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여름 창녕..태고의 땅 비밀의 정원
1억4000만 년의 신화를 품고 있는 곳. 창녕 우포늪을 마음에 담은 세월이 얼마인가. 마침내 신비로운 안개가 황홀하게 피어 오르는 새벽녘의 우포늪을 찾는다. 세월을 가늠하기 어려운 초자연의 세계, 아무 것도 손대지 않아 더 신비로운 곳. 그 비밀의 정원으로 들어간다.
한 시인은 이른 새벽 우포늪을 찾는 자신의 마음을 “흡사 사랑하는 이의 집을 방문하는 젊은 연인처럼, 혼자서, 끊임없이 가슴을 설레면서” 간다고 했다. 기다림에 목말라 우포늪을 찾아가는 게 아니라 사랑하는 여인의 품 같은 우포늪에 안기러 간다는 것이다. 창녕 우포늪이 마음 깊이 각인되었던 건 바로 시인의 그 설레는 마음 때문이었다. 우포늪은 과연 그럴까. 시인의 말대로 우포늪은 누구에게나 “사랑하는 여인의 품”일 수 있을까? 시인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그곳에 안기고 싶었다.
긴 밤을 지나 달려와 만난 우포늪의 새벽은 깊은 침묵뿐 물안개는 없다. 환상적인 새벽 풍경을 기대했지만 물새 소리와 풀벌레 소리만 가득하다. 맞다. 지금은 여름이지! 일교차가 큰 계절이라야 제대로 볼 수 있는 새벽 물안개를 기대했다니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우포늪의 환상이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 문득 깨닫는다. 하지만 아무렴 어떤가. 지금 눈앞에 펼쳐진 우포늪의 정경 또한 세상에 두 번 다시 없을 신비요 환상인 것을.
우포늪의 새벽에서 물안개 대신 만난 건 찬란한 일출이었다. 새벽녘 어둠을 뚫고 붉은 빛을 내뿜는 태양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광활한 늪지를 신비스럽게 드러내준다. 눈이 가는 곳마다 다른 모양, 다른 색깔의 늪지는 마치 고고한 전설을 하나둘 풀어놓듯 툭툭 선연한 무늬를 그려낸다. 태고의 시간과 자연이 빚어낸 비밀의 정원이다. 이제 그 비밀의 정원으로 들어간다.
▶1억4000만 년 태고의 신비, 우포늪
우포늪은 가장 큰 면적의 우포를 비롯 목포와 사지포, 쪽지벌 그리고 복원습지인 산밖벌로 이루어져 있다. 겨울 철새 도래지로 유명한 우포, 연꽃이 절경인 사지포, 늪에 뿌리를 내린 버드나무가 운치 있는 목포, 가시연이 가득한 쪽지벌 등 각각의 아름다움을 지닌 늪지는 그냥 걷거나 혹은 자전거를 이용해 쉽게 둘러볼 수 있다. 보통 우포늪 생태관을 출발해 대대제방, 사지포제방, 주매제방, 소목나루, 목포제방을 거쳐 원점으로 돌아오는 약 8.4km의 ‘우포늪 생명길’이 일반적인 걷기 코스. 다만 우포와 쪽지벌 사이에 있는 버들 군락과 사초 군락은 수위 상승 시 탐방이 불가하다는 것을 감안, 사전에 통행 여부를 확인하고 갈 필요가 있다. 현재 이 지역은 탐방이 불가한 상태라 우포따오기복원센터 입구의 자전거 반환점까지만 통행이 허락돼 있다. 시간이 허락된다면 쪽지벌과 산밖벌까지 ‘3포 2벌’ 전부를 돌아볼 수 있는 우포늪 주변 탐방로를 걸어도 좋다. 전체 길이 약 9.7km, 3시간 30분 정도가 걸리는 이 길을 걷다 보면 우포늪의 새로운 명물로 떠오른 우포출렁다리와 산밖벌 복원습지의 경관까지 덤으로 느껴볼 수 있다. 하지만 어느 코스를 선택하든 우포늪의 수려한 경관과 심미적 가치를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다.
