되지 않은 자유분방한 에너지를 분출한다고나 할까. 이 때문에 그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답답한 속이 뻥 뚫리는 것 같은 신선한 해방감을 느끼게 된다. 이는 전통에서 출발한 혁신이라는 요소와 더불어 마르티네즈가 컬렉터에게 높은 인기를 누리는 중요 이유 중 하나다.
낙서화는 그에게 또 다른 영감의 원천이자 그 자신 자체기도 하다. 보스턴에 있는 미술 학교에 다닌 적이 있지만, 마르티네즈의 진정한 창조성은 길거리에서 다져진 것이라 말하는 편이 옳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거리에 낙서화를 그리면서 성장했다. 본인 그림 위에 낙서를 한 듯한 자유로운 붓질과 촉감을 보라. 전통 회화 재료인 유화 물감 이외에 낙서화에 주로 쓰이는 스프레이나 에나멜을 사용하는 것도 그렇다. 나아가 그는 이 작품에서 문방용품인 압정을 사용한 것처럼 때로는 청테이프, 포장지, 고무줄, 테니스 공, 심지어 씹던 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재료를 총동원해 흥미로운 질감을 창조해낸다. 이를 통해 도시 대중문화의 생동감과 길거리 싸구려 감성을 자신의 회화에 당당하고 멋들어지게 담아내고, 시각적인 도시 언어를 만들어낸다. “쓰레기통도 멀리서 보면 하나의 조각처럼 보이듯이 나는 길거리 위에 있는 모든 것을 사랑한다”는 그의 언급처럼.
일반적으로 그의 작업은 작은 메모지에 매직펜으로 드로잉에서 시작된다. 이 기본 구성을 확대해 캔버스에 옮긴 후, 즉흥적인 붓질과 세심한 터치를 혼합하고, 다양한 일상 재료를 덧붙이기도 한다. ‘무임승차’가 보여주듯 많은 측면에서 그를 규정짓는 회화적 요소들, 즉 재현과 추상 사이를 마음대로 오가는 자유로움, 대담한 선과 생생한 색채 모두 거칠고 표현적인 길거리 미술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미술사 전통과 길거리 낙서화를 정교하게 혼합한 그의 회화에는 역동적인 도시의 삶이 그대로 담겨 있다. 동시에 현실 속 형태를 쥐락펴락 마음대로 변형하는 자유분방함, 풍부하면서 대담하고 직관적인 물감의 사용, 구성적 속도감과 생동감 등 자신만의 독창적인 요소들을 잃지 않는다. 그 결과, 고정된 캔버스 유화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유원지에서 청룡열차를 탔을 때처럼 흥미진진한 박진감과 긴장감을 관객에게 선사한다.
미술사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개인 경험, 대중문화와 스포츠 같은 동시대의 일상적 삶의 모습을 화폭에 담는 마르티네즈 회화는 친근하면서도 전혀 낯선 인물과 공간, 오브제들을 선물처럼 보여준다. 앞으로 그가 또 어떤 흥미로운 세계를 펼쳐 보여줄지 자못 궁금하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19호 (2021.07.28~2021.08.03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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