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 코리안페이는 없다

2021. 7. 28. 04:09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함께 먹고 마신 뒤 각자의 몫을 나누어 내는 계산법을 더치페이라고 한다.

'더치'가 네덜란드 사람을 비하하는 말이라고 해서 '각자내기'로 순화했다.

자기가 먹은 건 자기가 계산하는 게 맞고, 여럿이 나눠서 계산하면 부담도 적으니, 각자내기가 합리적이기는 하다.

원래 유교문화권에서 계산은 각자내기가 원칙이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장유승(단국대 연구교수·동양학연구원)


함께 먹고 마신 뒤 각자의 몫을 나누어 내는 계산법을 더치페이라고 한다. ‘더치’가 네덜란드 사람을 비하하는 말이라고 해서 ‘각자내기’로 순화했다. 반대로 한 사람이 전부 계산하는 건 우리나라에만 있는 독특한 관습이라고 해서 코리안페이라고 하는 모양이다. ‘혼자내기’ 정도로 순화하면 되겠다.

자기가 먹은 건 자기가 계산하는 게 맞고, 여럿이 나눠서 계산하면 부담도 적으니, 각자내기가 합리적이기는 하다. 계산대 앞에서 서로 자기가 내겠다고 우기는 번거롭고 형식적인 절차도 필요 없다. 합리와 실용을 중시하는 청년층을 중심으로 각자내기 문화가 점차 확산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지배적인 혼자내기 관습 탓에 남성이 여성과 만나기를 부담스러워하고, 선배가 후배와 모이기를 기피하며, 노인들이 모임에 나가기를 꺼린다고 하니, 사회적 문제임이 분명하다.

일각에서는 우리 사회의 유교적 문화가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보살펴야 한다는 유교 전통이 코리안페이의 원흉이라는 것이다. 언제는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떠받드는 게 유교 전통이라더니 하여간 나쁜 건 다 유교 탓이란다. 우리 것은 다 좋다고 하는 국수주의적인 태도도 문제지만 무조건 나쁘다는 자학적이고 자기비하적인 태도 역시 문제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원인을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우리 사회에 남아 있는 유교적 관습에 문제가 많기는 하지만 모든 사회문제가 다 거기서 생긴 건 아니다.

원래 유교문화권에서 계산은 각자내기가 원칙이다. 유교문화권은 친족과 지역사회의 공동체 의식이 강하다. 공동경작이 필수적인 벼농사 문화 때문이라고도 한다. 이들에게 구성원의 경조사는 개인의 일이 아니다. 공동체의 일이다. 따라서 큰돈이 들어갈 일이 있으면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이 그 부담을 나누어 진다. 결혼식이나 장례식에서 부조하는 풍습이 대표적이다. 계(契) 문화가 발달한 것도 이 때문이다. 서구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풍습이다.

각자내기를 뜻하는 한자도 있다. 갹출(醵出)의 갹(醵)이다. 갹의 사전적 의미는 합전음주(合錢飮酒), 즉 돈을 합쳐 술을 마신다는 뜻이다. 반면 혼자내기를 뜻하는 한자는 없다. 문헌을 아무리 찾아봐도 혼자내기 비슷한 관습은 보이지 않는다. 여럿이 돈을 모아 술을 마셨다는 기록은 많아도, 누가 ‘쐈다’는 기록은 찾기 어렵다. 소소한 모임의 비용도 나누어 내는 것이 오랜 관습이며 한 사람이 비용을 전부 부담하는 술자리는 흔치 않았다. 하기야 우리와 마찬가지로 유교 문화권에 속하는 동아시아의 다른 나라들은 각자내기가 보편적이다. 결국 코리안페이의 근원이 유교문화라는 지적은 한마디로 무지의 소치다.

혹자는 농경문화와 유목문화의 차이로 보기도 한다. 한곳에 머물러 농사짓는 사회에서는 ‘다음엔 네가 내라’가 가능하지만 정처 없이 유랑하는 유목민은 다음을 기약할 수 없으니 철저히 계산한다는 것이다. 그럴듯한 설명이지만 허점이 많다. 친구들끼리 밥값, 술값을 번갈아 내는 수평적 관계에서의 혼자내기는 그렇다 쳐도 상사가, 연장자가 일방적으로 비용을 부담하는 수직적 관계에서의 혼자내기가 만연한 이유는 설명하지 못한다.

오늘날 한국의 혼자내기 문화는 과거의 품앗이와는 거리가 멀다. 급격한 도시화와 산업화로 공동체 의식이 희박해지고 일제강점과 군사독재를 거치며 권위적인 조직문화가 자리잡은 결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것은 연공서열에 따른 상명하복의 질서만을 강요하고, 다양한 의견과 합리적인 비판을 용납하지 않으며, 조직의 안정을 위해 부조리한 관행마저 당연시하는 문화다. 수직적 관계에서의 혼자내기는 전체주의와 군사문화로 얼룩진 우리 현대사에서 비롯된 사회병리적 현상에 가깝다.

장유승(단국대 연구교수·동양학연구원)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