▶느릿느릿 거닐기 좋은 관룡사
창녕9경 가운데 아홉 번째 명승인 관룡사는 통일신라시대 8대 사찰 중 하나로 석조여래좌상, 약사전, 3층석탑, 대웅전,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및 대좌, 관세음보살 벽화 등 6개의 보물과 여러 개의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고 경치가 좋기로도 유명하다. 몇 가지 전설도 전해진다. 그중엔 원효가 제자 송파와 함께 이곳에서 백일기도를 드리다 갑자기 연못에서 아홉 마리 용이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보고 그때부터 절 이름을 ‘관룡사’라 했다는 얘기가 있다. 또 임진왜란 때 관룡사의 모든 건물이 다 불에 타 없어지고 오직 약사전만이 화를 면했는데, 이는 약사전에 영험한 기운이 있었다는 것. 그때부터 관룡사에서 소원을 빌면 한 가지는 꼭 이루어진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근래에 들어 관룡사가 사부대중은 물론 여행자들 사이에서까지 귀한 대접을 받는 것은 용선대 석조여래좌상 때문이다. 보물 제295호인 석조여래좌상은 관룡사에서 500m 떨어진 용선대에 모셔져 있다. 명부전과 요사채 사이로 난 산길을 따라 한참을 올라가야 만나게 되는 불상은 높다란 산등성 거대한 암반 위 연꽃을 형상화한 대좌 위에서 자비로운 시선으로 산 아래 사바세계를 굽어보고 있다. 1973년 대좌를 수리하면서 현재의 자리로 옮겼는데 경주 석굴암의 본존불이나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처럼 동짓날 해가 뜨는 방향을 바라보도록 했다. 관룡사를 찾는 사람들 대부분이 용선대 석조여래좌상을 보기 위함이고,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전설 때문에 이곳에 올라 불공을 드리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관룡사는 찬찬히 둘러보며 구경하기 좋은 절이다. 용선대를 다녀와 시원한 감로수로 목을 축인 후 도량 곳곳에 자리한 보물들을 만나다 보면 천년 고찰이 품은 흥미로운 이야기에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요즘 같이 무더운 날씨엔 사찰 옆으로 흐르는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탁족의 여유를 즐겨도 좋다. 마음을 정화하고 몸을 바르게 하는 치유와 힐링 공간으로 창녕에서 관룡사만큼 좋은 곳도 없다.
▶눈물이 날 만큼 아름다운 고분군
교동과 송현동의 고분은 5~7세기에 걸쳐 만들어진 비화가야 지배층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고, 무덤 안에서는 녹나무로 만든 배 모양의 통나무 널과 금동관, 금은 장신구, 은관장식, 금동관모, 비늘갑옷, 철제무기, 토기와 목기 등 다양한 껴묻거리(부장품)가 나왔다. 일부 껴묻거리는 신라의 수도인 경주에서 출토된 것과 그 형태가 흡사하여 가야에서 신라로의 변화 과정을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기록으로는 규명하기 어려운 가야의 역사와 문화를 알려주는 중요한 유적으로 각각 사적 제80호, 제81호로 분리되어 있었으나 2011년 문화재청이 역사성과 특성을 고려하여 인접 지역에 있는 두 고분군을 통합하고 사적 제514호로 재지정하였다. 송현동 고분은 본래 80여 기의 큰 고분이 분포되어 있었고, 교동 고분군도 왕릉이라고 불리는 대고분을 중심으로 주위에 크고 작은 수십 기의 고분들이 모여 있었으나 일제 강점기에 도굴되거나, 그 후 대부분 경작지로 개간되면서 현재는 각각 16기, 8기만 남아 있다. 송현동 고분군은 비교적 규모가 큰 대신 교동 고분군은 마치 예술 작품을 보는 듯 아담하면서도 빼어난 아름다움을 지녔다. 특히 여러 개의 고분이 어울려 만들어 내는 경관은 황홀할 만큼 장관을 이룬다.
고분군에서 역시 5분 거리, 도심과 더욱 가까운 곳에 자리한 석빙고도 그냥 지나치지 말고 둘러볼 만하다. 봄여름에 사용할 얼음을 저장하기 위해 만든 석빙고는 조선 영조 때인 1742년 창녕현 관아에서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차가운 얼음을 일 년 내내 서늘한 기온에서 보관하기 위해 배수와 환기가 가능한 구조로 만들어졌으며, 봉토가 거의 완전하고 외부의 모양은 마치 커다란 고분처럼 보인다. 현재 내부를 들어가 볼 수는 없지만 겉에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신기하고, 호기심 충만해지는 문화유산이다.
▶쉼이 있는 공간
▷우포생태촌 유스호스텔
위치 경남 창녕군 이방면 우포2로 330
▶창녕의 맛
▷수구레국밥
글과 사진 이상호(여행작가)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매경이코노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